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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Jul 25. 2022

화려한 호텔에서 생일파티 하기

진짜 파티는 늦은 밤 여행에 대한 수다

7월 중순 제 생일 당일, 저희 부부는 지인으로부터 시청 더 프라자 호텔 레스토랑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세븐스퀘어는 두 번째 방문인데, 지난 4월 첫 번째 방문 때에는 말라버린 대게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아무런 포스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를 통해 제가 와인의 풍미에 눈을 떴고, 그 날을 시작으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격한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디너 시간에 맞추어 입장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본격적으로 접시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동보다 내게 아름다운 바질 에이드

냉비빔우동을 가져왔는데, 도쿄 중심가에서 먹었던 우동과 맛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시절, 일본 남부지역을 자전거로 장기간 여행했던 남편은 정말 맛있게 여러번 갖다 먹었습니다.  저는 접시 위 쪽에 놓은 바질 에이드를 한 입 맛보고, '오늘은 네가 내 운명'을 외치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바질과 라임, 구운 토마토, 약간의 발사믹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데, 앞에 계신 지인만 아니라면 저 에이드를 수십번 갖다 먹고 싶었답니다~ 

저를 초대해 주신 지인은 다양한 음식을 갖다 놓고 음미하면서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셔서, 저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맞추었습니다.

    

크림 관자 스테이크

그런데 제가 지인분의 취향을 젖혀두고 한 음식을 여러번 갖다 먹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바로 저를 유혹한 그 주인공이 크림 관자스테이크입니다. 관자는 다 아는 맛이지만 크림 소스와 매시 포테이토를 결합한 그 풍미에 "제가 오늘 이걸 여러번 갖다 먹어도 놀라지 마세요" 라고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전복초

전복초라는 요리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전복인데요. 전복초라고 하니까 시큼한 맛이 날 것 같아서 도망다니다가, 용기를 내어 먹어보았습니다. 전혀 시큼하지 않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ㅎㅎㅎ부드러운 양념맛이 일품이었는데, 시큼한 향은 아주 살짝 나다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성게알 계란 전복덮밥

음식 이름을 제가 막 지어서 죄송합니다~~~ 내 사랑 성게알이 밥알에 올려져 있고, 카스테라보다 부드러운 계란과 전복까지 딱 한 입에 들어가는 일품요리입니다. 결국 저희를 초대해 주신 교수님도 이 음식만큼은 정말 여러번 갖다 드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번 방문 때 나쁜 기억으로 남았던 게가 이번에는 부드럽고 맛있네~

지난 첫 방문 때 이 게를 먹으면서 세븐스퀘어를 다신 방문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게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입을 먹은 남편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여 뺏어 먹었더니 촉촉부들 맛있네요. 맛있는 것도 기뻤지만, 첫 방문 때 나빴던 기억을 청소할 수 있어서 그게 더 기분 좋았습니다. 


와인을 한잔씩 마시고, 교수님의 초대로 객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복도를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어색한 자리에서 빨리 나올 수 있지?'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룸에 도착해서 네 명이 앉아 대화를 시작했는데...어쩜..  2시간도 부족해서 다음을 기약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우리의 주제는 여행이었습니다. 각자의 여행에 대한 경험과 소감들을 대화하였는데, 남편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에베레스트 라운딩, 일본 자전거 여행, 유럽 자동차 여행, 그 교수님의 알프스 여행, 서핑 화와이 여행, 저의 크고 작은 여행 경험담까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네요.

그런데 갑자기 그 교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27세에 혼자 안나푸르나를 가신 거예요? 무섭지 않았어요?"

그 질문을 받는데 '내가 그때 왜 혼자 네팔 여행을 갔지?'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ㅠ.ㅠ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악수를 나누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올해 저에게 가장 큰 생일 선물은 바로 우리 네 명의 여행수다입니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해지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상대방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대화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꼈습니다. 

제 생일 날 여행수다를 나누면서, 13년 간을 함께 생활한 남편이지만 저와 정말 다른 삶을 살아왔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기도 했고요.  


그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대한 기억이 며칠 후에 났습니다.

나는 왜 27세에 혼자 네팔 히말라야로 떠났을까?

그 당시에 제가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어요. 그 술집은 인사동 골목 지하에 있었고, 방 마다 어떤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제가 하필이면 설산을 그린 어떤 그림에 반해 버린 겁니다. 바람을 분홍색 물감으로 표현한 설산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술집을 방문할 정도였습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결국 환청처럼 바람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그 때 '나는 히말라야를 반드시 가겠다'고 마음에서 다짐한 겁니다. 


제 생일 날의 대화를 통해 그 소중한 그림까지 떠올리게 됐으니 정말 최고의 생일이었습니다.

식사에 초대해 주신 교수님, 13년 째 똘끼 가득한 나와 맛있는 밥을 함께 먹어주는 남편, 20대 시절의 모든 방황과 말 못하게 고생스러웠던 여행들, 슬픔과 기쁨들...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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