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이맘때 있었던 우리 부부의 결혼식은 나름 유행에 앞선 모습이었다. 주례 선생님의 말씀 없이 양가 아버지가 인사말을 건네는 일명 '주례 없는 결혼식'에 '스몰웨딩'까지는 아니어도 '미디엄 웨딩' 정도 되는 하객 규모, 신랑 신부가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동시에 입장하는 방식까지.
사실 이 모든 결과는 결혼식 관련자들의 각기 다른 요구를 적당히 절충해 낸 결과였다. 지인 결혼식에서 '주례 말씀' 듣기가 너무 싫어서 내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견뎌주는 그 시간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제안하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스몰웨딩을 원하는 우리 가족과 적당한 규모의 웨딩을 원하는 남편 가족의 바람을 절충한 하객 규모를 정하였다.
중요한 것들이 거의 정해질 무렵, 엄마가 '신부 입장' 방법에 대한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셨다. 당신께선 '신부가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 신랑에게로 넘겨지는 방법'이 너무 싫으니 아버지와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주관이 없어 남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순리이겠거늘 하고 있던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엄마의 결의가 너무 단호해 보여 '그러리라' 하며 신랑과 팔짱을 끼고 씩씩하게 둘이 식장을 걸어 들어갔다.
결혼식의 양대 감동포인트인 친정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넘겨주면서 촉촉한 눈빛을 서로 교환하며 가볍게 포옹 또는 격려를 하는 그 장면이 연출되지 않아서인지, 우리의 결혼식은 감상에 빠질새 없이 그저 축복으로 가득 찬 행복한 순간들로 기억되고 있다. 6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왜 엄마가 그렇게 단호하게 신랑 신부가 같이 입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지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친정아버지로부터 남편에게 넘겨지지 않고, 스스로 걸어 나가게끔 해준 엄마에게 어찌나 감사한지 6년 후에야 이 감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의 결혼식에서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하객을 신부대기실에서 맞이했던 점이다. 한국의 보통 결혼식에서 '신부'가 '신부대기실'에서 '대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름도 '신부대기실'인 것을. 그런데 수많은 결혼식을 다녀보고 장장 몇 개월의 시간을 들여 결혼을 준비했음에도, '신부대기실'이 있다는 것 의미가 '내가 주인공인 결혼식날에 나는 한 구석에 숨겨져 있는 방에 앉아서 하객으로 누가 와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누군가 나를 불러주기만을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뜻하는지 결혼 당일 식이 시작하기 직전에야 깨달았다.
왜 아무도 나에게 신부대기실에서의 신부의 역할이 이런 것임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나는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준 하객들과 감사인사를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하객을 챙기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남편의 표정을 직접 보면서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저 신부대기실에 갇혀서 간혹 나를 보러 찾아와 주는 몇몇 이들을 통해 '바깥 상황이 어떤지' 전해 들을 뿐이었다. 오히려 부모님 옆에서 나란히 서서 하객을 맞이 했던 남동생의 결혼식에서의 순간들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날의 주인공이었던 남동생도 내 곁에서 하객을 직접 맞이하였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왜 신부는 하객을 직접 맞이하면서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6년이나 뒤늦은 화를 내고 있다. 이 분노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나 조차도 헷갈린다. 혼주 어른들인지, 남편인지, 하객들인지, 신부 대기실을 만들어 놓은 결혼식장 관계자인지.
고백하자면 7년 차 유부녀이자 6년 차 엄마인 나는 요새 종종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불쑥불쑥 찾아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분노를 분출해서 해소해야 하는지, 분노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지, 내 마음을 다스려 나를 지켜야 하는지 판단이 잘 되지 않아 매번 다른 방식을 취한다. 이 책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의 부제는 "냉정한 분노로 나를 지키는 이야기"이다. 왜 여자의 인생에 대하여 쓴 에세이가 '분노'를 타이틀로 달고 있는지. 왜 나는 요새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알고 싶지 않지만 알 것만 같다. 내가 책을 읽은 것인지, 책이 나를 읽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