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活字)의 황혼, 그 쓸쓸한 풍경 앞에서

by JayGee JIN

요즘은 덜컹거리는 전철의 소음만이 유일한 대화인 시대다. 출퇴근길 지하철, 어깨가 닿을 만큼 빼곡한 인파 속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세상에 갇혀 있다.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 영상에 홀린 듯 빠져든 무표정한 얼굴들. 그들의 동공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화려한 영상을 좇느라 바쁘지만, 정작 그 눈빛에는 사색의 깊이가 없다.


불과 20, 30년 전만 해도 이 좁은 객차는 신문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잉크 냄새로 가득 찼었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활자로 읽어내며 하루를 준비하던 그 진지한 눈빛들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기계화와 첨단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우리의 고유한 풍속도마저 남김없이 휩쓸어 가버렸다.


편리함이 곧 진보는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이 주는 즉각적인 쾌락은 우리에게서 '생각하는 힘'을 앗아가고 있다. 영상은 떠먹여 주는 밥과 같아서 씹을 필요 없이 삼키기만 하면 되지만, 글은 꼭꼭 씹어 소화시켜야 하는 거친 곡물과 같다.


뇌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위험한 변화를 경고해 왔다. 일본 도호쿠 대학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의 연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동영상을 시청할 때 인간의 뇌는 수동적으로 반응하여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거의 멈춰버린다고 한다. 반면, 글을 읽을 때는 뇌의 전두엽, 특히 '배외측 전전두엽'이 활발하게 자극받는다.


이는 뇌의 전신 운동과도 같아서 창의력을 증진시키고, 노년의 가장 큰 형벌이라는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패가 된다고 한다.


영상을 보는 것이 뇌를 늙게 만든다면, 책을 읽는 것은 뇌를 다시 젊게 만드는 기적과도 같은 일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진실 앞에서도 활자는 영상에 패배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활자가 죽어가는 이 시대를 목도하는 것은 마치 나의 장례식을 미리 보는 듯한 서글픔을 준다. 밤을 지새워 깎고 다듬은 문장들이 화려한 썸네일과 1분짜리 숏폼 영상에 밀려 먼지처럼 흩날린다.


독자가 사라진 시대에 작가는 누구를 위해 펜을 드는가. 읽히지 않는 글은 수신인 없는 편지와 같고, 닿지 못한 문장은 허공에 흩어지는 독백일 뿐이다.


오늘도 나는 전철 한구석에서 스마트폰의 불빛 아래 창백하게 굳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영혼이 화려한 영상 속에 갇혀 부유하는 동안, 나는 낡은 가방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든다. 활자 하나하나를 눈으로 더듬으며, 사라져 가는 낭만의 시대를 향해 홀로 애도한다.


이것은 비단 글을 읽지 않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뇌, 느끼지 못하는 가슴을 안고 살아갈 미래의 우리 자화상에 대한 슬픈 연가(戀歌)이자, 글 쓰는 자로서 느끼는 뼈저린 고독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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