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안과 밖의 융합

by JayGee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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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3장 1-5절 원문

1)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를 이끈다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도다' 한다면 하늘의 새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2)그들이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 한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다. 3)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4)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5)그러나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예수께서는 먼저 '너를 이끈다 자처하는 자들', 곧 진리를 특정 영역에 국한시키거나 이분법적 논리로 현혹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예수는 나라(하나님 나라)를 하늘이나 바다 속에 가두어 두려는 헛된 가르침을 단호히 배격한다. 그들이 '나라가 하늘에 있도다'라고 외친다면 하늘의 새들이, '나라는 바다 속에 있도다'라고 속삭인다면 물고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나라에 이를 것이라 한다. 천국을 물리적인 장소나 특정 영역에 국한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나라의 본질을 놓치는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비유는 나라의 실현이 사람들의 깨우침, 즉 회개를 통해 생각을 바꿔야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 속의 살아있는 예수는 '나라'를 국가처럼 실체화와 공간화가 아닌 아버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어떤 상태(reign)로 해석했다. 이 가르침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6-7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 꼭대기에 있지 않고 땅 속의 심연에도 있지 않다'고 적시한 내용과 그 맥을 같이한다.


나라의 진정한 실체는 '진실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는 역설적인 선언에 있다. 이 말씀은 일반적인 이해인 누가복음 17:21의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해석을 넘어선다. 심지어 누가복음의 해당 구절이 NIV 성경 영문판에서 'the Kingdom of God is in your midst'로 표기되어 '너희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고려할 때, 도마복음은 더 심오한 차원을 제시한다.


천국은 내 안의 주관적인 존재(단수 '너희 안')일 뿐만 아니라, '너희 밖에 있다'는 외적 선언을 통해 안과 밖이 하나로 소통되고 융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안과 밖이 하나로 소통되고 융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천국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천국이 내면의 관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 인간과 인간의 관계, 과학과 환경 등의 모든 삶의 현장에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예수는 우리 내면의 질서를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인 개변(改變)을 일으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역사적 예수는 확고한 사회변화를 도모했던 분이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무질서하고 죄악이 가득한 이 무너진 사회를 어떻게 개변시켜 나가느냐를 강조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국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도마복음 속의 살아있는 예수는 하늘과 땅, 천국과 세상, 하나님과 인간, 빛과 어둠 등의 이원론적 세계가 결국은 하나의 현묘한 세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안과 밖의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는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 때'에서 발견된다. 자신을 깊이 통찰하여 내면의 진리로 욕망을 통제하고 스스로 나 자신의 왕이 되는 순간, 비로소 '너희는 알려질 수 있으리라'는 신성한 인정을 얻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 알려지는 길이며, 곧 '그리하면 너희는 너희가 곧 살아있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궁극적인 자각으로 이어진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8:3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 또 고린도전서 13:12에서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말한 것처럼, 도마복음의 '알려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알려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하나님께 알려지는 유일한 길은 바로 '너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도마복음의 예수는 말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곧 스스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것이며, 이는 요한복음 10장 14절~15절과 요한복음 14장 20절이 표방하는 하나님, 예수님, 성도들이 서로 간에 내재하는 상호내재설(Mutual Indwelling)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도마복음 속의 예수는 인간 개개인이 모두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임을 선포한다. 이는 유교의 '인간은 누구든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불교의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비록 기독교 정통은 인간이 예수님의 신성과 동일한 신성을 부여받을 수는 없다고 보지만, 도마복음은 십자가 사건 이전에 예수께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얘기함으로써 예수의 높은 식견과 진리를 예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성한 자기 인식을 포기하고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명확하다. 그 인간은 '빈곤 속에 살게 되리라. 그리하면 너희 존재는 빈곤 그 자체이니라.' 이 빈곤은 돈의 문제가 아니며, 갈라디아 4:6에서 바울이 '인간이 하나님의 종이 아닌 아들됨을 선포'했듯이, 인간이 부여받은 하나님의 아들됨의 잠재력을 자각하지 못한 영적 빈곤을 의미한다. '너 자신을 안다'는 것은 현 삶에서 회개와 고백을 통한 변화를 의미하므로, 이 변화가 없는 삶이야말로 존재의 가치와 풍요를 잃어버린 빈곤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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