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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Aug 15. 2022

한여름 제주도에서 일주일 보내기

아기곰들과 함께 보낸 제주도 여름밤

몇 달 전에 제주도 일주일 휴가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12세가 된 첫째곰과 제가 의견이 안 맞고 신경전을 하는 날이 많아지는 겁니다. 가족여행이 과연 행복할까 여러번 생각하고, 아이들에게도 약속을 받았습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화산이야. 우리는 시간을 때우러 가거나, 숙소에서 에어컨을 빵빵 틀면서 에너지를 소비하러 가는 게 아니야. 제주도 화산을 만나러 가는 거야. 매일 오름 한 군데, 바다 한 군데를 가기로 하자."

세 아기곰은 엄마곰과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서울이 비에 잠긴 8월 8일에 제주도로 향합니다.

캐리어를 끌고가는 아빠곰과 두 손이 자유로운 아기곰들. 지금 실컷 자유롭거라~

 어떻게 하다 보니 아빠와 아기곰들은 저 보다 1시간 빠른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여기에서 첫번째 변수가 등장합니다. 그 1시간 사이에 김포공항에 폭우가 내리면서 제가 탈 비행기가 2시간이나 지연된 겁니다. 아기곰들은 하늘이 맑은 제주도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하고, 저는 폭우가 내리는 김포공항 창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하염없이 보냅니다. 저녁 7시 넘어서 비행기가 이륙하고, 폭우에 많이 흔들리면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구름 위로 올라가자 기내는 평안해 집니다. 저는 비행기 공포증이 심한 편입니다. 그래서 기내에 앉자마자 무선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튼 다음 핸드폰 속 이미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외칩니다.

"지금 내가 탄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수천대 중에 한대일 뿐이다. 흔들려도 놀라지 말자, 우주에 떠 있는 우주비행사도 있다"


기내에 있는 여행책자 속 나무사진을 바라보며, 내가 나무로 빙의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렇게 8시 넘어서 제주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고, 저는 2번 게이트 앞에서 101번 버스를 타고 밤 10시 넘어서 함덕에 도착해서 남편을 만납니다. 


우리가 제주도에서 7일 간 보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월 : 저녁식사 <도나망> 돈까스

화 : 아침식사 <제라진 한식부페>, 숙소 타운하우스 풀장, 점심식사 <해심가든>, 오후 군산오름, 저녁 풀장 수영, 저녁식사 <도톰> 회

수 : 아침식사 <제라진 한식부페>, 협재 해수욕장, 아이들 병원진료 <연세피부과>, 저녁식사 <일품순두부-함덕점>

목 : 아침식사 <제라진 한식부페>, 금모래 해수욕장 및 야외 수영장, 저녁 <해심가든>, 야간 <브롱스바-함덕해변>

금 : 아침식사 <제라진 한식부페> <오름나그네>, 김영갑갤러리, 유민미술관, 동백동산 트래킹, 사려니숲 트래킹, 야간 함덕해수욕장 산책

토 : 아침 <은희네 해장국>, <CU-선흘점> 아점, 사려니숲 트래킹, 점심 <함덕마당 생선구이>, 야간수영 함덕해수욕장, 저녁식사 <도톰> 회

일 : 제주공항에서 아침식사 <스카이31> 라면 및 우동, 베이글 샌드위치


1일차 도나망 돈까스

밤 늦게 도착한 제주에서 기대 없이 방문한 도나망 돈까스. 치즈돈까스 맛집이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감탄에 감탄을 반복

2일차 새벽 5시 함덕해수욕장, 제라진 한식부페, 해심가든, 군산오름, 도톰

새벽 5시 함덕해수욕장. 서우봉을 산책하며, 산과 하늘과 바다가 절경을 이루는 함덕 바다의 힘에 놀랐습니다. 
제라진 한식부페. 우리 가족은 무려 4일동안 아침식사를 여기에서 해결했습니다. 매일 맛있고 다양하고 푸짐한 밥집
나의 최애 맛집 해심가든. 양념갈비보다 생갈비가 맛있고, 김치찌개와 마카로니 반찬이 환상이다. 7일 동안 2회 방문
차로 올라가는 군산오름. 운전 초보에게는 절대 비추. 군산오름 정상에서 아이들은 감동했고,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답니다
군산오름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제주도를 360도 감상할 수 있는 정말 특별한 뷰
함덕에서 가까운 도톰 회집. 홀도 있고, 포장도 가능한데, 회와 해산물이 신선하고 깔끔했습니다. 7일동안 2회 방문

3일차 : 협재 해수욕장, 아이들 모기 알러지로 연세피부과 방문, 저녁은 일품순두부 

아이들이 일년동안 노래를 부르는 협재-금능 해수욕장. 얕은 수심에도 파도가 계속 일어나서 안전하고 또 재미있는 물놀이
금능 해수욕장 전경 - 주변 식당가나 편의시설은 부족한 편입니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재미있는 해변
저녁은 일품순두부 함덕점에서. 반찬도 리필이 가능하고, 돌솥밥이 정말 맛있는 가성비 좋은 집
일품순두부에서 처음 먹어본 두부김치. 막걸리 안주로 최고였고, 매장에서 먹고 포장도 해서 숙소에서 술안주로 먹었습니다

4일차 금모래 해수욕장 및 수영장, 또 해심가든, 야간 맥주바 브롱스가든

금모래 해수욕장에는 시원한 계곡물로 수영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다와 수영장을 동시에 누리는 특별한 해수욕장
저녁에 방문한 함덕 해수욕장 맥주바. 8090 댄스곡에 흥분하는 우리는 40대라는 나이를 도저히 감출 수 없었습니다

5일차 :  <오름나그네>, 김영갑갤러리, 유민미술관, 동백동산 트래킹, 사려니숲 트래킹, 야간 함덕해수욕장 산책

오름나그네 파전. 아침 식사로 술 한잔 없이 파전을 먹는 나의 위대한 위장. 바삭한 튀김 같은 파전
오름나그네 성게알 전복 칼국수. 칼국수는 모슬포 쪽 옥돔식당의 보말칼국수가 최고 맛집인 것 같아요
제주도에 올 때마다 방문하는 김영갑 갤러리. 3~4개월에 한번씩 작품이 바뀌어서 매번 방문해도 좋습니다.
매번 방문하는 유민미술관. 사유의 방에서 몇 시간 씩 멍 때리는 게 묘미인데, 이번에는 영상과 음악이 꺼져 있어서 관람료가 조금 아까웠어요.
아이들이 모기와 사투를 벌인 동백동산. 람사르습지 연못까지 가고 싶었지만 모기떼 습격으로 숲길 중간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사려니숲길. 동백동산 모기떼가 없는 환경에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감사함을 느끼며 아무 투정 없이 1시간 동안 숲길을 걸었습니다. 동백동산 극한의 체험이 감사함을 만들어 냈어요ㅋㅋ
한 눈에 반해버린 함덕해수욕장의 야간 풍경. 해가 지고 카페에 불이 들어오면 바다와 하늘이 다채로운 색깔에 물듭니다.

6일차 : 아침 <은희네 해장국>, <CU-선흘점> 아점, 사려니숲 트래킹, 점심 <함덕마당 생선구이>, 백약이오름 트래킹, 야간수영 함덕해수욕장, 저녁식사 <도톰> 회


제주도에 뜬 슈퍼문. 저 달을 보며 아기곰들과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빠곰은 아침식사를 해장국 집에서.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라면과 김밥, 우유, 군고구마 등을 먹고 어제에 이어서 사려니 숲길 트래킹을 2시간 동안 하였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동백동산 모기떼에 비하면 행복하고 감사한 아이들. 
내사랑 백약이오름. 오름은 새벽과 해지는 저녁시간에 오르는 걸 추천합니다. 해가 힘이 센 시간에 오르면 등이 구워지는 듯한 고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 살아있는 조개를 발견하고 흥분한 아이들
야간 바다에서 시켜먹은 포장회. 이 자리에서 우리는 여행기간 동안 서로에게 아쉬웠던 점을 대화하였습니다.

7일차 : 아침 9시 20분 비행기로 서울 출발

안녕, 한 여름의 제주도~ 9월 가을에 또 만나~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집으로 이동하는 아이들

이번 여행에는 제 동생네와 친정어머니, 지인 가족도 동행하였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달라서 매번 조율하는 게 힘들었지만, 여행은 힘들 때도 있고, 편할 때도 있고, 나에게 고통을 줄 때도 있고, 말할 수 없는 환희가 될 때도 있습니다. 여행의 얼굴은 우리의 인생처럼 다채롭기 때문에 특별한 불만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여행에 와서 아이들을 절대로 편하게 두지 않기 때문에, 편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여행에 와서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편하게 누린다면, 아이들이 매일 같은 모습으로 자신들을 맞이하는 집과 편안한 일상에 어떻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여행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데, 두 발로 걷기 싫고 에어컨으로 실내온도 25도가 셋팅된 곳만 찾아다니는 여행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까 궁금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아기곰들은 동백동산 모기떼와 싸우다가, 사려니 숲길에 들어서자 그 고요함과 적막함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동백동산에서의 힘든 경험이 사려니 숲길의 편안함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한 겁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이들 생명속에 내재된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군산오름에 오르며 엄마를 한대 칠 것처럼 분노하던 사춘기 첫째곰이 이번 제주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군산오름이라고 말하는 걸 보며, 안도하였습니다. 군산오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산방산, 제주 바다의 아름다움을 그 짜증의 순간에도 마음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인상을 쓰고 화를 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신의 핸드폰에 열심히 담아내는 사춘기 첫째곰


이번 제주도 여행을 통해 아이들 마음 속에 내재된 훌륭한 어른을 만났고, 남편 마음 속에 내재된 훌륭한 인격을 만났고, 저의 마음 속에 내재된 초긍정을 만났으니 충분히 의미있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의 숙소를 협찬해 주신 제 소중한 친구에게도 깊이 감사합니다. 제 진심을 보냅니다.)

엄마곰 아빠곰 아기곰 셋의 한여름 제주도 여행기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9월 말, 제주도 오름 트래킹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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