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를 찾아서
벨기에 출신 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은 1909년에 "파랑새"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틸틸과 미틸은 행복의 의미가 치환된 파랑새를 찾아 환상적이고 험난해 보이는 모험을 떠난다. 내가 어릴 때 이 작품은 종종 TV에 방영되곤 했다. 틸틸과 미틸은 멀리서 파랑새를 좇아 떠났었지만, 결국 여행 끝 돌아온 자기 집 새장에서 파랑새를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모리스 마테를링의 파랑새는 행복이란,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하지 않은 소소한 무엇이다. 우리의 행복도 우리의 일상에 있는 무언가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는 그 행복, Happiness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교 3학년 때 같이 학교를 다녔던 한 언니는 진취적이고 다부져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행복하자"라고 했었다. 그의 공평함과 우직함은 좋았지만, 난 왠지 그 언니가 자주 말하는 "행복하자"는 말만큼은 불편했다. 행복을 현재와 다른 상태에 있는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말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이렇게도 좋은데, 뭘 자꾸 행복하쟤?, 슬플 때도 힘들 때도 있는 거지, 왜 자꾸 행복만 의미 있는 것처럼 저러지?" 뭐 이 정도의 생각이 들곤 했다.
그냥 내 곁에 있는 삶, 내 곁에 있는 이 정도의 기쁨이면 족하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물론 당연히 어쩌다 지나치게 힘들고 또 지나치게 과열되는 시기도 있다. 그럴 땐 예외다. 굳이 극단적인 터널을 뚫고 갈 필요는 없다 싶다. 아마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렇겠지.
그런데도 오지 않은 미래의 허황된 꿈, 걱정을 끌어와서 미리 걱정하고, 그것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현재를, 오늘을 은행에 대출이자 납입하는 듯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지금 노력해서 미래에는 행복하자"라는 구호처럼, 내 안의 못 보고 파랑새를 찾으러 나서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괜찮다. 오늘이면 족하다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 집에 파랑새가 없으면 어떡해야 하나?
내 집에 파랑새가 있으려면 오늘 맞닥뜨린 것들과 정면 돌파할 필요도 있고, 불필요한 감정들과는 비켜나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 앞에 상황들에 '아니, 괜찮아. 다 이렇게 살아' 하고 귀를 닫고 무시한다면, 내 마음도 나를 상대하는 사람들도 답답하고 결국 힘들어진다. 자기 안에 갇히지 말고 소통하는 것이 파랑새가 숨 쉬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시간만이 흐르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니까.
'그래, 우리 집은 파랑새가 있어' 다들 이렇게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코로나 19로 하루 종일 집에 다 같이 있어 보니, 이전보다 집이 좁다는 생각도 들고 남편과 아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힘들다는 투정도 슬슬 들려온다. 인간은 누구나 외부의 세계로부터 오직 자기만을 보호할 일정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한 집에 같이 있는 관계에도 상대방의 세계, 감정, 그런 것들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것이 비단 내가 교육해야 할 어린 아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생각과 독립된 세계를 교육과 훈계, 사랑이라는 이유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아이와의 파랑새가 한 번 산산조각이 나면, 아이가 민감한 시기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2021년에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모든 일상에서 파랑새를 키워보자.
@ 6th Jan. 2021, 서울의 아래쪽 지방에는 눈이 엄청나게 왔다. 어릴 때 "눈 오는 날"의 제목으로 그렸던 풍경이 재현되니 신기하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