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파티는 늦은 밤 여행에 대한 수다
7월 중순 제 생일 당일, 저희 부부는 지인으로부터 시청 더 프라자 호텔 레스토랑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세븐스퀘어는 두 번째 방문인데, 지난 4월 첫 번째 방문 때에는 말라버린 대게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아무런 포스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리를 통해 제가 와인의 풍미에 눈을 떴고, 그 날을 시작으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격한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디너 시간에 맞추어 입장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본격적으로 접시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냉비빔우동을 가져왔는데, 도쿄 중심가에서 먹었던 우동과 맛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학생시절, 일본 남부지역을 자전거로 장기간 여행했던 남편은 정말 맛있게 여러번 갖다 먹었습니다. 저는 접시 위 쪽에 놓은 바질 에이드를 한 입 맛보고, '오늘은 네가 내 운명'을 외치며 감탄을 하였습니다.
바질과 라임, 구운 토마토, 약간의 발사믹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데, 앞에 계신 지인만 아니라면 저 에이드를 수십번 갖다 먹고 싶었답니다~
저를 초대해 주신 지인은 다양한 음식을 갖다 놓고 음미하면서 그것에 대해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셔서, 저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인분의 취향을 젖혀두고 한 음식을 여러번 갖다 먹은 일이 발생하였는데, 바로 저를 유혹한 그 주인공이 크림 관자스테이크입니다. 관자는 다 아는 맛이지만 크림 소스와 매시 포테이토를 결합한 그 풍미에 "제가 오늘 이걸 여러번 갖다 먹어도 놀라지 마세요" 라고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전복초라는 요리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전복인데요. 전복초라고 하니까 시큼한 맛이 날 것 같아서 도망다니다가, 용기를 내어 먹어보았습니다. 전혀 시큼하지 않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ㅎㅎㅎ부드러운 양념맛이 일품이었는데, 시큼한 향은 아주 살짝 나다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음식 이름을 제가 막 지어서 죄송합니다~~~ 내 사랑 성게알이 밥알에 올려져 있고, 카스테라보다 부드러운 계란과 전복까지 딱 한 입에 들어가는 일품요리입니다. 결국 저희를 초대해 주신 교수님도 이 음식만큼은 정말 여러번 갖다 드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첫 방문 때 이 게를 먹으면서 세븐스퀘어를 다신 방문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게는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입을 먹은 남편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하여 뺏어 먹었더니 촉촉부들 맛있네요. 맛있는 것도 기뻤지만, 첫 방문 때 나빴던 기억을 청소할 수 있어서 그게 더 기분 좋았습니다.
와인을 한잔씩 마시고, 교수님의 초대로 객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복도를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어색한 자리에서 빨리 나올 수 있지?'라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룸에 도착해서 네 명이 앉아 대화를 시작했는데...어쩜.. 2시간도 부족해서 다음을 기약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우리의 주제는 여행이었습니다. 각자의 여행에 대한 경험과 소감들을 대화하였는데, 남편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에베레스트 라운딩, 일본 자전거 여행, 유럽 자동차 여행, 그 교수님의 알프스 여행, 서핑 화와이 여행, 저의 크고 작은 여행 경험담까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네요.
그런데 갑자기 그 교수님이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27세에 혼자 안나푸르나를 가신 거예요? 무섭지 않았어요?"
그 질문을 받는데 '내가 그때 왜 혼자 네팔 여행을 갔지?' 기억이 안나는 거예요 ㅠ.ㅠ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악수를 나누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올해 저에게 가장 큰 생일 선물은 바로 우리 네 명의 여행수다입니다.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해지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상대방과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대화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고 느꼈습니다.
제 생일 날 여행수다를 나누면서, 13년 간을 함께 생활한 남편이지만 저와 정말 다른 삶을 살아왔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기도 했고요.
그 교수님이 던진 질문에 대한 기억이 며칠 후에 났습니다.
나는 왜 27세에 혼자 네팔 히말라야로 떠났을까?
그 당시에 제가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자주 가던 술집이 있었어요. 그 술집은 인사동 골목 지하에 있었고, 방 마다 어떤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제가 하필이면 설산을 그린 어떤 그림에 반해 버린 겁니다. 바람을 분홍색 물감으로 표현한 설산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술집을 방문할 정도였습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결국 환청처럼 바람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그 때 '나는 히말라야를 반드시 가겠다'고 마음에서 다짐한 겁니다.
제 생일 날의 대화를 통해 그 소중한 그림까지 떠올리게 됐으니 정말 최고의 생일이었습니다.
식사에 초대해 주신 교수님, 13년 째 똘끼 가득한 나와 맛있는 밥을 함께 먹어주는 남편, 20대 시절의 모든 방황과 말 못하게 고생스러웠던 여행들, 슬픔과 기쁨들...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