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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n 13. 2022

우리들의 블루스 옥동과 동석 이해하기

내가 죽어서도 해결되지 않는 죄스러움이라면 말을 삼킬 수 밖에 없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좋다, 재미있다, 별로다 이렇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0회로 방송된 드라마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였을거고, 저 또한 한 회 분량 안에서도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어색하게 느끼는 등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그러나 19회의 어떤 장면부터 마지막회까지 제게 잔상이 남는 장면들이 있어서 몇 글자를 끄적입니다.


19회에서 어멍 옥동을 태운 동석의 차가 비보호 신호를 받기 위해 정차도, 주행도 아닌 듯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비보호.. 보호는 해 줄 수 없으니 알아서 좌회전 하라는 그 신호를 보며 동석의 인생이 디졸브 됩니다. 비.보.호.라는 세 글자보다 동석의 인생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회를 보며 왜 옥동이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언어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언어가 의미있게 되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정확한 뜻을 남깁니다.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수록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답답한 매듭이 어느정도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목포에서 제주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옥동은 자신이 글자로 써 보고 싶었던 단어들을 부르고, 동석은 그 단어들을 객실 창문에 써 줍니다. 그 단어는 아버지 이름, 어머니 이름, 남편 이름, 강아지 이름 등 너무 간단한 말들입니다. 항상 마음에 사무쳐 있지만 그 간단한 이름 석자 조차도 거의 쓸 줄 몰랐던 옥동이.. 아들에 대한 죄의식와 미안함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옥동과 동석이 비 내리는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동석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옥동은 담담하게 "나는 미친년이다. 내 장례도 치르지 말라, 너 울지도 말라"라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아들에게도 용서하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동석의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이 슬프지만, 숲에 내리는 저 담담한 빗물이 옥동의 눈물처럼 느껴집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미안하다'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아무렇게나 대해 버리라는 말로 대신하는 어머니의 대사. 미안하다는 말에 담을 수 없는 어머니 마음 속 죄스러움이 전해져 옵니다. 그래서 아들 동석의 눈물보다 숲에 내리는 큰 비를 배경으로 담담하게 말을 건네는 옥동의 대사가 더 사무치게 남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입구에 놓인 '기상악화로 인한 등산로 진입 금지' 팻말 때문에 동석은 백록담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어멍에게 백록담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올랐지만 기상악화로 인해 때를 놓친 겁니다. 동석의 눈물은 백록담을 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 아니라, 서로 때를 놓쳐버린 어멍과 자신의 운명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습니다.


어멍은 말합니다. 말기암이지만 (말기암 덕분에)동석과 한라산에 오르는 지금이 평생에 걸쳐 제일 행복한 순간이라고..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면, 지금 나의 숨이 얼마나 더 소중할까요.. 그런데 아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미안함을 자신에 대한 증오로 묻어놓았던 어멍이 아들과 따뜻한 순간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히 지금이 제일 행복한 순간일 겁니다.


어멍 옥동은 13세때 식당 잡부일로 세상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어멍의 성장은 13세에서 멈추었을 겁니다. 늙은 노인의 몸에 13세 어린이의 마음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성장하지 못한 그 어린 마음으로 인생을 겨우 살아냈는데 남편을 잃고 딸자식을 먼저 보내고, 자신이 식당살이를 시작한 그 나이에 접어든 아들에게까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으니 어떤 말로 마음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옥동은 어머니의 미숙한 언어와 표현에 속 터지는 모든 자식들의 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옥동의 진심어린 해명과 사과를 기다렸겠지만 우리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 엄마의 인생과 고생은 그 누구의 수려한 말로 표현해낼 수 없는 시간들임을.. 시청자인 우리는 옥동과 동석이 답답하지만, 누군가의 아들 딸인 우리는 옥동과 동석을 가슴 밑바닥에서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옥동이 이미 커버린 동석에게 아무리 미안하다고 말한다해도 그 날 엄마를 붙잡고 울던 어린 동석의 슬픔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미안할수록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하는 우리들의 엄마들이 그 스크린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네요.

사람은 조금 미안하면 사과를 할 수 있지만, 내가 죽어서도 해결되지 않는 죄스러움이라면 한 마디의 말도 내뱉지 못하고 삼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말들을 삼키면서 살아나가요?

이런 우리들이지만 불행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 매일 매일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말을 건네는 작가의 글에 웃음이 나오네요. 작가님, 알겠습니다. 우리 같이 오늘도 내일도 이 시간들을 담담히 살아내 보죠. 말기암 환자 옥동이 인생의 마지막 날에도 기쁜 마음으로 아들의 된장찌개를 끓이고, 강아지의 밥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회 시청소감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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