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바퀴 없는 의자를 쓰게 되었다.

가끔은 거지 같기도, 그래도 찾아야지 행복.

by 포티
2023년 1월 14일의 이야기


바퀴 없는 의자를 샀다.

내 자의는 아니었다.

조립해 보니 바퀴가 없었다.


분명 내가 집어온 이 의자에 바퀴가 없다는 것쯤은 조립하기 전 미리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난 실수 없는 조립을 위해 정말 열심히 설명서를 보았기 때문이다.

설명서 앞엔 완성된 의자의 그림이 있었고, 꼼꼼히 읽은 설명서 첫 장에 그려진 부품 그림엔 바퀴가 없었다. 그럼에도 난 조립이 다 끝나고서야 바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느꼈다.

인간은 시야가 좁구나.

아니, 시야가 좁다는 건 사실 알고 있었다.


편의점 알바를 했던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는 상황일 것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다 보면 ‘포켓몬빵 있나요?’ 같은 질문을 다른 인물들에게 여러 번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에도, 계산대에도, 심지어 근무자 바로 앞에도 관련 안내문을 붙여놓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같은 질문은 하염없이 들어온다. 그래, 인간은 시야가 좁다. 이 사실을 난 바퀴 없는 의자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상기하였다.

젠장 난 안내문도 안 읽고 판매도 못하는 담배를 하염없이 부르는 그 손님들처럼 되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한 달 동안 담배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었다-그냥 그 꼴 그 자체이다.



바퀴가 없는 의자.

사실 우리는 바퀴 없는 의자가 더 익숙하다. 부엌에서, 화장대에서, 학교, 학원에서조차 우린 바퀴 없는 의자를 자주 본다. 심지어 의자를 그리라고 했을 때 바퀴를 달아 그릴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많으면 어떡하지..)

근데 나는 왜 바퀴 없는 의자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가. 바퀴 없는 의자로 살아온 세월이 몇인데 이 바퀴 따위에 짜증이 났을까. 책상 앞엔 바퀴 있는 의자가 당연하니까?


아니, 사실 내 방 구조 때문이다. 내 방은 책상에 앉으면 등 뒤로 책장이 놓여있는 구조인데, 책장을 가려면 두 걸음은 더 가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바퀴 없는 의자로는 슝하고 가서 슝하고 다시 돌아오는 그 간단한 이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의자를 밀고 일어나 책장에 가서 또 무거운 짐을 들고 책상에 오면, 다시 무거운 의자를 내 몸에 밀착시키며 앉아야 하는. 이런 귀찮은 과정들이 생겨난 것이다.


난 바퀴 없는 의자를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곰곰이 고민했다.


1. 분명 섹션을 잘 확인하고 들어가 부품을 골랐던 것 같은데, 원래 사고 싶던 의자가 품절되어 지금의 의자를 골랐던 그 순간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2. 아니면 의자를 결정하던 그때, 이케아에서 결정장애다운 고민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내 잘못이었을까(답지 않게 쿨한 선택이긴 했다)

3. 그렇게 따지면, 새롭게 내 방을 꾸며야 했던 주원인, 원래 내 방으로 이사 온 우리 언니를 탓해야겠다.


이렇게 탓을 찾을래도 내게 남은 건 결국 바퀴 없는 의자뿐이니, 귀찮을 게 뻔한 의자와의 동거를 상상하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다른 대안이 있지 않았을까 물을 순 있지만.


반품을 하기엔 조립이 정말 잘 되었고,

이케아를 다시 가기엔 또 멀었고,

바퀴 있는 언니 의자와 바꾸자니

나는 이 비싼 의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 난 비싼 의자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만 버텨내면 이기는 거지.

내가 맞다 하면 되는 거지.

큰 네모 구멍에 동그라미를 넣더라도 쏙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



난 짜증이 났던 그날의 감정과 무색하게 단 며칠 만에 이 바퀴 없는 의자에 적응해 버렸다. 허탈한 웃음이 가끔 내 입술사이를 비집고 나오긴 하지만, 바퀴가 있어 뒤로 밀리던 현상이 사라져(합리화 맞다) 나름 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장점을 발견하고 또 새로운 단점에 적응해 나가며 딱히 귀찮음을 느끼고 있지도 않다.


난 결국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귀찮을 것이다, 힘들 것이다’를 뱉어내며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는 내 감정을 소모하고 있었다. 막상 그 미래가 오늘이 되면 잘 지내면서 말이다.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이런 바퀴 없는 의자 따위로 느끼곤 한다.


원하던 일이 꼬일 수도, 되는 일이 없을 수도 있는 수많은 미래에, 존재할 것이라 예상하는 감정들을 미리 꺼내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치 아이의 발장구로 생겨난 작은 너울들에도 쉽게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사실 나뭇잎보다 무겁고 큰 나에겐 느껴지지도 않을 파동인데도 말이다. 설사 정말로 그 너울로 내 몸이 흔들린다 하더라도, 혹은 큰 파도가 나를 덮칠 듯 매섭게 다가오더라도, 인간은 그걸 또 ‘서핑’이라 부르며 놀이로 승화하는 강한 존재니까. 시야가 좁다면 하나씩 오늘을 살고, 또 적응하면 되지. 그게 인간이고 ‘나’니까.


바퀴는 없지만 안정적인 의자의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금의 나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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