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심리치유 에세이
몇 년 전 영화 보러 갔다 인상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러닝타임 내내 팝콘 씹는 소리, 음료수 마시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가 음소거한 듯 사라졌고 영화가 끝나도 아무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던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꽉 찬 극장이 마치 단체로 약속한 듯 자막이 다 올라가고 불이 켜져도 한동안 다들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The Reader'라는 영화입니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자 몰입하는 한나-'The Reader'>
15살 소년 마이클은 우연한 계기로 30살의 여성 한나를 만나 한여름 불같은 사랑에 빠집니다. 주로 그녀의 집안에서만 이루어지던 그들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섹스 이전 또는 이후 이루어지던 마이클의 책 읽어주기였습니다. 한나의 너무 간절한 청에 마이클은 이상함을 느끼지만 매번 여러 책을 읽어줍니다. 한나는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그의 책 읽기에 기뻐하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짧은 만남은 한나에 의해 일방적으로 끝나고 시간이 지나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나치 전범 재판 참관을 갔다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한나는 글을 써서 필체를 밝히면 무죄를 증명할 수 있던 기회를 스스로 포기 무기징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향합니다. 그 후 오랜 수감기간 마이클은 그녀에게 책 낭독 테이프를 보내며 그녀의 곁을 지킵니다.
한나가 그를 떠나게 만들고 스스로 누명을 쓰게 만든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비밀을 지키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글씨를 읽고 쓸 수 없다는 것.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고 사랑도 자유도 다 잃느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되돌아보면 절박한 그 무엇을 숨기기위해
괜찮은척 쿨한척 했던, 못나고 안쓰러웠던 '나'가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관객모두는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비밀이란 단어를 콤플렉스로 바꿔보겠습니다.
콤플렉스를 가진 바보아닌 바보가 한순간도 아니었던 사람은 드뭅니다.
트라우마로 바꿔보겠습니다.
그냥 바보가 아니라 상처투성이의 바보입니다.
이 바보는 한나처럼 숨기고 감추느라 더 아픕니다.
신체 이형 장애 ( Body Dysmorpgic Disoder)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의 결함을 과장해서 받아들이거나 있지도 않은 결함 때문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이 괴물 같아서 외출도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이로인해 대인기피,성형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형 장애가 병리학적으로 흔하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드물지도 않습니다.
p 씨는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로 발전될 상황이었지만 p 씨가 망설이다 그 사람과는 어긋났고 이후로도 그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sns로 우연히 본 그의 일상.
현재의 여자 친구와 행복한 삶을 보내는 사진들을 보다 p 씨는 정말이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새 여자 친구는 예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았던 겁니다.
이게 그토록 큰 충격인 이유를 p 씨는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p 씨가 그 남자를 만날 당시 본인은 항상 그에 비해 자신의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했었던 겁니다.
키도 크고 운동도 많이 해서 몸매도 좋은 그에 비해나는......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자신 없던 p 씨는 그 사람이 좋아도 움츠러들고 망설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사람의 새 여자 친구는 자신보다 외모가 더 잘나기는커녕 훨씬 더 안 예뻐 보였던 거죠.
외모로만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누구나 알지만 누군가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낮은 점수를 매깁니다.
이제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사실 예쁜 p씨는 신체 이형 장애 아닌 신체 이형 장애를 앓고 있는것입니다.
외모뿐만 배경,학벌, 스펙등의 필터로 바뀌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 필터로 자신에게 상처를 주다 오히려 진정한 기회,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또 한 명의 여자, 한나는 문맹이라는 자신의 결점에 너무 과장, 몰입해서 스스로의 삶을 애처롭게 만들었습니다.
글은 몰랐어도 가슴이 따뜻하고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평생을 그의 가슴에 남을 만큼 매력 있던 여자가 말입니다.
결점을 숨기고 싶은 게 모든 이들의 마음이겠지만 숨기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지다 보면 어느새 그 결점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두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나는 그녀 평생의 비밀에서 벗어나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한편 p씨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며 달라지려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거울속의 나를 제대로 본다면.....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
매일 거울을 보며 누구를, 무엇을 보고 있나요?
당신이 아닌 당신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눈이 지금의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