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어린이 응급실
Mein Sohn hätte Magnetkugeln verschlucken können. ‘접속법 2식의 화법조동사가 있는 과거형 Konjunktiv II der Vergangenheit mit Modalverben’ 이라는, 어마무시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독일어 문법으로 쓰인 문장이다. 한국어로는 ‘아들이 자석을 삼킨 것 같아!!!’
나는 매주 한 번 발레 수업을 듣는다. 강수진 발레리나가 활동했던 발레단의 도시,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발레학원이지만, 내가 하고 있는 걸 발레라고 부르기엔 아직 부끄럽다. 지난주 수업 후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남편에게 이제 간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민이가 자석을 삼킨 것 같아’ 문자를 더 해서 뭐 하리.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평온했다. 율이와 민이가 잠들려고 해서 일단 재우면서 급히 구글 검색을 했다. 한국말로도 독일말로도, 아이가 자석을 삼킨 경우라면 긴급이니 당장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자석 여러 개를 삼켰을 경우 장에 구멍을 낼 수도 있다는, 접속법 2식의 화법조동사 어쩌고보다 더 무서운 말들이 나왔다.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무엇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입에 뭘 오물거리고 있어 손으로 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삼켜버렸다는 것이다. 요새 가지고 놀던 자석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급히 억지로 토하게도 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자는 민이를 데리고 내가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혹시 병원에서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으니 핸드폰 충전기와, 민이 기저귀, 여벌 옷, 먹을 것 등을 챙겼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7시 30분쯤. 내가 집에 도착한 게 8시쯤. 자는 아이를 고이 유아차로 옮긴 게 8시 50분. 버스 타고 병원에 9시 20분쯤 도착했다. 율이 때 응급실에 한두 번 온 적이 있어서 큰 병원에서 헤매지 않고 바로 접수했다.
접수대에서 설명했다. ‘아들이 자석을 삼킨 것 같아!’ 바로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간호사가 왔다. ‘아들이 자석을 삼킨 것 같아!’. 곧 의사가 올 거라고, 그 사이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했다. 9시 30분. 의사가 왔다. ‘아들이 자석을 삼킨 것 같아!’. 남편이 왜 바로 병원에 오지 않았냐고 했다. 딸도 집에 같이 있었거든… 청진하고 심박수 재고 배를 만져보고는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했다. 배에 있을 경우 안으로 들어가서 꺼내야 한다고(!) 했다. 구글에서 배를 갈라 수술 한 아이 블로그를 보고 간지라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는데, 쓰면서 보니 적나라 한 말이었네. 9시 40분. 방에서 나와 초록선을 따라 방사선과에 갔다. 당직실에서 막 나온 듯, 편한 바지에 반팔을 입은 분이 상황을 물어봐서 또 대답했다. ‘아들이 자석을 삼킨 것 같아!’. 딱딱한 엑스레이 대에 누워 만세 한 채로 손을 잡고 있자, 민이는 그제야 잠에서 깼다. 민이를 한 번 찍고, 가져간 자석도 찍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자석은 정말 정말 위험하다고 내게 강조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을 나왔다. 그게 10시.
10년의 독일 병원 경험 중에서 이렇게 빨리 처리된 적은 처음이었다. 얘네도 빨리 할 수 있는 애들이었어! 잠에서 깬 민이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쭉 슈투트가르트의 밤을 즐겼다. 한 겨울밤의 꿈으로 끝나서 너무나도 감사한 밤이었다.
그 밤에 병원에서 나는 열심히 잘못된 독일어 문장을 내뱉고 있었다. 아마도 Er könnte verschluckt haben 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삼켰는지 아닌지 모르겠어’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독일어의 한계로 ‘삼켰어’로 이해되었던 건 아닐지. 독일에서 병원 예약을 빨리 잡는 방법으로 증상을 과장해서 얘기하라는 조언이 있는데, 그래서 검사 진행이 빨랐나 싶기도 하다. 이렇게 독일 생활의 에피소드도, 내 독일어도 하나씩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