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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cOllectOr Apr 29. 2016

#6 멈춰진 시계 : 모라토리엄 인간

감성 심리치유 에세이

A군은 올해 대학을 입학하며 바로 편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입학한 대학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 3학년인 E 씨는 두 번째 휴학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취업에 대비하자니 부족함이 많아 보여서입니다.

취준생 기간을 막 벗어나 중소기업에 입사한 J 씨는 이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연봉이나 처우를 생각하면 이직이 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대기업 차장인 C 씨는 창업에 대해 생각 중입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조만간 준비를 해야겠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예 이민을 생각 중인 Y씨도 있습니다. 훗날 아이들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이민이 최선이라 생각이들어죠.


이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 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모라토리엄? 모라토리엄 인간!

원래 모라토리엄은 경제용어로 국가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유예'를 말합니다.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부도기업의 법정관리처럼 채무국 채권국이 채권 삭감이나 이자감면, 상환기간 유예 등을 합의하는 것입니다.

이 경제용어가 심리학에 도입된 건 독일의 정신분석가인 에릭슨( Eeikson)이 사회 심리학 용어로 정의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오코노키가 책에서 소개하면서부터입니다.


지적, 육체적으로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데도 사회 구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기피하는 사람으로 언제나 사회적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유예기간에 머물 뿐 성인 사회의 한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졸업 후에도 생활을 부모에게 의지하고 있는 캥거루족으로 지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립이 안 된 상태의 주로 젊은 사람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용 어가 나온지도 벌써 시간이 꽤 흘렀고 그렇게 간단하게 누군가를 지칭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럼 진짜 모라토리엄 인간은?


원래 모라토리엄 인간은 사회적 자립을 위한 정체성 확립이 안된 사람을 뜻하지만 요즘 사회에선 경제활동을 못하는 사람 등으로 단순 분류하기보다는 복잡하고 확장된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학력이 요구되는 사회에선 공부하는 기간도 길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납세)를 하기 위해 전제되어지는 경제적 독립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힘든 취업상황에 사회적 자립을 강제 유예당하고 있는 분들도 많으나 이는 자발적 유예와는 다릅니다.



그러면 진짜 모라토리엄 인간은 누구일까요?


지금, 현재의 삶에 의미를 주지 않고 미래의 '다른 삶'과 '다른 나'에 큰 희망을 걸고 진짜 삶을 유예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


지금 현재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게중심이 '미래의 나'에게 지나치게 맞추어져 있어 현재의 나는 초라하고 곧 사라질 존재라면 그것이 지금 실존하고 있는 삶을 부정, 유예하고 있는 모라토리움입니다.


편입을 생각하고 올해 대학을 입학한 A군에겐 2년 후에 편입을 할 대학이 아닌 지금의 대학에서의 삶이 얼마만큼의 의미를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좋은 친구를 사귀고 알찬 대학생활을 하다 편입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도중에 스쳐 지나갈 나의 최종학력이 되지 않을 학교라는 생각이 A군의 머리 한구석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모라토리엄 인간이라면 '나는 이 대학에 어울리지 않아 난 더 좋은 대학에 갈 거고 어차피 여기 졸업장은 받지도 않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J 씨는 자신의 현재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건 스펙도 괜찮은 내가 할 일이 아니야, 준비되는 대로 바로 옮겨야지.'

J 씨의 현 직장에서의 삶은 이미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여도 취업을 해서도 이곳은 곧 스쳐 지나갈 직장이고 떠날 곳, 또 어떤 이에겐 이곳은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준비하며 그저 버티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요즘은 계속 범위와 세대를 넘어 확장되고 있습니다. 취업할 때쯤의 20대를 가리키던 모라토리엄 인간은 이제 모라토리엄 세대가 ,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과 현재의 삶을 유예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현재가 꿈꾸는 미래로의 디딤돌이 되어야지 미래의 다른 나의 기억하기 싫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리적 모라토리움 상황에서 무엇을 유예하고 잃고 있는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의미는 경제적 활동을 해서 납세의 의무를 다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어떤 이의 서비스로 고객을 편하게 하고 누군가의 연구로 기술이 발달하고 또한 당신의 글한 줄로 다른 이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체되어질 수 없는 바로 지금

사회의 작은 점이나마 의미가 되고 싶은 당신

비로 그 두 가지를 잃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위 사람들의 또 다른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모두 현실의 삶,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일 수도 모라토리엄 인간일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큰 차이지만  이런 가치관에 따라 삶은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습니다.




모라토리엄 인간의 반대는?


바로 실존적 인간 , 삶입니다.

말이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의 삶(here and now)을 만끽하며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멈추고 순간을 잡는 방법 steve adids


스티브 아디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1살이던 무렵 뉴욕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을 아내가 스냅사진으로 찍어주었고 그는 이후 14장의 사진을 더 찍습니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딸을 안고서요.

스티브 아디스는 말합니다. 작고 반복적인 일이 일상에 가져다주는 놀라움을.

그는 이 사진을 찍음으로써 그가 받은 많은 영감과 감동을 시간을 잡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말할 때, 사진을 찍기 위해 딸과 뉴욕으로 여행하며 나누는 교감 그리고 가족애가 그의 삶의 순간을 더 의미 있게 느끼게 만들었고 순간을 느끼며 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His Story

일 년에 한 번 사진을 찍는 날을 제외하곤 그도 평범하고 때로는 만족스럽지 않은 364일을 살아갈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을 다 기념일로 만들 순 없지만 일 년 중 하루라도 더 의미를 부여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여행과 기념품이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번 퇴근길에 사 오는 꽃 한다 발,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의 냄새를 음미하는 것, 한 주간의 일을 쓰는 일기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작지만 반복적인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순간순간을 더 피부로 생생히 느끼며 사는 것, 그것이 실존적 삶입니다.


당신만의 스토리와 문화를 만들어라!



직장인 E 씨는 매일이 집과 회사의 반복인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회사 근처의 가게에 붙은 전신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한번 찍어보았습니다.

사진 속의 자신이 많이 지쳐 보여 다음날은 화사 한색의 원피스를 입고 출근하며 다시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파이팅"이라고.

그렇게 E 씨의  매일 출근길 사진 찍기는 몇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사진 속의 다른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안 들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도 많았지만 자신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를 확인하며 '지금'의 자신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변해갈 생각을 하니 문득 몇 년 후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진작가나 작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와 기록들이 당신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모여 당신만의 문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은 확실합니다.


이렇듯 실존이란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두 똑같은 날, 시간, 분, 초를 살아가지만 더 음미하고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훨씬 큰 것임은 당연합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지, 당신의 삶이 지금 이곳 현재의 삶에 살아 숨 쉬는지 둘러볼 때입니다.



미래의 찬란할 나를 위해 지금 바로 이 순간의 내 삶을 유예시킨 체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럼.........

당신의 진짜 삶은 언제 시작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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