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편. 나는 왜 책을 좋아할까?
나는 책을 좋아한다. 한 달에 20여 권의 책을 읽을 정도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을 좋아하는 걸까? 습관처럼 책을 집어 들다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몇 달간 고민 끝에 얻어낸 책을 좋아하는 이유들, 내가 찾은 가치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냥 책이 주는 그 느낌이 있다. 오락처럼 소비되는 다양하고 자극적이고 화려한 콘텐츠들로 둘러싸인 현실에서 굳이 재미없어 보이는 그 '책'이라는 콘텐츠를 찾는 사람들에게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에 치이는 답답한 지하철 안에서 힘들게 한쪽 손을 치켜들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진중하고, 지혜롭고, 자신만의 색이 있고,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일 것 같다'라는 생각.
그러다 보니 내가 책을 읽는 그 순간에는 왠지 모를 우쭐거림이 차오른다.
나는 다른 유혹들을 이겨내고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집어 든 사람이라고!
독서, 음악 듣기 같은 활동들은 보통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으로 평가되기 힘든 수동적 활동이다.
물론 책에 나온 것들을 실천하고 책 속의 개념들을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정도를 보고 깊이 있는 독서인지 아닌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른 취미에 비해 보편적인 접근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볼링이 취미라고 하면 '볼링 몇 점 정도 쳐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독서는 '어떤 분야 책을 주로 읽어요?' 같은 질문들이 나온다.
따라서 사회에서 독서라는 활동은 아직까지 '잘' 읽는 '능력'으로 비교되지 않는다. 그러니 외부의 평가에 휘둘릴 일도 없다.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적어도 3권의 책을 읽는다.
내가 그냥 맨땅에 헤딩했다면 수십 년 걸렸을 노하우들을 그 책들로 일주일 만에 습득할 수 있다.
물론 글로 읽어본 건 실제의 일부만 훑어보는 것이고, 실제의 경험과는 천지차이겠지만.
적어도 발생할 문제를 막아주고, 목표지점까지의 도달 시간을 수년은 앞당겨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얼마 전 잠을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잠을 자는 시간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바로 리디 셀렉트에 '수면'이라고 검색해 제목이 끌리는 책들을 다운로드 받았다.
후지모도 겐고의 '3시간 수면법'
니시노 세이지의 '스탠퍼드식 최고의 수면법'
한진규의 '수면밸런스'
되도록 다른 내용을 담은 것 같은 제목을 골랐고, 실제로도 주장하는 요지는 달랐다. 어떤 저자는 3시간만 자고 살 수 있다고 하였고, 어떤 책은 8시간은 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들 속에서 나보다 중요한 공통점을 찾았다. 피로함은 사실 자신이 피로하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수면의 총시간 보다 규칙적인 수면을 통해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8시간보다 적게 잔 날 나도 모르게 되되이던 ' 오늘은 잠을 조금 자서 분명히 피곤할 거야'라는 생각을 그만두었고, 규칙적인 수면 시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항상 8시간 이상 자면서도 피로했던 생활을 일주일 만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7시간 잠을 자면서도 훨씬 더 명료한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책의 주요한 기능은 간접 경험이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것들이 생길 때마다 책을 들춰본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도 그러했고 요가라는 취미를 고민했을 때도 그러했다. 이미 내가 관심 가진 것들을 삶의 루틴으로,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보면, 막연했던 나의 환상이 깨지기도 하고 전혀 생각도 못했던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 일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매력들도 발견한다.
내가 축척해 온 나에 대한 데이터와 다른 사람의 경험이 합쳐지면 그 일이 진정 한번 실행에 옮겨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꽤 잘 판단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북 스터디가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가진 각자의 관심을 서로에게 전파시키는 이 모임의 특성 덕분에,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분야들을 접하게 된다. 북 스터디 책 중에 가장 좋았던 한 권을 꼽자면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다.
나는 가장 좋은 책은 내 삶과 사고에 변화를 가져다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내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과였기에 철학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받아왔기에, '악의 평범성' 같은 개념들이 굉장히 새로웠다.
이 책을 통해 접한 철학은 사건의 단면 뒤에 숨은 내용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단순히 나의 이익을 떠나 세상에 이로운 일은 무엇일까 라는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