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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l 17. 2022

일요일이 너무 고단한 리트리버

하루종일 가족들에게 시달린 리트리버의 잠들기 프로젝트

우리집 가족들은 아침 6시에 아빠곰의 기상을 시작으로 하루의 문을 엽니다.

리트리버 입장에서는 아침식사를 빨리 해서 좋지만, 대가족이 차례차례 일어나서 리트리버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놀아줘야 하니 아침부터 급 피곤한 기색입니다.

 

막내곰, 잠 좀 깨라개

하루종일 소파에 붙어서 빈둥거리는 아빠 옆에 움직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 와중에도 선풍기 바람만큼은 제대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레오야, 아빠가 좋은 거니, 선풍기가 좋은 거니~~~
아무리 기다려도 놀아주지 않는 아빠 옆에서 리트리버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아기곰들은 하루종일 놀이감을 바꿔가며 부산을 떨고, 리트리버는 그런 아이들 옆에 소리 없이 앉아서 아이들의 작품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참 난해한 그림이라개

그림을 그리다 말고 갑자기 누워 버리는 막내곰 옆에서 리트리버는 같이 벌러덩 누워줍니다.

막내곰, 왜 갑자기 눕는다개? 이야기해 보라개

일요일 늦은 오후가 되자 리트리버는 점점 더 피곤해집니다. 대형견은 사실 잠이 굉장히 많은데 오늘은 벌써 아침잠, 점심잠을 건너 뛰었기 때문입니다.

매우 피곤해 보이는 너의 뒷모습

저녁 8시가 되자 리트리버는 자기가 청각이 매우 발달한 개라는 사실도 잊고 아이들의 시끌벅적 소음 속에서 점점 눈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내가 너인지, 니가 나인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지..
나의 하루는 끝났으니 각자 알아서 양치 잘 하고 자라개

그 몰려드는 잠 앞에서도 오레오는 선풍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선풍기를 움직이려고 하자 감긴 눈을 부릅떠서 깜짝 놀랐습니다.

알...았...어 오레오 ㅜ.ㅜ 나는 그냥 창문 열고 있을게 ㅠ.ㅠ
일요일이 더 피곤하다개. 빨리 월요일이 오면 좋겠다개

저녁 8시 40분, 오레오는 아이들 소음소리로 시끄러운 거실 한 가운데에서..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오늘 하루, 애들이랑 놀아주느라 고생 많았어 오레오~ 먹고 자고 노는 것도 정말 피곤해 보인다ㅎㅎㅎ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리트리버와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다보면 리트리버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외국에서는 리트리버를 심리치료견으로 처방한다고 들었는데,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리트리버를 누구나 결국에는 가만히 바라보며 감정의 교류를 시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리트리버는 소리를 잘 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 편하고 그만큼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서 그 눈빛을 들여다 보게 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점점 더 리트리버를 관찰하게 됩니다.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조용히 관찰하는 그 시간이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순간인가 봅니다.

오레오를 관찰하며 히말라야 같이 뾰족한 나의 감정상태를 반성하고, 그 우직함을 어떻게든 따라하려고 노력하게 되네요. 사람이 개를 훈련하는 게 아니라 개를 보며 따라해야 하는 나의 현실 ㅜ.ㅜ


일요일이 너무 피곤한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의 하루가 지나갑니다.

아니, 우리에게 하루였으니 오레오에게는 7일의 시간이었겠지요.

그 천방지축 아기곰들도 오레오의 잠 만큼은 방해하지 않네요.

오늘 하루 오레오가 가족들 옆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고 있나 봅니다.


래브라도 리트리버 오레오야~ 

꿈 속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주지 말고~ 

엄마 마리를 만나서 그 품에서 편한 휴식시간 보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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