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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Sep 23. 2015

역지사지

이방인의 마음을 알게 된 순간

#. 역지사지


역지사지 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자성어 중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 이 역지사지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출처 : 구글

전 세계의 인종은 피부색에 따라 크게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으로 나뉜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백인 혹은 흑인이다. 때문에 황인종인 내가 여행을 하는 동안 어딜 가나 쉽게 주목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상점에 들어가거나 그냥 거리를 걷다 보면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정말 많이 느낄 수 있다. 기분 나쁜 시선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고 어려 보이는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인들이 원래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한다. 더군다나 나는 한국에서도 나이 보다 조금 어리게 보는 편이다.) 동양 여자애가 혼자서 돌아다니는 걸 보니 신기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선들이 여행 초기에는 나를 조금 위축되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악의 없는, 호기심에 바라 본 시선이라 해도 어찌됐건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이었고, 혼자였으며 게다가 모든 게 낯설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물론 여행 중반부터는 유럽이라는 곳과 그런 시선들 모두 적응이 되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오히려 더 깡다구가 생겨 그러려니 하며 시선 따위 개의치 않게 되었지만.

여행 초반에는 그런 작은 시선들 하나 하나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덕분에 역지사지로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경복궁, 인사동, 명동 등 서울의 유명 관광지라 하는 곳에 가면 여행 온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은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동네에서도 외국인들을 곧 잘 마주칠 수 있게 되었다.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우리랑 생김새가 다른 그들이 신기해서, 혹은 그냥 튀어서, 친해지고 싶어서 등 어떤 이유에서건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간혹 아무 관련 없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로 외국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도 봤다. (이건 정말 비매너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선들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타지에 혼자 돌아다녀보니, 이 작은 시선들 하나 하나가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크게 느껴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방인이 되어보니, 이방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간혹 상점에서 계산을 할 때라던지, 카페에서 혹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씽긋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 그 미소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어주던지! 이방인에게는 낯선 곳에서 누군가의 미소 하나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유럽 사람들은 "Thank you", "Sorry"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런던의 'Primark'라는 대형 상점에 들어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규모가 엄청 큰 상점인데도 불구하고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Excuse me"라고 말하지 않으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했던 건 "Excuse me"라고 말하면 앞에 있던 사람이 정말 화들짝 놀라며 "Oh, Sorry"라며 정말 미안한 얼굴로 길을 비켜주는 것이 아닌가. 정말 신선했다. 그 사람이 내 발을 밟은 것도 아니고, 나를 실수로 건드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가기 위해 습관적인 단어 "Excuse me"를 입 밖으로 낸  것뿐인데 그 한 마디에 정말 미안해하며 사과하는 모습이 한국인으로서는 무척이나 생소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내가 'Excuse me'라고 미처 말하기도 전에 자신이 옷을 고르다가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길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먼저 "Sorry"라며 길을 비켜주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그 날 하루, 그 상점에서만 'Sorry'라는 말을 10번 이상 들었을 거다.


조금 당황스러울 만큼 유럽여행을 다니는 동안, 특히 런던에서 "Thank you", "Sorry"라는 말을 귀에 닳도록 들었다. 그들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표현을 할 줄 아는 나라였다.

'한국에서는 길을 걷다가 모르고 부딪혀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라며  나도 모르게 우리네와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되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표현은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일 터.

고마워할 줄 알고,  미안해할  아는 줄 아는 풍부함을 가진 내가, 우리가 되길_




떠나간 그 곳에서 국적도, 성별도, 삶도 다른 우리는 모두가 '이방인'이었다.


영국, 런던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로마
영국, 런던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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