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음을 눈앞에 두라

정답이 없는 마음놀이

by 맘달

# 마음놀이


<마음놀이> 중고서점에서 발굴한 책이다. 정가의 반을 주고 샀다. 저자 비수민은 11년간 군의관으로, 보건소 소장으로, 내과의로 일하다가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중국의 여성작가라고 한다. 34살, 글을 써보라는 아버지의 권유와 격려에 힘입어 일주일 만에 중편을 탈고했다니 놀랍다. 딸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본인도 글을 쓰고 싶었다는)도 그렇고 자신의 재능을 살린 딸도 대단하다.

소장도서

#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의 힘


책에서 말하는 마음놀이의 재료는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가 전부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표지 아랫부분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걸 이번에 처음 발견) 그녀가 제시한 대로 따라 해 봤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언어화하는 것, 활자화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식의 작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한번 따라 해 본다고 해서 갑자기 뭔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알아두면 언젠가 다시 써먹을 날이 올 것이다. 타인은 쉽게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보는 게 어려운 만큼 마음놀이 방법을 챙겨두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내가 볼 수 없는 내 모습을 남편과 아이들이 더 잘 보는 것처럼 오랜 시간 많은 접촉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가족, 친지, 절친의 눈으로 보는 게 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참고할 만하다. 살을 섞고 사는 남편, 열 달을 품어 낳은 자식, 돌봄과 결핍을 동시에 물려준 부모, 부모사랑 쟁탈전에서 성장한 형제자매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게 '나'의 일부다. 있는 걸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는 건 있는 거니까.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


#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곱 가지 심리치유 프로젝트


참고로 부제와 일곱 가지 프로젝트 제목만 적어본다.


첫 번째 놀이 - 나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

두 번째 놀이 - 나의 가장 중요한 타인은 누구인가?

세 번째 놀이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네 번째 놀이 - 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다섯 번째 놀이 - 부모 다시 고르기

여섯 번째 놀이 - 나의 묘비명을 쓰라

일곱 번째 놀이 - 나의 생명줄을 작성하라




# 나의 묘비명 쓰기


여섯 번째 놀이는 나의 묘비명을 쓰기다. 책에는 여러 사람의 묘비명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묘비명과 우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살아있어서 '나의 묘비명 쓰기'라는 놀이를 할 수 있지만 죽은 자들은 이런 놀이를 해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아직 남아있는 삶이 있고 보충하거나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의미심장한 놀이다.


이 놀이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현재 상황에서 나를 위한 '현재형 묘비명'을 써보는 것. 다른 하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담는 '미래형 묘비명'쓰기다. 둘 다 써보고 보관했다 나중에 꺼내보면 달라진 자신을 보게 된다는데 아직 해보지 못했다. 책을 접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묘비명 쓰기는 쉽지 않다. 멋지게 잘 쓰려는 욕심인지 지난 삶이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 않아서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빈 종이가 주는 막막함, 연필이 주는 묵직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연필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 매일 죽음을 눈앞에 두라


베네딕도 성인이 남긴 '매일 죽음을 눈앞에 두라'라는 말은 죽음을 자주 묵상하고 들여다보라는 말이라고 짐작한다. 가톨릭에서 죽음은 소멸,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 부활,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가까이에서 목격한 죽음들.

할머니,

오빠,

친구,

시아버지,

친정아버지.


상실을 겪을 때마다 삶에 대한 큰 물음이 내게 던져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한 줄 묘비명을 쓰지는 못해도 묘비명에 포함될 내용들은 많다. 압축이 되지 않을 뿐.

1. 할머니처럼 며칠만 앓다가 가자.(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몸살림을 잘해서) 2. 오빠처럼 역할에 치여 자기 삶을 놓치진 말자 3. 친구처럼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는 말자 4. 시아버지처럼 요양병원에서 죽지 않기를 기도하자.(이 또한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5. 친정아버지처럼 남아있는 사람들과 화해하고 떠나자.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살던 대로 죽는다는 말을 믿고 싶다. 기왕이면 잘 살다가 잘 죽고 싶으니까.

엽서그림 By momd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