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4장 1절에서 5절
도마복음이 품고 있는 '살아있는 예수의 은밀한 말씀'은 언제나 풍요로운 상징체계로 가득하다. 그 시작은 '나이 먹은 어른'과 '칠일 갓난 작은 아이'의 대조적인 형상에서 발현된다. 여기서 '칠일 갓난 작은 아이'는 삶의 언어나 분별심 같은 의식의 체계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원초적 혼돈(Chaos)의 상태, 혹은 무분별의 혼융(Confusion of non-distinction)을 내포하는 존재이다.
공관복음서에서 어린 아이의 이미지는 다르게 제시된다. 마태복음 18장 1절에서 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아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위 언급에 의하면 어린 아이의 이미지는 '자기를 낮춤'이라는 겸손과 복종의 도덕적 가치로 순결, 천진무구, 사회에 대한 무관심, 무조건적 신앙 등의 도덕적인 덕성의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 어른이 이 '칠일 갓난 작은 아이에게 삶의 자리에 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아니한다면'이라는 구절은, 이러한 도덕적 덕성을 넘어선다. 도마의 어린아이는 내면적, 원초적, 본질적 웅혼함, 무분별의 혼융의 맥락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 물음은 기성의 의식체계와 세속적인 지혜를 가진 어른이 자신의 근원적 순수와 본질적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 '칠일 갓난 아이'에게 묻는 행위는 성숙한 자아가 태초의 무지를 통해 영적인 통찰을 얻으려는 역설적인 행위이며, 이 깨달음을 통해 그는 '생명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시작점에 서게 된다.
다음 구절인 '첫찌의 많은 자들이 꼴찌가 될 것이요'라는 선언은 속도의 경쟁과 종말론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첫찌'는 오로지 1등과 최고를 목표로 삼고 정상을 향해 전진하는 존재로, 크로노스적 시간으로는 삶의 종말을 향해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종말론적 사유는 첫찌의 시간관이며, 빨리 간 만큼 빨리 아무런 꿈과 희망이 없는 죽음의 세계로 전락한다.
반면 '꼴찌'를 한 번 보라. 그는 속도의 경쟁을 안중에 두지 않고 천천히 주변을 음미하며 삶을 즐기는 존재이다. 그는 종말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직 종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수한 존재이며 풍요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을 향한 경쟁이 모두 끝나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남은 사람이 없어 꼴찌가 곧 첫찌가 되는 역설적 순환이 발생한다. '첫찌의 많은 자들이 꼴찌가 된다'는 것은 결국 첫찌가 정상을 향해 속도를 내지만, 그 정상에서 다시 순환되는 것처럼 꼴찌의 여유를 그리워하여 꼴찌로 간다는 것이다. 꼴찌 뒤의 꼴찌로 가게 되니 꼴찌가 첫찌가 되고 첫찌는 꼴찌 뒤의 꼴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첫찌의 경쟁적 존재 방식과 꼴찌의 여유로운 존재 방식은 '또 하나된 자가 될 것이니라'는 최종 선언으로 통합된다. 이는 꼴찌나 첫찌라는 대립적인 개념이 궁극적으로는 해체되고, 하나의 근원적 존재(The One)로 귀결됨을 의미한다. 갓난 작은 아이로서는 원초적 혼돈 속에서 첫찌나 꼴찌가 곧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분별심과 경쟁의식이라는 이원론적 세계를 넘어, 무분별의 혼융(Fusion) 상태에서 내면적, 원초적, 본질적 웅혼함을 되찾는 자만이 도달하는 하나됨의 경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