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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Oct 09. 2022

남편과 26km 무작정 걷기

해파랑길 44~45코스 도보여행

남편과 아침 6시에 짐을 챙겨서 출발합니다. 

6시 20분경에 진입한 양양춘천고속도로는 차가 정말 많아요.

휴식 없이 2시간의 운전 후에 설악해변에 도착합니다.

주차를 하고, 작은 배낭을 챙겨서 설악해변~속초수산시장 트래킹을 시작합니다. 

 

부부는 서로 떨어져서 걸어갑니다. 속도도 다르고, 각자 귀에 꽂고 있는 음악도 다릅니다.

서로 감동을 느끼는 풍경도 달라서 발걸음을 멈추는 장소도 다릅니다.

그래도 각자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마주치곤 합니다. 그 때 물통을 꺼내어 나누어 마시고, 힘들지 않은지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습니다.

서로에 대한 뜨거움은 사라졌지만 뜨겁지 않다는 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부부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 같아요.    

양양을 지나 속초 대포항 근처에서
속초 외옹치항 바다소리길

해파랑길 44~45코스에 위치한 속초 외옹치항 바다소리길은 바다 위에 만들어진 나무길입니다. 

짧은 구간이지만 바다 위에 떠서 바다와 하늘의 아름다움을 목격하는 감동은 트래킹 내내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잘난 척 하고, 쿨한 척 해도 결국은 아줌마입니다. 집에 있는 아기곰 삼남매가 너무 생각나고,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만, 자연이 주는 감동은 누가 심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야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묵묵히 걸어갑니다.  

남편은 트래킹 중간 중간에 위치한 지도 안내판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외국 배낭여행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고 늘 지도를 가까이 했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다녀온 후에도 남편은 그 여행지의 지도를 꼼꼼히 확인합니다.

저는 남편과 반대입니다. 일부러 지도를 확인 안하는 경우도 있고, 지도를 보더라도 바로 머릿속에서 지우는 편입니다. 목적지를 찍어 놓고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제 마음이 자꾸 지친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초 아바이마을의 벽화

굳이 차를 세워놓고 왜 걷는 여행을 하는지 물어보는 지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걷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천천히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태양과 구름의 움직임, 내가 사는 지역과 확연히 다른 마을의 풍경, 그 지역만의 흙과 벽, 가게, 식물들의 냄새 등...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을 보고 싶고, 냄새 맡고 싶고, 발견하고 싶어서 계속 걸어갑니다.

속초 아바이 마을의 벽화
마을의 치킨가게
마을의 문구점일까, 화원일까 아니면 일반 주택일까?
갯배를 타고 수산시장으로 이동

약 3시간을 걷다 보니 갯배 타는 곳이 나오고 잠시 후에 속초 수산시장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매운어묵을 먹고, 꼬막비빔밥 가게에서 과식을 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매운 어묵
엄지네 꼬막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3시간 넘게 걷다 보니 체력은 이미 떨어져 있습니다.

중앙시장 앞에서 9번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양양 설악해변에 내립니다.

우리 차에 도착하자마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발견한 것과 같은 환희가 가슴 오저에서 솟구칩니다ㅎㅎㅎ 

남편이 올랭이의 2, 3열 시트를 젖혀서 침대를 만듭니다. 

차박이 편하지 않다는 남편이 코골며 자는 모습

차박이 세상에서 제일 불편하고, 차 안에서는 숙면하기 어렵다는 남편은 저렇게 세상 다 가진듯한 편한 자세로 1시간을 넘게 숙면합니다. 저도 질 세라 옆에 누워서 잠을 청합니다.

서울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엄마 아빠 언제 와?"라며 아기곰들의 전화가 시작 될 겁니다.

각자 휴식을 마친 후에 설악해변에서 물치항까지 1시간 트래킹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26키로 트래킹을 완주하였습니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풍경들,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지구의 힘, 자연에 대한 감사함과 겸손함.

내 감정이나 복잡한 생각 등은 고된 도보여행에서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하나도 아니지만 분리된 둘도 아니라고 부처는 깨달았나 봅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보면 내 감정이나 생각이 되게 크게 느껴지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나와 나의 생각, 감정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전체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는 균형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아프고 생각 때문에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아주 힘든 도보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마 그 여행지 어딘가에서 마주치게 될 겁니다*^^*


해파랑길 26KM 트래킹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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