세상으로의 안식# 오래된 글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집에 대한 의미가 다양화 된 것이 틀림 없다.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북적이는 도심을 떠나서 교외에 집을 짓거나 반려견을 키우거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종식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것이 하나의 흐름이 될 것 같았다.
반대로 도심에서 자산을 증식시켜줄만한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반려견을 키운다. 전자의 삶을 선호하게 된 나로서는 도심이 아파트에서 좀더 교외로 발을 들였다. 조용한 것이 장점인 동네에도 큰 길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가 있다. 나로서는 이곳에서 굳이 고층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하늘을 찌를듯한 도심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도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남쪽으로, 남쪽에 사는 사람들은 북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늘 저 너머의 삶을 동경하곤 하니까.
어쨌든, 이 같은 취향을 가진 나로서는 도심을 뛰쳐나와 15층 이하 너른 공원이 있는 주거지를 찾아 나서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얼마 전 직장에서 이사 계획이 있는 분이 '왜' 도심의 대단지에서 지금의 집으로 옮겼는지를 물었는데, 우물쭈물 했지만 결론은 조금은 여유가 있는 자연의 공간에서 사람보다는 공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공간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것인지, 어릴 때에는 스케치북에도 내가 생각하는 공간을 그리고, 문을 그리고 가구를 들여놓고 창문이 위치를 정해 그려놓았다. 그대로 쭈욱 건축학과에 진학해 도면을 작성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만큼 수치적으로 꼼꼼하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언제나 하는 일로 바꿀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나는 주거지나 어쩌다 찾은 건축물의 공간이 가능한 영감과 휴식과, 도피를 주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스위스의 건축가인 르 코르브지에는 집의 기능에 대한 제시는 너무나 정확하다. 물론 그는 당대의 장식적 건축에 반응하며 말한 것이지만. 본질에 최대한 집중하고 싶다.
첫째, 더위 , 추위, 비, 도둑, 호기심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켜주는 피난처이고,
둘째, 빛과 태양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며,
셋째, 조리, 일, 개인생활에 적합한 몇 개의 작은 방이라고 했다.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p.63
이제오니 남향집이 좋다는 어릴 때 어른들의 말씀은 집의 필요조건인지 모른다. 물론 나는 느즈막한 오후에 노을을 볼 수 있는 남서향 집을 선호하지만, 어쨌든 햇볕을 쪼이는 일은 기분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인생 자체가 나그네라고는 하지만, 때에 맞는 곳에 살고 싶은 바람이다. 공간이 주는 성실함과 안락함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