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을 목숨

내 몸에 새겨진 메시지

by 고밀도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내가 특별히 주목받는 공간들이 있다. 몸을 드러내야 하는 탈의실이나 목욕탕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내 몸의 사연을 궁금해하고 그것으로 다양한 대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내 복부에는 배꼽을 기준으로 꽤 화려한 붉은 흉터가 자리 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묘사를 해보자면, 12센치미터 가량의 소나무 같은 다소 거친 느낌의 굵은 줄기가 배꼽부터 아래로 뻗어 있고 왼쪽 한 뼘 옆으로 점 같은 작은 흉터가 있다. 이 둘 흉터는 마치 刀(칼도)의 자형(刂)을 그려 놓은 듯하다.


흉터로 인한 혜택이라면 혜택이랄까? 흉터 덕분에 특별한 대접을 받을 때도 있다. 몇 년 전, 출산할 때가 되어 분만실에 대기하고 누워있는데 단호하기로 유명한 조산사님께서 내 배에 흉터를 보시고 다정스레 말을 거쳤다. ‘보아하니 제왕절개 같은 수술은 아닌데 어쩌다 이런 상처가 생겼어요?’ 간단히 상처의 사연을 이야기하자 안타깝다면서 꼭 자연분만을 해내자며 진통하는 동안 다른 산모들보다 조금 더 오래 시간을 할애하여 조언을 해주셨다. 옆에서 호흡을 잡아주신 덕분에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고통을 덜 느끼고 출산을 할 수 있었다.


나의 배에 붉은 흉터는 결혼하고 6개월 뒤, 새댁 때에 얻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한 가을날, 속이 좋지 않았다. 소화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식사를 건너뛰고 계속 일을 했다. 그날까지 끝내야 할 일이 있어서 쉬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부장님은 창백해진 안색을 보고 조퇴를 하라고 했지만 ‘괜찮아요. 조금 체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미련스레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식은 땀을 흘리며 스스로 만든 책임감이라는 짐을 어깨에 지고 하루의 일과를 소화했다. 지나고 보면 그것은 책임감이 아닌 미련이었다. 그날 밤 밤새 복통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응급실에 실려갔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상태가 심각하다며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맹장염이 이미 대장, 소장으로 번진 것이다. 의사들은 어떻게 이 상태가 될 때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냐며 다그쳤다. 참지 않고 일찍 왔다면 간단한 맹장수술로 끝났을 텐데 12cm이상을 개복하여 염증이 번진 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장시간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을 하고 난 뒤에도 염증 수치를 낮추기 위해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해야만 했고 후유증도 오래 갔다. 우리 부부는 임신 계획을 1년 이상 미뤘다. 배에 힘을 주는 것이 어려워 겨울만 되면 즐기던 스노우 보드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인내가 미덕이라는데 인내할 것은 따로 있는 것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묵살하고 내가 스스로 정한 책임감을 내세우느라 나의 몸을 수술대에 뉘어야 했던 것이다.


상처가 아물자 나는 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몸을 혹사시키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내 삶에 육아까지 더해지면서 나는 늘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는 육아에 지친 몸의 피로가 임계치를 넘어서서 큰 마음을 먹고 목욕탕 세신실을 찾았다. ‘아이고, 새댁 배는 살살 해줘야겠네.’ 이런 반응에 익숙했기에 배를 드러내면 나는 자동으로 ‘맹장을 참았더니 터졌네요.’라고 설명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그 세신사는 ‘복막염이지? 미련스럽게 잘 참는 스타일이구만.’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본인도 배에 같은 상처가 있다며 보여줬다. 눈 여겨 보지 않고 천정을 보고 누워있었는데 나처럼 세로로 꿰매진 상처가 있었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옛날이었으면 이미 죽었을 목숨이야.
이렇게 살아 있으니 더 소중하게 살아야 해.’



(출처:구글이미지)


죽었을 목숨.


이 한 문장이 나의 일상을 되돌아 보게 했다. 내 몸에 새겨져 있는 상처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건강을 지키는 것에 안일해졌고 매일을 행복하게 지내기는커녕 버티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세신사의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어르신들은 종종 옛날에는 복막염으로 죽는 이도 많았다고 배가 아픈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고도 한다. 그런 나는 21세기에 태어났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살아갈 기회를 한 번 더 얻은 셈인 것이다. 나에게는 주어진 내 삶을 허투루 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예전의 관성대로 내 몸이 말하는 신호들을 무시하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는 다시 소홀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욕을 마치고 거울을 봤다. 상처가 붉게 남는 피부 타입을 가진 지라 아직도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자국은 미련함의 상징이고 이미 죽고 없었을 인생이 다시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해 나의 행복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내 몸이 보내는 메시지였다. 나처럼 몸에 명확한 메시지가 쓰여 있지 않더라도 어쩌면 몸은 항상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일상의 습관들을 몸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자주 이 동행자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때로는 늦은 후회를 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곧 불혹이 된다. 관성의 법칙을 한 번 더 깨고 내 몸을, 내 삶을 아끼며 살기로 결심한다. 다시 얻은 귀한 삶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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