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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디터 Feb 02. 2024

3박 4일, 영하 36도 몽골여행

가기 싫었던 몽골, 첫눈에 반한 몽골

남편의 제안으로 1월 중순에 몽골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대기하는데, '내가 왜 몽골여행을 간다고 했을까' 후회를 했습니다. 이미 몽골 날씨는 영하 24도~영하 36도가 예보되어 있고, 캐리어에 가득한 핫팩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중국 상공을 지나는데, 수묵화에 나올법한 뾰족뾰족 산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잠시 눈을 졸다가 눈을 떠보니 착륙 기내방송이 나오는데, 밖에 펼쳐지는 몽골의 광경이..

중국의 상공
신울란바토르 공항에 곧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몽골

하얗게 펼쳐진 설원을 보면서 제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두근거림, 여행자로서 모든 자만심을 버리고 이 세계에 녹아들고 싶다는 진심이 올라왔습니다.


신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려서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피부로 느껴지는 추위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코로 들어오는 냉동실 공기에 제 기관지와 폐가 깜짝 놀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몽골에서 느낀 건, 바람이 불지 않는 영하 24도, 영하 36도의 추위와 바람이 부는 한국의 영하 18도 추위가 거의 맞먹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부는 한국의 추위 앞에서 저는 "추워"를 반복하며, 몸을 잔뜩 웅크리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차가운 냉동실 공기의 몽골 추위에는 몸이 웅크리는 반응이 덜했어요. 문제는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 서서히 동상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저희 부부는 핫팩을 하나도 안 쓰고 그대로 갖고 왔습니다)


눈으로 뒤덮인 고속도로를 천천히 달려서, 몽골의 로컬마켓인 노민마트에 들렀다가 숙소인 테를지 국립공원, 미라지캠프로 이동합니다. 눈 내리는 하늘 위에 별이 보이는 신기한 모습에 하늘을 바라보지만, 극강의 추위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려워서, 게르에 들어왔다가 나가고, 다시 들어왔다가 나가는 산책을 반복합니다.

다음날 아침, 1등으로 식당에 도착하는 부지런한 부부. 테를지 초원을 돌아다니는 순록을 보며, 왜 동화 속 루돌프는 순록인지 알게 됩니다. 아름다운 외모가 눈과 너무 잘 어울리고, 저 멋진 뿔이 순록을 힘 있는 동적인 동물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둘째 날 일정은 아리야발 사원, 말타기 체험, 설산 트래킹, 민속음악 공연까지 꽉 차 있습니다.

남방불교와 몽골 토속신앙이 결합한 아리야발 사원을 헥헥 거리며 올라갈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법당 앞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면 큰 협곡이 눈에 들어와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넓은 대지에 산들이 서로 마주 보며 생긴 마른 골짜기를 협곡이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핸드폰 카메라 렌즈에 담아지지 않는 광활함에 나중에는 하염없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테를지 공원 자체가 워낙 넓은 평야인 데다가, 3일 내내 내일 폭설로 오르막길도 평지로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이젠을 챙겨서 갔는데, 저희 패키지 일행 17명 대부분은 아이젠이 없었습니다. 그건 눈길 오르막, 내리막이 위험하다는 뜻이었고, 결국 아리야발 사원에서 내려오다가 중년의 한 여성분이 미끄러져서 발목에 금이 가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거북이 바위에서 남편과 기념촬영을 하고, 독수리와 한 컷의 사진을 남깁니다. 독수리를 가까이에서 본건 처음인데, 독수리의 눈이 우리 집 래브라도 레트리버 오레오처럼 동그란 까만 눈동자를 가진 것에 너무 놀랐고, 오레오처럼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교감하는 거에 두 번 놀랐으며, 제 팔에 올라왔을 때 느껴지는 10킬로 이상 되는 듯한 무게에 세 번 놀랐습니다.

드디어 승마체험이 시작됩니다. 제주도 여행 때 아이를 말에 태워본 적은 있어도 저는 말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타기를 신청했고, 처음 말 위에 올라갔는데, 제 몸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의 호흡과 근육의 움직임, 말의 오장육부에서 새어 나오는 숨결에 너무 당황하여, 그냥 내리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말을 이끌어주시는 몽골 현지인 분은 웃으며 제 말을 무시해 주셨고, 그분의 현명함 덕분에 저는 말 위에 올려져서 한 시간에 이르는 승마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탄 말이 앞질러가는 대장말을 좋아하는 건지 계속 따라붙고, 대장말은 제 말보다 앞질러 가도록 훈련받은 건지 계속 앞질러가는 경주 속에서, 제 말이 걷기와 달리기의 중간속도를 내며, 저는 반은 포기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말의 힘찬 움직임에 따라 교감하는 저의 근육들을 느낄 수 있었고, 승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일분 알게 되었어요. 말 타며 바라보는 몽골 설원의 풍경은  인간이 그릴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대자연의 실상 그 자체입니다.

잊지 못할 승마체험이 끝나고 간단한 점심식사 후에 등산 일정이 있어서 나갔더니 우리 부부 빼고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아무도 안 나오지?'라는 의문이 '사람들은 정말 지혜롭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넘아가는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산을 올라가는데, 누적 적설량이 30cm가 넘는 상황에서 등산로로 따로 없다 보니 발을 내딛을 때마다 무릎까지 눈에 파묻힙니다. 아무도 밟은 적이 없는 태초의 눈밭이다 보니까,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극지방 크레바스처럼 수미터씩 눈얼음이 쫙쫙 갈라집니다. 아이젠이 마찰력을 일으킬만한 바닥이 없다 보니까 하염없이 미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눈 속에 파묻힌 야생화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몽골. 테를지 야생화들은 겨울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눈을 맞이하여, 그 자리에서 얼어붙니다. 산의 정상은 360도로 자연풍경이 펼쳐지는 뷰 포인트입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갔을 때 푼힐 전망대에서 처음 경험한 360도 히말라야의 모습. 우주처럼 넓어 보이는 원형의 그 전경이 이 작은 동산 정상에서 펼쳐집니다. 이 극강의 트래킹이 몽골 여행 전체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온몸이 땀과 얼음으로 범벅되어 샤워가 급한데, 숙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민속공연이 임박한 캠프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몸은 탈수가 안 된 축축한 빨래상태지만, 공연을 보다가 중간에 나오자는 생각으로 공연장에 들어섭니다.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과 유목민들의 득음으로 연주하는 깊이 있는 민요를 들으며, 방금까지 제 눈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몽골 민요가 한 화면에 매칭이 되었고, 그렇게 저는  마두금과 유목민들의 득음 소리에 스펀지처럼 온 마음이 스며들었습니다. 가수분이 몽골 민요 창법으로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왔습니다. 마두금으로 연주하는 우리 노래가 너무 애절했고, 민족 간의 정서가 서로 이어져서 공감할 수 있다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다음날에는 어워라는 돌무더기에 가서 세 바퀴를 돌고, 몽골국립박물관, 국회의사당, 국영백화점 등 주요 시설을 관람하였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둘러싸인 유목민 나라의 슬픈 역사. 아무리 담담하려고 해도 한없이 비교되는 과거와 현재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방인인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역사 앞에서 느끼는 당신의 슬픔과 아쉬움, 나의 슬픔과 아쉬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조용히 해봅니다.

몽골국영백화점에 가서 몽골에서 만든 물건을 사 온다는 원칙을 세운 후에 남편과 쇼핑에 나섭니다. 광활한 몽골은 수입의존도가 높아서 대부분의 생필품과 식재료, 음식 등이 수입품입니다. 그래도 양의 지방으로  만든 천연비누, 몽골 초콜릿 등을 알차게 구입하여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날 숙소는 수도 울란바토르 내에 있는 호텔. 늦은 밤, 남편과 제 동생 일행 함께 몽골의 강남에 해당하는 동네의 클럽에 갔습니다. 클럽 앞에 "서로 주먹질하지 마세요"라는 경고문구가 있어서 남편과 웃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클럽에서 몽골사람 두 명이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말 몇 마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서로 주먹부터 올리고, 보안요원들에 의해 끌려 나갑니다. 1~2분 안에 일어난 일인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바로 음악을 즐깁니다. 8등신의 멋진 현지인 여성분이 저와 동생에게

능숙한 한국말을 겁니다.

"몽골 사람들 눈에는 한국 여성들이 정말 예뻐요. 당신들도 정말 귀엽고 예쁘네요."

모델 같이 길쭉한 인형 같은 젊은 여성이 5등신의 뚱뚱한 아줌마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에 몽골에 대한 좋은 기억이 더 좋게 남았습니다*^_____^*

감자 소고기 볶음(몽골 전통요리)
호텔 조식

귀국하는 날, 일정은 자이슨 기념탑, 캐시미어 매장 방문.

캐시미어는 염소털 섬유로 유독 가볍고 따뜻합니다. 보풀도 잘 생겨서 보관 관리가 어렵다는 말에 물건을 구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머플러를 하나 둘러보고 그 가벼움에 반해서 구입하였습니다. 저는 출산하고 살이 찌면서 목이 짧아졌고 미혼 때에는 항상 두르고 다녔던 머플러를 이제는 답답하게 느끼는데, 목에 두른 것 같지도 않은 가벼움과 포근함에 캐시미어 머플러가 제 보물 1호가 되어 한국에 와서 특별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오후 5시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왜 출발 전까지도 몽골이 싫었을까.

나는 왜 첫눈에 몽골에 반했을까.

몽골 전통 음악에서 느낀 슬픔과 위대함은 무엇일까.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몽골의 대자연을 나는 과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까.

우리 집 아이들은 몽골에 여행을 오면 어떤 모습일까.

30cm 눈 속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테를지 야생화들은 다른 계절을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몽골 토템신앙의 힘 있는 탱그리 신이시여

나의 부처님, 이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행자로서 저의 자만심과 편견, 경솔함을 반성합니다.

몽골 여행은 제가 열일곱 살부터 시작한 여행자로서의 첫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부디 저를 한번 더 몽골의 대자연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그래서 제가 제 자신의 삶과 주위 사람들, 저를 둘러싼 자연과 법칙에 대해 더욱 낮게 임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기를..

부디 저를 한번 더 몽골의 대자연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여행기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만나 부부가 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여행 TV프로그램에 푹 빠져서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모니터 하는 우리 예쁜 둘째 아기곰에게 바칩니다.

몽골 어워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위 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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