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뉴먼트밸리 오프로드 투어
시동이 걸리는 순간, 평화롭던 붉은 대지는 거대한 롤러코스터로 돌변했다.
사방이 탁 트인 오픈형 사파리 4륜 구동차에 올라타자마자 내 심장은 엔진보다 먼저 요동쳤다.
예감은 적중했다. 운전자가 기어를 밀어 넣자 차는 망설임 없이 붉은 흙길로 돌진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마다 내 엉덩이는 시트 위에서 갈 길을 잃고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입술 사이로 짧은 비명이 터졌고, 곧 웃음이 뒤따랐다.
머릿속에선 이미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테마곡이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정체 모를 추격자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따라붙을 것만 같았다. 차는 붉은 파도를 타듯 언덕을 넘고, 바퀴를 비틀며 방향을 틀어 거대한 바위들을 향해 질주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니었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어드벤처 영화 속, 위기에 처했지만 즐거워 죽는 주인공이었다.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는 흙먼지 덕분에 우리는 스카프를 끌어올려 코와 입을 가렸다. 멋을 부리겠다며 챙겨 온 스카프 두 장이 여기서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덕분에 먼지 폭풍을 버텨내며 깨달았다. 역시 여행지의 패션은 가끔 미학을 넘어 과학이 되기도 한다.
덜컹거리던 차가 멈춘 순간, 세상이 갑자기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고요해졌다.
눈앞에는 믿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붉은 대지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벙어리장갑 모양의 바위,
웨스트미튼(West Mitten)과 이스트미튼(East Mitten)
마치 하늘을 향해 “여기 봐!” 하고 손을 번쩍 든 신의 손 같았다.
나바호족에게 이 바위들은 “내가 너희를 돌보고 있다”는 신의 약속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 거대한 손바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자니, 정말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묘한 신비감이 스며들었다.
이 바위들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다. 약 3억 년 전, 고대의 바다와 사막이 번갈아 자리하던 시대부터 쌓인 퇴적층, 즉 지구가 숨 쉬어 온 시간의 일기장이다. 인간의 역사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 이 장대한 침묵 속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사실 이곳은 나바호족의 성지라 대부분의 구역에서 개인 하이킹이 금지된다. 잠시 경건 모드로 전환해야 하나 0.5초쯤 고민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반응했다.
신성함과 들뜬 마음이 한순간 겹쳐졌다.
우리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거대한 바위를 배경 삼아 바디 실루엣을 최대치로 키우며 인생샷을 향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춤이라도 추듯 웃어대며 포즈를 취했다.
신의 약속이든, 지구의 시간 일기장이든, 우리는 그저 이 순간이 한없이 즐거운 작은 인간일 뿐이니까.
다시 차에 올라 이동하던 중, 가느다란 세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선 바위를 만났다.
이른바 ‘세 자매’ 바위, Three Sisters.
나바호 전설에 따르면 엄격한 규율을 어겨 벌을 받은 수녀들이라고 한다. 가장 왼쪽 바위는 정말 기도하는 수녀의 옆모습을 닮았다. 평소 성당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냉담자인 내 눈에도 그 경건함이 보일 정도니, 자연의 조각 솜씨는 미켈란젤로급이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서부 영화의 성지, 존 포드 포인트(John Ford's Point).
수많은 명작을 남긴 전설적인 감독의 이름을 딴 장소다.
특히, 말을 타고 절벽 끝에서 사진을 찍는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내 시선을 붙잡은 건 말도, 절벽도 아닌 작은 비석 하나였다.
그곳에는 영화 속 영웅의 이름 대신, 한 남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에릭슨 클라이(Erickson Cly, 1973–2006).
이곳에서 나고 자라 여행자들에게 이 땅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나바호족 가이드였다.
그는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낙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그가 가장 사랑했고 매일같이 찾았던 이 언덕에 그를 기리는 비석을 세웠다.
그 순간, 모뉴먼트 밸리는 더 이상 영화 세트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짜릿한 액티비티를 소비하던 이 붉은 땅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고, 기억이었고, 사랑이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의 초점이 바뀌었다.
화려한 영화적 연출 뒤에 한 사람의 진짜 생애가 겹쳐지자 붉은 바위들이 전혀 다르게 읽혔다. 수억 년의 지질층 위에, 한 인간의 뜨거웠던 32년이 포개져 있었다.
특히, 비석에 새겨진 추모시 <I'm Free>는 9·11 테러 희생자 추모 등 영미권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시이다. 이 광활한 대자연 한가운데서 읽는 문장들은 단순히 활자가 아니라 바람을 타고 내 귓가에 내려앉았다.
1인칭으로 말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I'm Free>
I'm Free.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어요.
Don't grieve for me, for now I'm free,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으니까요.
I'm following the path God laid for me.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마련해 두신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I took His hand when I heard Him call,
그분이 나를 부르실 때 나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I turned my back and left it all.
그리고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났습니다.
I could not stay another day,
나는 더 머물 수 없었습니다.
To laugh, to love, to work or play.
웃고, 사랑하고, 일하고, 즐기며 지내는 시간을 더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Tasks left undone must stay that way,
미처 마치지 못한 일들은 그대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I found that place at the close of day.
나는 하루가 저무는 끝에서 그 안식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If my parting has left a void,
나의 떠남이 당신의 마음에 빈자리를 남겼다면,
Then fill it with remembered joy.
그 자리를 함께했던 기쁨의 기억으로 채워 주세요.
A friendship shared, a laugh, a kiss,
함께 나눈 우정과 웃음, 그리고 따뜻한 입맞춤,
Ah yes, these things I too will miss.
아, 그래요, 나 역시 그 모든 것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Be not burdened with times of sorrow,
슬픔의 시간에 짓눌리지 마세요.
I wish you the sunshine of tomorrow.
나는 당신에게 내일의 햇살이 비추길 바랍니다.
My life's been full, I savored much,
나의 삶은 충만했고, 나는 많은 것을 깊이 누렸습니다.
Good friends, good times, a loved one's touch.
좋은 친구들, 행복한 시간들, 사랑하는 이의 손길을.
Perhaps my time seemed all too brief,
어쩌면 나의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Don't lengthen it now with undue grief.
그러니 지나친 슬픔으로 그 시간을 더 늘리지는 말아 주세요.
Lift up your heart and share with me,
마음을 들어 올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세요.
God wanted me now, He set me free.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부르셨고,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We will love you forever, Eric.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에릭.
고인이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이 추모시는 슬픔을 넘어선 위로를 건넨다. 에릭슨 클라이가 사랑했던 이 붉은 대지 위에서 문장은 텍스트를 넘어 공기가 되었다.
나바호의 성지라서일까. 아니면 사방이 너무 탁 트여서일까.
광활한 대지, 소음이 사라진 곳에서 감정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그는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 눈부신 햇살과 자유로운 바람, 마음껏 즐기다 가세요.
우리는 언젠가 사라지지만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기억이 되고,
누군가는 이야기로 남고,
누군가는 이렇게
바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