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의 도파민은 더 거대한 서버를 부른다.

미국 홀슈밴드 인생샷 : 아찔함과 그 너머의 이야기

by 모먼트그래퍼
사진 한 장은 때론 글보다 강력하다.


매년 연말이면 일종의 안목쇼핑을 한다.

타임(TIME) 매거진이나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같은 월드클래스 매체가 발표하는 ‘올해의 사진‘을 훑으며, 세상이 어떤 장면을 기억하기로 했는지 확인하는 시간은 내게 일종의 보물 찾기와 같다.

리스트를 펼쳐두고 “오, 이건 뭐지?” 하며 클릭을 이어가는 그 시간이 은근히 짜릿하다.

올해는 조금 이르게, 미국 여행인 만큼 믿고 보는 미국의 보물창고인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의 리스트까지 훑었다. 국립 박물관의 품격은 지키면서도 읽는 재미는 놓치지 않는, 배운 사람들의 픽 같은 잡지랄까. 스미스소니언도 매년 올해의 사진집 10권을 선정하기 때문에 최근 목록을 스크롤하다가 내 손가락을 멈추게 한 사진이 있었다.

<The Colorado River: Chasing Water>

사진가 피트 맥브라이드(Pete McBride)가 콜로라도 강을 따라 1,500마일을 여행하며 기록한 사진집이다.


미국에서 콜로라도 강은 단순한 ‘물줄기’ 그 이상이다. 서부의 생존과 욕망, 자연의 경이로움이 뒤섞인 생명줄이다. 7개 주와 멕시코를 거치며 수 천 만 명의 목마름을 해결한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분수 쇼, LA의 푸른 수영장, 피닉스의 매끈한 골프장 잔디가 모두 이 강물 덕분이다. 만약 콜로라도 강이 파업이라도 선언한다면, 미국 서부의 대도시들은 영화 <매드맥스>의 실사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 하고 소리가 났다. 거대한 협곡 사이를 휘감아 도는 콜로라도 강의 곡선, 붉은 사암 절벽 아래로 말굽처럼 휘어 흐르는 초록빛 강물. 익숙한 구도이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곧바로 떠올랐다. 미국 서부 여행 사진, 그랜드캐니언 여행하면 항상 SNS 피드에서 수없이 스쳐 지나간 바로 그 구도.

“그래, 저건 바로 홀슈밴드(Horseshoe Bend)랑 비슷하네!”


하지만 책 속 사진은 흔한 여행지의 엽서와는 결이 달랐다. 낮아진 수위, 메마른 강가의 균열...

아름다움과 불안이 한 화면에 위태롭게 공존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강 앞에 선다면 나는 어떤 사진을 찍게 될까?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절벽 위에 서 있다.

굽이치는 콜로라도 강이 내려다보이는 사암 언덕 위. 우리는 지는 태양 아래 완벽한 포토스폿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일몰 명소답게 수백 명의 관광객이 전망대를 메웠고, 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 사암 절벽은 점점 더 짙은 주황빛으로 타올랐다.


그때 투어 가이드는 우리 팀을 이끌고 전망대의 왼쪽 사이드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왜 굳이 저쪽으로 가지?”

가이드의 줄 뒤에 서서 영혼 없는 기념사진을 찍어주길 기다릴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랬다간 해는 이미 지평선 아래로 숨어버릴 테니까.


홀슈밴드의 상징적인 장면은 협곡의 곡선이 정중앙에서 완벽한 말굽 형태로 보이는 구도 아닌가. 사이드에서는 강의 굽이가 비스듬히 잘릴 것이고, 내가 머릿속에 그려온 그림과는 딴 판일 게 분명했다.

가이드는 빨리 오라며 손짓했지만, 우리는 팀에서 살짝 이탈해 독자 노선을 택했다.

남들 다 찍는 안전한 앵글은 거부! 사람들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비집고 중앙으로 향했다.


“저기 봐. 저 안전펜스가 끝나는 지점! 여기서 찍으면 말굽 모양과 강 줄기가 딱 걸릴 거야!”


마침내 발견한 곳은 거대한 협곡의 곡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안전 펜스 하나 없는 날것 그대로의 돌출부였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발밑은 거칠고 경사가 있었다.


나와 여행메이트는 엉덩이를 바위 흙바닥에 붙이고 천천히 몸을 낮췄다. 손으로 사암을 짚으며 조심스럽게 절벽 끝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수 백 미터 아래로 낙하하는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

평화로운 푸른빛 강물이 발밑 허공과 가까워지며, 아찔한 공포와 설렘을 동시에 선사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이 짜릿한 촬영은 풍경을 담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끈끈한 유대감마저 느끼게 했다.


찰칵. 사진을 확인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타오르는 붉은 사암, 일몰의 그라데이션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뒤따라온 투어팀의 신혼부부가 우리가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찾아낸 그 자리가 좋은 포인트라는 걸 알아본 듯해 어깨가 잠시 으쓱해졌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건 나의 무모한 행동 아니였을까?

홀슈밴드는 일부 구간에만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절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경이로운 풍경 뒤에는 실제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까지도 여러 건 추락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화려한 풍경과 서늘한 현실이 한데 뒤섞여 있는 셈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위험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SNS 타임라인을 장악할 강렬한 한 장, 즉 도파민 폭발을 일으키는 장면에 어느새 중독되어 버린 건 아닐까.

클릭 한 번, 좋아요 하나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점점 더 아찔한 절벽 끝으로 자신을 내몬다.


이 도파민 샷이 소비되는 방식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진을 올리고 저장하는 거대한 서버, 즉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서버를 식히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과 물이 필요하다.

홀슈밴드가 위치한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 지역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확장을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샷의 배경인 푸른 강물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절실한 생존 자원이기 때문이다. 내가 절벽 끝에서 완벽한 사진을 얻기 위해 몸을 내밀 때, 그 사진을 유지하기 위한 자원들은 이미 사막의 다른 곳에서 팽팽한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도파민 한 장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피트 맥브라이드(Pete McBride)의 사진집 <The Colorado River: Chasing Water>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고작 찰나의 도파민을 쫓아 절벽 끝에 섰지만, 그는 이 강이 품은 생명력과 소멸의 위기를 기록하기 위해 1,500마일을 묵묵히 걸었다. 그의 사진은 내게 묻는 듯했다.

풍경의 '겉모습'을 소유할 것인가, 그 풍경의 '삶'을 이해할 것인가.

결국 이번 여행이 내게 준 진짜 선물은 완벽한 구도의 사진 한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벽 끝에서 느꼈던 아찔한 공포만큼이나 선명한 책임감 있는 시선이었다. 카메라 너머 푸른 강물 뒤에 숨은 갈등과 소모되는 자원까지 인식한 순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하나의 '만남'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좋은 사진이란 단순히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지 너머의 질문과 고민을 담는 흔적이라는 것을.

피트 맥브라이드가 그랬듯, 앞으로의 내 여행 역시 풍경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숨 쉬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본다.

홀슈밴드의 붉은 사암 위에서 근사한 프로필 사진뿐 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깊고 넓은 눈을 갖게되기를.


<참고>

출처 : https://petemcbride.com

<콜로라도 강을 끼고있는 페이지 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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