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맛보지 않는 삶의 비밀
도마복음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이 짧은 문장은 마치 보물지도의 첫 번째 실마리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문에서 예수의 은밀한 말씀들을 기록하겠다고 다짐한 쌍둥이 도마는 곧바로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는지 선포한다.
먼저 이 구절의 도입부인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라는 대목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보통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쓰지만, 여기서는 그저 '그'라고만 부른다. 어쩌면 이 '그'는 예수가 아니라, 스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던 도마 자신일지도 모른다. 예수의 말씀이 가진 놀라운 생명력을 직접 목격한 도마가 감격에 겨워, 이제 내가 전할 이 기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려진다.
도마복음이 우리가 잘 아는 성경들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해석을 발견하는 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도마복음은 우리에게 숙제를 내어준다. 마치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듯, 예수의 말씀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스스로 찾아내라고 권유한다.
이것은 단순히 머리로 공부하는 지식이 아니다. 나의 일상과 삶 속에서 "아하!" 하고 무릎을 치며 찾아내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의 끝에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눈부신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맛본다'는 말은 참으로 서정적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온 감각이 살아나듯,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영원히 산다는 뜻을 넘어선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차가운 그림자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생생하고 뜨겁게 살아간다는 의미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기에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도마복음의 깨달음은 현대 정통 기독교의 시각과 만나 더욱 풍성한 의미를 갖게 된다. 정통 기독교에서도 역시 '죽음을 보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 길은 '해석'보다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열린다. 흔히 기독교가 죽고 난 뒤에 가는 천국에만 관심을 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성경은 훨씬 더 역동적인 현재의 삶을 이야기한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면 예수는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얻을 것이다'라거나 '옮길 것이다'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얻었고' '옮겼다'는 완료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과 영생은 먼 미래의 약속이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서 이미 시작된 현재의 사건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의 본성이 새롭게 변화하고, 그 변화된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사랑과 평화의 삶이 곧 내 안에 부활이 일어났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죽음 이후의 삶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성품을 닮아감으로써 이미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의 자리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정통 기독교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활의 권능이란 장차 무덤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일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순수하게 살아가는 현재의 힘이기도 하다.
도마복음이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지혜의 여정을 강조한다면, 정통 기독교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내 존재의 뿌리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완전히 옮겨졌다는 든든한 확신을 강조한다. 이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오늘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시작된 영원한 생명이 눈부시게 피어나는 축제의 마당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