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이 화두인 시대

벼락거지의 물질에 대한 시선

온 국민의 관심사, 부동산과 주식

요새 전 국민이 주식을 하는 판이다.

나 역시 작년 말부터 주식을 하게 됐다. 최근 트렌드를 좇아서는 아니고 몇 년 전부터 주식을 운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미루다가 이제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겨서이다.


그런데 온 국민이 주식을 한다니,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현금 유동성이라고들 한다. 나 같은 사람을 벼락거지라고도 하던데 불길 같이 치솟은 부동산 자산을 놓친 보상 심리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직장 생활을 하고 연차 쌓아며 괜찮다고 생각할만한 연봉을 받았다. 차곡차곡 하다보면 대출 없이도 집을 사겠거니 했다.


한 시대 먼저 살아본 선배와 와이프 말은 경청해라

15년 전이다. 첫 직장생활을 한 지 6개월을 보내고, 10년 위 선배가 대치동 근처 일원동에 아파트를 샀다. 선배는 무리한 대출을 받았지만, 강남사람이 된 것에 싱글벙글했다. 그리고 곧 같은 업계의 소규모 회사의 임원으로 가게 됐다. 당시 선배는 과장급이었는데, 부문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일을 고작 6개월된 내가 받게 됐다. 어쨌거나 선배는 나에게 인생의 배움을 남겼던 것 같다. " 내가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돈을 벌려면 은행 돈을 내 돈처럼 생각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거야"였다. 재정에 있어 진리였다.


몇 년 전에도 주택 가격은 급하게 오르고 있었다. 서초구에 대출 없이 살 수 있는 작은 빌라를 구매했다. 치솟는 주택가격 보전용이었다. 그런데 욕심이 부족해서 일까. 인내가 부족해서 일까. 부동산 가격이 다시 치솟기 바로 직전 해에 팔았다. 지금 가장 속 쓰린 사람이 이런 경우라고 하는데, 별로 그렇게 까지 손해 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 이 또한 정신승리인가?)

아무튼, 돌아보면 몇 번의 기회와 성급함이 있었다. 그냥 그때 대출을 받아서 내가 원하는 집을 샀더라면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되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수십 번 들었다.


무리한 대출을 받아 투자해 혹여라도 결과가 좋지 않다면, 몸과 마음을 헤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 충분한 경제력을 갖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나 경제의 흐름에 신입 시절, 그 선배의 말처럼 돈을 융통하는 약간의 융통성은 있어야 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직장인들의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 한 남자분이 게시글을 올렸다. 자기 와이프가 권해서 주식을 천주를 샀는데, 1억 원의 수익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와 와이프 말을 꼭 들으라는 것이다.

흔히들 부동산은 살림하는 여자분들이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선해하면 실제 실물 경제를 느끼고 돈을 쓰시는 분들이 경제적인 감각이 더 있다는 이야기란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하면, 일하면서 책으로 경제를 보고 재무제표 보면서 이론적인 계산으로 현실을 투사하기 십상이다. 살람하는 주부가 투자는 더 잘한다란 말은 웃고 넘기는 소리긴하지만, 통계와 경제이론 만으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매를 하든지, 주식을 하든지, 직접 현장에 나가봐야 돈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알게 되나보다.


왜 돈을 벌려하는가

본질적으로는 이렇다.

왜 일을 하고, 왜 돈을 벌려고 하는지를 생각하면

성경적으로는 게으른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마태복음 25장, 타국에 다녀올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각각 맡기는 장면에서, 한 달란트를 땅에만 묻어둔 종의 예화)

물론 성경에는 돈을 좇는 것을 경계하고 그것이 신과 멀어지는 우상숭배와도 같음을 함께 말하고 있다.


돈이라는 것은 잘 벌어서 내가 궁핍하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기특하게도 대학생때부터 성실하게 돈을 운용하고 그것을 나누고자 살아온 것 같다.

나만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차를 타서 뭣하겠는가. 사람들과 정서적 물질적 유대 없이 혼자 잘 사는 것은 참 황량한 인생이다. 그리고 정직한 생각으로 잘 투자해야 한다. 나의 투자가 잘못된 기업을 지원하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공부와 지혜가 필요하다.


궁핍은 자랑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청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타인의 경우 그 사람의 실수나 잘못된 사회적 시스템 맞아떨어지면, 쉽게 운이 없다보면, 궁핍해질 수 있다. 그 시스템 안에 있는 영역에서 궁핍에 처하지 않게 일하고, 지혜를 발휘해야만 자신과 주변에 유익한 존재가 될 것이다.


누군가 일하지 않고 본인의 성결한 무언가. 선교라든지, 수양이라든지, 아니면 공부나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남의 피와 노동에 빚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청렴하다는 어떤 사람의 길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금욕주의 또한 치우친 하나의 쾌락이다. 대가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은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인 존재이다.


돈만 좇거나(육체적인 것) 이상만 좇거나(정신적인 것) 하는 것 모두 치우치고 인간의 본성과 도리를 벗어난 것이라고 한다.


@ 예쁜 수세미가 눈에 띄면 사두게 된다. 몇 년 전 파주 헤이리에서 구입한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