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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ug 04. 2022

10세 꼬마의 첫 계란후라이

자신의 요리로 자유를 쟁취하다

저와 아기곰들은 아침마다 등교전쟁을 합니다. 보통 집과 다른 게 있다면, 제가 아기곰들을 깨우는 전쟁이 아니라 아기곰들이 저를 깨우는 전쟁을 한다는 겁니다. 엄마곰이 야간에 원고작업을 하다 보면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한데, 못 믿을 엄마곰 덕분에 아기곰들은 5세 유치원 시절부터 초5, 초3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스로 일어나서 등교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곤혹스러운 시간은 식사준비 시간입니다. 세 아기곰들이 단 한번도 메뉴가 통일되지 않아서, 계란을 하나 먹더라도 첫째곰은 계란말이, 둘째곰은 계란찜, 셋째곰은 계란후라이를 (살림에 유독 흥미 없는) 엄마곰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ㅜ.ㅜ 아기곰들에게 화도 내보고, 나름 시위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계란후라이를 해 먹었는데, 2022년도 아기곰들은 왜 요리를 하면 안되는거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저는 첫째곰과 둘째곰에게 요리 강습을 합니다. 첫째곰의 생애 첫번째 요리는 라면 끓이기, 둘째곰의 첫번째 요리는 계란후라이입니다.

첫째곰의 라면끓이기는 제가 외출했을 때 배고프다고 전화왔길래 영상통화로 실전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너의 자유를 쟁취하거라"


첫째곰은 생전 처음 가스불도 켜 보고, 냄비에 라면과 스프도 넣고, 계란도 넣어서 제법 잘 끓여내었습니다. "축하한다, 독립을" 엄마곰은 마음속으로 축하인사를 건넵니다.


둘째곰은 오빠의 요리를 보고 흥분합니다. 자신도 해 보겠다고 설치는데, 사실 엄마곰 입장에서는 꼼꼼한 둘째곰이 정말 잘 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1.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기
2. 어린이에겐 너무 어려운 계란깨기
3. 계란 알맹이가 탈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4. 소금 뿌리기
5. 익어가는 계란을 보며 잔뜩 흥분하며 뒤집기 준비
6. 계란후라이를 오레오에게 자랑하기 (뭔가 맛없어 보인다개)
7. 엄마가 만든 계란후라이보다 백배천배 맛있게 먹기
아이 스스로 만든 계란후라이 앞에서 찬밥이 되어버린 엄마곰의 반찬들1
아이 스스로 만든 계란후라이 앞에서 찬밥이 되어버린 엄마곰의 반찬들2
아이 스스로 만든 계란후라이 앞에서 찬밥이 되어버린 엄마곰의 반찬들3

둘째곰은 엄마가 만든 장식 가득한 반찬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만든 계란후라이를 소중하게 맛있게 먹습니다.

내가 해냈다는 것,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내 스스로 완성해 냈다는 것.

그 기쁨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의사나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을 때 왜 행복한지 그 로직을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건 그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한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첫째곰은 엄마의 통제하에서 라면을 먹었는데, 이제 첫째곰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었던 엄마의 라면 감옥은 바스티유처럼 함락당했습니다.

둘째곰은 자기가 만든 계란후라이가 얼마나 맛있는지 일기장에 써 내려가며, 자신이 굉장히 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공부도, 사랑도, 어떤 진로도 엄마라는 벽을 넘어서서 스스로 선택하고 극복해서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를 바랍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사랑 또는 엄마라는 이름의 감옥은 이렇게 아이들의 성장과 시간 앞에서 조금씩 함락되어 갑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기곰들도 고맙고 사랑스럽지만, 자신이 스스로 만든 라면과 계란후라이 앞에서 자부심과 자유를 느끼는 아기곰들을 보며 엄마인 저도 인간에 대한 존경을 느낍니다. 


엄마는 아이들의 인생에서 이제는 조금씩 축소되어야 하는 현재입니다. 아이들을 통해서 저의 어떤 욕망을 실현해 보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정리하였습니다. 대신 아이들도 엄마를 통해 자신의 어떠한 욕망도 실현할 수 없다는 걸 깨닫기 바랍니다. 

아기곰들, 우리 같이 각자의 진정한 자유를 고민하며 인생의 동지로 살아갑시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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