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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May 22. 2020

상실의 고통, 그리고 디스코 리듬

영국 드라마 리버

2015년 BBC에서 방영된 6부작 드라마 리버(River). 인생 드라마로 꼽는 사람들이 있기에 관심이 있었는데 마침 넷플릭스에서 제공 종료된다는 소식에 시간을 내었다.

기대 이상이었고, 드라마 자체보다 수록곡들이 감정적 충격으로 기억된 드라마였다. 주인공들의 눈빛, 그리고 디스코 리듬. 이미 알던 곡들이지만 앞으로는 다르게 들리게 될 것 같다.


죽은 사람을 보는 중년의 형사가 있다. 죽은 사람을 본다는 건 이 남자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숨겨야 할 결함으로 그려진다. 비밀은 가진 그는 동료가 사망하자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며 사건의 진상을 찾아 나선다. 장르가 형사물이다 보니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잡는 과정이 주된 전개다. 하지만 드라마가 실제로 다루는 건 기억과 감정이고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드라마는 내내 어둡다. 음악은 어울리지 않게 밝고 요란하게 튀어나온다. 이 부조화는 상실의 비참함과 참담한 마음을 좀 더 거칠게 부각한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한 곡이라 할 수 있는 I love to love(1976). 1회가 시작되면 음울한 표정의 중년 남성이 어두운 거리에서 차를 몰고, 청량감 있고 달콤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남자는 운전을 하고 옆자리 여자는 같이 노래하자고 채근하며 경쾌하게 I love to love를 부른다. 하지만 남자는 노래하지 않는다. 여주인공이 정말 매력적이다. 웃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선 굵은 주름도 아름답다. 드라마가 시작한 시점에서 이미 사망해있는데도 내내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드라마는 6화에 걸쳐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 올려가다가 마지막 회에 가서 폭발시킨다. 마지막화에 이 노래가 수미상관과 같은 모양새로 다시 등장한다. 다시 등장하면서 상실의 고통을 웃음과 함께 헤집어 꺼낸다. 신나는 리듬이 아이러니컬하게 고통스럽게 슬퍼지는 순간. 방심하고 있다가 디스코 리듬과 함께 펑펑 울고 말았다. 그 뒤로는 I love to love를 들으면 고통이 느껴진다. 놀랍도록 밝고 경쾌한 디스코곡인데 말이다.

Tina Charles의 I love to love(1976)

그리고 음침한 분위기 사이에 흘러나오는 반짝이는 노래 한 곡 더, I am in the mood for dancing. 이 노래도 이제 눈물 버튼이 되었다. 성숙한 여자의 목소리 같다가 다 자라지 못한 소년의 목소리 같기도 한 보컬이 직선으로 뻗어 나오는 곡이다.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고 밝아서 아이러니를 극대화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앞으로 울고 싶을 때 듣고 싶은 노래 리스트에 올리게 되었다.

The Nolans - I'm In the Mood for Dancing

리버는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고 단단하다. 언젠가 다시 조용히 보고 싶은 드라마. 그 전까진 종종 이 노래들을 듣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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