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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ug 06. 2022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묻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사람인가요, 사랑인가요?

선배의 추천으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쏜살같이 귀가하겠다는 애초의 생각은 사라지고, 저는 영화의 여운 때문에 4키로 구간을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사랑하던 걸 멈춥니까?"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내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피의자 신분의 여성과 담당 형사의 미묘한 감정은 탐색과 의심이라는 경계안에서 더욱 강렬하게 펼쳐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사가 피의자 여성에게 빠져든 건 찰나의 순간이고, 피의자 여성은 형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느낄만큼 그에게 진지해져 갑니다. 

처음에는 형사를 이용한다고 느꼈던 피의자 여성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그를 더 진지하고 깊고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저는 의자에서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집에 가면 남편한테 박해일이 탕웨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달라고 쌩떼를 해야지' 생각했지만, 저는 그 영화 안의 구도에서 보면 형사의 사랑을 받는 피의자가 아니라, 그 형사가 더 이상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운, 즉 사회적 의무의 대상인 무미건조한 아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서 그런 아내도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니, 결국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듯이 보였던 아내도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던 겁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지만, 그 두 사람이 지닌 사랑의 모습은 철저하게 다릅니다.

형사의 사랑은 피의자를 감춰주고,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그러면서도 그녀를 매 순간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사랑입니다. 그 여성의 사랑은 그가 붕괴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에게 다가가고, 불면증인 그에게 잠을 나누어주고 싶은 사랑입니다.  


제일 앞에서 했던 피의자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사랑하던 걸 멈춥니까?"

멈출 수 없습니다. 속도가 느려지고, 네비게이션이 박살날 뿐입니다.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쉬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하여 사랑하는 걸 멈추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그 감정을 들여다 보지 않고 덮어놓고 사는 건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동네 아줌마인 제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며 두 사람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는 건 저의 어딘가에도 그런 사랑이 묻혀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상영관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고 스크린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래서 다들 영화의 여운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던 거겠죠.  


사랑은 어떤 상황 앞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니,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 오히려 우리의 사랑은 더 진지해지고, 과격해지고, 뜨거워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온통 빨간 신호등

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한참동안 제 생활을 빙글빙글 맴돌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결국 마지막 장면의 그 무서운 파도처럼 모든 게 삼켜진다고 해도, 내가 사랑했던 또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영원한 미결사건으로 남고 싶은 나 자신의 진심을 눈치채기 바랍니다. 


맘디터의 영화감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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