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눈물처럼, 물처럼 흐른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나는 주일 전날 본당이 아닌 곳에서 특전미사를 드린다. 그날 가게 된 성당에서 마침, 머리가 희끗한 신부님이 40년 사제 생활을 마친다고 했다.
'강산이 네 번 바뀐 셈이니 꽤 오랜 시간이다...... 내가 엄마로 아내로 산지도 35년, 근데 엄마 사전에는 은퇴란 게 없네.'
신부님은 2만 번 이상의 미사를 집전했다고 했다. 대략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저런 셈을 하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보셨나 보네...... 보통 엄마들은 하루 한번 이상 밥상을 차리는데 대부분 그 이상일 때가 더 많을 거야, 아마.'
신부님은 자신이 사제로 살아온 세월이 기적 같다고 했다.
'독신, 재속사제로 산다는 게....... 내가 산 세월도 기적 같은데 신부님은 오죽하랴.'
마지막으로 주변의 많은 은인들과 신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감사가 우러나오는 건 어쩌면 잘 살았다는 증거일 거야...... 내게도 고마운 사람들의 많지, 가깝든 멀든 좋든 싫든 나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 기억하지는 못했도 퉁쳐서...... 나도 감사?'
성전에 앉아만 있어도 마음은 바다같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찰나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기적이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이려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정말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쩌랴. 주일에 일이 생겨 특전미사에 간 건데 뜻밖의 강론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데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눈물이 볼을 타고 턱을 지나 목으로 줄줄 내려오는 게 아닌가. 티 안 내려고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손이 자꾸 올라갔다. 볼을 타고 계속 흐르는 눈물. 누가 보면 영락없이 떠나는 신부님 때문이라고 했겠지만 알지도 못하는 신부님, 그것도 좋게 좋게 떠나는 신부님을 보고 슬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 안에 고인 슬픔에 겨워 울었던 건데, 전과 달리 요즘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 때문인지 마음이 말갛게 개었다.
이어서 신부님은 사제의 삶을 마치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하느님이 마련해 주실 거라고 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이란 저런 모습이겠지...... 시작은 끝과 이어지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니 살아있는 한 우리는 늘 길 위에 서 있는 걸 거야.'
길.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어디로든 가는 중이다. 목표하는 곳이 분명하든 분명하지 않든. 우리에게 허용된 삶은 길을 걷는 것과 같아 보인다.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머물 수는 없고 막혔어도 되돌아 나오면 그만인 하염없이 흐르는 물 같기도 하다.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흐른다, 길도 물처럼.
미사를 마치고 성전밖으로 나오는데 신부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면서 떡을 받아가라고 했다. 선물이라면 언제나 기꺼이, 라 손에 받아 들었는데 문득 떠나는 쪽에서 주는 선물이라니, 보통 잔치 때 떡을 나눠주지 않던가, 란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이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모르지만 달릴 길을 다 달려왔고 새로운 길에 들어선 것이니 분명 축하할 일인 것이니, 잔칫날이 맞았다. 길은 길과 길로 이어져 있으니 생명이 있는 한 어느 지점에 서있든 그것은 끝인 동시에 시작임을 기억해야겠다.
미사 내내 분심 가득했던 날. 뜻밖의 떡 선물을 받아 가방에 넣고 성당마당을 지나 거리로 나왔다. 문득 은퇴신부님의 앞길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