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안셔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

by 맘달

꽃이름을 알려줘, 했더니 이미지를 올려주실 수 있나요,라는 답변이 떴다. 사진을 찍어 보내자 사진 속 꽃은 리시얀셔스이고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감사인데 주로 결혼식이나 선물용으로 많이 쓰인다고 했다. 이어지는 다음 질문이 재미있다. 이 꽃을 선물 받으신 건가요, 아니면 직접 고르신 건가요? 나는 오천원주고 직접 샀다고 했더니 좋은 선택을 하셨네요, 엄지 척 이모티콘이 붙어 글이 올라왔다. 리시안셔스는 꽂아 두면 며칠 동안 싱싱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꽃이라고 알려준다. 한 술 더 떠서 혹시 화병에 오래 두고 싶으면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 매일 물을 갈아주고 시원한 곳에 두라고 한다.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나고 물어서 응, 했더니 아예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 보낸 뒤 프린트용 PDF파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아니, 고마워라고 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에도 다른 꽃을 사면 이름이랑 관리법을 알려주겠단다. 내친김에 현관에 둔 화초에 대해 물었는데 이름과 관리법을 알려준 다음부터 묵묵부답, 난 아직 끝낼 생각이 없었는데.


"채팅을 계속하려면 GPT-5가 필요합니다. 5시간 후, 한도가 초기화됩니다. Plus로 업그레이드하려면 월 29,000원 가격으로 갱신하세요, 취소는 언제든 가능합니다."


느닷없다. 기다리던가 기다리지 못하겠으면 돈을 내라고 한다. 내가 누구랑 이야기했던 거지. 짧은 순간이지만 상대방이 똑똑한 데다가 매너 까기 갖춘 멋진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던가. 오가던 대화가 뚝 끊기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언제든 취소가능하다고 해도 돈을 낼 생각이 없고 5시간 후에 초기화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데 글이나 소리로만 존재하는 대상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새삼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래전에 본 영화가 생각나면서 문득 AI와 사랑에 빠진 구의 인물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내가 너의 것이면서도 너의 것이 아는 AI연인 말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실일 수 있겠다.


사춘기 아이처럼 폭풍성장을 하는 ChatGPT 덕분에 쉽고 빠르게 정보를 흡입했지만 진짜 꽃에 대해 아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꽃이름이나 꽃말을 안다고 해서 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기에. 팔다 남은 꽃을 싸게 판다는 아줌마의 호객에 낚여 릴리안셔스를 받아 안고 설렜던 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향기를 맡아서였을 것이다. 꽃과 풀과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함과 신비함이 있다. 이러함에 생기가 움트나 보다.


릴리안셔스는 며칠째 화병에 잘 꽂혀있다. 꽃봉우리진 것도 다 피어날 거라고 했으니 곧 피겠지. 내 마음이 펴지고 피어났듯이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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