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향한 여정은 예수의 명령, 즉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에서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행운이나 우연한 발견을 기대하는 얕은 시도가 아니다. 공관복음서가 제시하는 낙관적인 약속과는 달리, 도마복음은 이 탐구가 존재의 심연을 향한 집요하고 고독한 추구이며, 겉으로 드러난 세계의 모든 안일함을 거부하는 숭고한 갈증임을 전제한다. 구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내적인 인내와 집요한 의지를 요구하는 비순탄한 구도의 수행인 것이다.
그러나 찾음의 끝은 기대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 막상 진리를 마주한 순간, 구도자는 '고통스러우리라'는 역설적인 진술에 직면한다. 이 고통은 외부의 시련이 아니라 내면의 격변이다. 그가 오랫동안 쌓아 올렸던 습관과 관행, 세상의 잣대로 규정된 가짜 자아들이 진리의 빛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심리적, 영적 해체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익숙했던 모든 것이 무효화되고,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재구축의 진동이다. 복음의 말씀을 이해하고 완전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 바로 이 기존의 자아를 깨부수는 고통스러운 인고의 과정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파괴와 해체의 과정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통과했을 때, 고통은 '경이로우리라'로 변모한다. 이 경이(Thaumazein)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다. 그것은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파괴 속에서 숭고한 창조를 목격하며 터져 나오는 깊은 깨달음이자 벅찬 감격이다. 고통의 심연을 건넌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신성한 실재를 깨달음으로써 발생하는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감탄이다. 고통은 경이에 도달하기 위한 필연적인 통로이자 변증법적 과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는 약속을 실현한다. 이 다스림은 왕좌에 오르는 세속적인 권력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 바로 자기 존재의 왕국 안에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실현되었음을 뜻한다. 도마복음이 지칭하는 '나라'는 외부에 있는 천국이 아니라, 끊임없는 구함과 고통, 그리고 경이의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완성된 완전한 자아, 즉 '나'라는 나라를 다스리는 영적인 주권이다. 세상의 혼란과 내면의 무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의 질서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진리로 통치하는 고요하고 강력한 평화. 이 다스림이야말로 예수님의 진리탐구의 고통스런 여정이 빚어낸 궁극적인 해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