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시험에 지각하고, 대학에 낙방
실패하는 인간
논술시험은 자신 있었다. 전국적인 대회는 아니었지만, 교내에서 논술대회가 열리면 늘 최우수상을 거머쥐던 나였다. 열심히 준비한 수능을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 탓에 망쳐버리고, 그나마 망쳐버린 점수를 조금 만회할 수 있는 논술 전형을 발견했다. 마침, 가고 싶었던 ‘광고학과’도 있는 학교였다. 논술만 평소대로 잘 써준다면 무난히 합격통지서를 거머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그날의 공기가 생각난다. 하늘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있었고, 나는 나름대로(?) 일찍 4호선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전까지 나는 서울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서울이 얼마나 먼지 가늠하지 못했다. 시험 전에 한 번이라도 다녀오는 노력을 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런 기특한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다. 엄마 아빠께도 일찍 시험 보러 간다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9시 시험이니까,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에 15분 정도를 더해서 출발하면 충분하지, 라는 생각으로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출근길의 지하철은 생소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지하철을 타러 나온단 말인가? 지하철은 밀리지 않는다고, 정확히 시간을 지킨다고 누가 큰 구라를 쳤던가? 가야하는 28개 역 중에 3분의 1도 가지 못했는데 매 역마다 문이 한 번에 닫히지 않았다.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역에 도착했을 때는 15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지하철 출구해서 달리기만 하면 세입이다! 역 이름이 00대 입구이지 않은가? 코앞이 아니라면 이런 이름을 썼을 리 없다. 하지만, 출구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목적지를 물으니 걸어서 20분은 거릴 거라고 했다. 나는 다급하게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택시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타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나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기사님은 너무 짧은 거리라고 반기지 않았지만, 나를 태우고 학교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하지만 나의 좌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 입구까지만 차량이 진입 가능하여 목적지까지 도보로 15분이나 걸리는 거리는 걸어가야 했다. 나는 아까운 기본요금을 내고 내렸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그곳은 언덕 천지에 건물들이 온통 비슷하게 생겼다. 추운 겨울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건물을 찾았다. 지각이 자명해지니 당황하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찾았다면 금방 찾았을 건물을 찾는데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논술 시험장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이 지나버린 상황이었다. 시험 종료는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시험은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문제를 파악하고 구조를 잡고 글을 바로 써 내려갔지만 결국 결론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본론의 3가지 꼭지만 겨우 언급한 나의 시험지를 감독관은 가지고 갔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오래 준비해온 대학시험에 지각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털어놓은 순간, 나의 어리석음이 더 선명해질 것 같았다. 그날의 기억은 혼자 묻어두기로 했다. 그래도 만의 하나 행운의 여신이 나를 찾아와 줄지 모르니까.
나는 알았다. 지각한 자에게는 행운의 여신이 건너뛰어간다는 것을. 결과는 예비 6번. 그리고 최종 불합격.
나는 아직도 이따금씩 그때 지각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나는 합격을 했을까? 나는 광고쟁이가 되었을까? 가끔 그 학교 근처의 호텔로 호캉스를 간다. 창문 너머 보이는 그 학교의 교정을 열심히 살펴본다. 자세히 보면 그 교정을 미친 사람처럼 헤매고 다니고 있는 20살의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