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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l 16. 2022

복날에 삼계탕 가게에서 알바한 사연

가족중에 삼계탕집 주인이 있으면 복날은 남량특집이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초복이 왔습니다.

정말 가까운 친인척 중에 삼계탕집 사장님이 있다고 하면 "복날에 삼계탕 공짜로 먹어서 좋겠다"라고 많이 이야기 하시는데.. 그건 진실과 거리가 너무도 머~~언 이야기입니다.


복날을 앞두고 하는 대화입니다.

"언니, 초복때 와서 일 좀 해줘"

"절대 못해. 작년에 힘들어서 죽을뻔 했어"

"그럼 점심시간 3~4시간만 해줘"

"그것도 못해. 며칠동안 시름시름 앓았어"

"4시간에 얼마얼마 줄께~~~"

"정말?"


결국 숫자에 혹 하여 복날 동생네 삼계탕집 알바에 투입됩니다.

11시에 오픈이니까 10시 40분쯤 매장에 도착하면. 이미 각종 배달 어플 주문소리로 온통 멜로디 멜로디입니다.

매장 입구부터 가슴이 터질것 같다 ㅜ ㅜ

카운터에 있는 동생을 쌩 지나치고, 홀과 주방에 계신 한분한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마음속으로는 "부처님, 제가 제발 그릇을 깨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합니다.

앞치마를 가지러 물품실에 가고, 어떤 앞치마가 뱃살을 좀 두 가릴수 있는지 여러개를 둘러보다가, 내 뱃살을 가릴수 있는 앞치마 따윈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아무거나 두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주방보조를 시작합니다.

식당을 손님으로만 이용하다가 주방보조로 들어오니 홀이 완전 딴 세상 같아요 ㅜ ㅜ 홀에서 식사하시는 분들 부럽부럽 ㅠ ㅠ

제일 먼저 기본반찬을 수십개 셋팅합니다. 깍두기는 적당량을 넣으라는데, 저는 정말 그 적당량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7개 전후가 적당량일 거라는 혼자만의 폐쇄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대만족하며 행복해 합니다.

내가 수백개 셋팅한 귀요미 반찬들

드디어 홀에 100명이 꽉꽉 차고, 배달 주문 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려퍼지면, 반찬을 부르는 소리, 배달 포장 갯수를 외치는 소리를 머리에 입력하고 30초에 한개꼴로 포장 및 반찬셋팅을 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수백개 포장한 삼계탕들. 아름다운 봉지의 향연

저는 원래 머리에 숫자가 입력이 안되는데, 오늘 같은 날은 수리능력을 담당하는 뇌 세포와 뉴런들이 활성화됩니다. 한 개도 숫자 실수없이 포장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나에게도 암기력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ㅎㅎㅎㅎ제가 저의 가치를 발견하는 기분입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시는 직원분들을 보면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에요~


낮에 술 드시는 분들이 계셔서 빈 술병을 정리하기 위해 쪽문을 열고 나왔더니..하늘보리 광고의 한 장면처럼 술병을 너머 넓은 하늘이 제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감옥 아니 주방에 갇혀서 바라보는 하늘

제가 저를 칭찬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주방장 큰어른께서 직원들에게 "그릇을 깨지 않게 조심하라"는 엄한 당부가 끝나자마자...  와장창 ㅠ ㅠ 제가 컵 하나를 무지개 다리 너머로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ㅜ ㅜ  그 어르신의 표정에 진심으로 반성하는 눈빛사죄를 드리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척 양팔 양다리를 움직이며 날라다닙니다.

그런데 사실은 컵을 깨서 한참동안 정말 죄송했습니다 ㅜ ㅜ

오늘 내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 컵이, 죽지 않았다면 원래 있어야할곳

오후 3시가 되어도 손님들은 줄어들지 않고, 귀가 시간이 된 저는 '눈치를 볼까, 당당하게 퇴장할까'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합니다. 앞치마를 풀고 어색한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드리고 주방에서 나와, 카운터에 서 있는 제 동생을 또 쌩 지나쳐서 가게 밖으로 탈출합니다.

혹시라도 잡힐까봐 차에 시동을 걸고, 줄행랑을 칩니다
한남대교를 건너는데 저 멀리 꽉 막힌 강변북로도 너무 예뻐 보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온 다리가 쑤시고, 낮잠을 자고 있는 남편을 갑자기 괴롭히고 싶지만 그 와중에도 주방이 아른아른합니다.  차라리 늦게까지 도울걸 그랬다는 늦은 후회도 밀려옵니다.

에라 모르겠다~ 늦은 점심 메뉴를 고르기로 합니다. 폭우 같은 소나기가 내리는데 왜 길거리 토스트가 먹고 싶은 걸까요 ㅠ ㅠ 제 몰골 상태가 안좋았는지, 건들지 말자고 판단했는지, 남편이 긍정적으로 호응해줘서 큰 비를 맞으며 길거리 토스트를 먹으러 갑니다.

비를 뚫고 도착한 길거리 토스트 가게

단 4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에 중독되었는지, 토스트를 먹으면서도 뚝배기 안에서 다리를 꼬고 있는 닭의 자태가 자꾸 떠오르네요. 저는 삼계탕을 먹지 않기 때문에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없지만, 가게 냉장고 안에 있는 코카콜라는 정말 매 순간 콸콸 입에 들이붓고 싶었습니다.

제게는 복날의 삼계탕보다 복날의 코카콜라가 저의 노동을 위로하는 메타포인가 봅니다.


사실 복날의 삼계탕집 주방은 음식이 식으면 안되기 때문에 에어컨도 틀지 못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불 앞에서 수십개의 탕을 끓여내는 분들이 계시니 사실 제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였어요.

선풍기 하나로 실내온도 37도 이상을 버텨야 하는 복날의 삼계탕집 주방

이렇게 말로 표현할수 없는 많은 분들의 노력과 어린 닭들의 희생으로 지나가는 초복, 중복, 말복.

삼계탕 맛있게 드시고  부디 닭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ㅜ ㅜ 매일 매일 자신의 몸을 더욱 소중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중복, 말복이 벌써 걱정되네요 ㅜ ㅜ

이렇게 가족중에 삼계탕집 주인이 있으면 복날은 남량특집이 된답니다ㅎㅎㅎㅎ

맘디터의 복날 삼계탕집 알바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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