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인? or 다수당 정치인이 주인?
이 땅의 정치인들은 습관처럼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외쳤다. 헌데 그들이 말하는 '국민'이란, 늘 자신들의 깃발 아래 모여든 특정 진영에 한정되는 듯한 서글픈 기시감은 왜일까.
반대 의견은 배신으로 치부되고, 국회는 다수당의 폭주로 소수자의 목소리가 소거된 밀실이 되어버린 작금의 풍경 속에서, 그들은 국민의 대표가 아닌, 오직 진영의 대표로 전락했다.
법과 정의는 이미 정치의 종속물이 된 듯 보인다. '국민이 허락한 권력'을 자신들의 사유물로 착각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의 왕국. 국민의 삶보다 당리당략이 우선시되는 이 차가운 구조 속에서, 우리가 '독재국가 같다', '공산주의 같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암울한 현실의 책임에서, 우리 국민은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각종 비리 의혹과 독선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표를 던진 것은 결국 우리 유권자들이었다. 법과 진실보다는 진영 논리와 감정적 판단을 앞세워 투표했던 다수의 선택. 탐욕스러운 정치인을 뽑아놓고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탓하는 것은, 비극적이게도 자기모순이라는 이름의 올가미이다.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냉정한 진단이 아프게 와닿는다. 그들을 선택한 것도, 그들을 지지한 것도 우리 국민이었기에, 이 모든 상황은 국민 스스로가 엮어낸 '자승자박'의 결과인 셈이다.
국민의 어리석은 선택이 반복되는 한, 이 나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뼈아픈 예언이 낭만 대신 현실의 무게로 가슴을 짓누른다. 다음에는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또다시 같은 투표의 굴레로 이어질 뿐이라는 비관론이 대지를 덮는다.
실제로 다음 선거에서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만약 이 현 독재 상황이 싫다면, 가장 상책은 이 땅을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최근의 통계는 더욱 씁쓸한 낭만을 선사한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 앤 파트너스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고액 자산가(백만장자) 순유출 규모는 몇 년 새 가파르게 증가하여 세계 4위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물론 통계 주체와 기준에 따라 수치는 다소 다르나, 순유출 규모가 심각하다는 것은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인구 대비 이민자 수로 따지면 세계 최상위권에 해당할 정도라니, 이는 단지 '부자들이 돈 때문에 떠난다'는 경제적 이유를 넘어선, 이 사회 시스템과 미래에 대한 가장 비싼 형태의 불신임일 것이다.
상속세 부담, 경제 불확실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불안정이 그들을 움직이는 주된 이유로 꼽힌다. 법이 아닌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듯한 불안한 환경에서, 자신의 자본과 가족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낭만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낡은 배에서 탈출하는 선승(船客)처럼, 캐나다, 미국, 호주와 같은 새로운 항구를 찾아 떠난다. 그들의 엑소더스는 단순히 돈의 이동을 넘어, 이 나라의 투자 자본, 고급 인력, 그리고 희망이 함께 유출되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여행작가 진종구 교수의 책 '동행'에서 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삶의 평화와 위안을 찾았듯이, 이 나라를 떠나는 부자들의 발걸음은 어쩌면 그들만의 고독하고 냉철한 순례길일 것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은, 이제 더 이상 삶의 안정과 정의를 담보하는 집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정치적 불안정의 굴레가 되어버린 듯하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허상 속에서, 정작 주인이었던 국민은 자승자박의 딜레마에 빠지고, 가장 영향력 있는 부(富)는 쓸쓸한 탈출을 감행한다.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다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뿐이다. 이 씁쓸한 허상뿐인 정치적 낭만은 과연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