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불어넣어주는 빛깔
마조렐블루(Majorelle Blue)
한 번도 본 적은 없을진 몰라도 한 번 보면 절대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빛깔이다.
수많은 블루색을 봤지만, 이렇게 강렬한 블루는 처음이다.
집들도 골목도 성벽도 모두 세상 온통 붉게 물든 매혹적인 도시 마라케시(Marrakech) 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한다. 그야말로 붉은 마라케시 도시 속 숨겨진 보석이다.
“아임 유어 파더(I’m your father).”
영화 '스타워즈' 내용은 잘 몰라도 아마 다스베이더의 이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국민영화로 불리는 '스타워즈'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의 고향 타투인 행성 촬영지는 바로 북아프리카 모로코다. 미지의 외계행성처럼 지구 반대편 북아프리카에 대한 여행 로망은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키워 왔다. 북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에서 봤던 붉은 카스바(중세 만들어진 요새), 붉은 사하라사막, 붉은 아틀라스산맥으로 단연 붉은색이다. 순교자의 피를 상징하는 모로코 국기 색처럼 붉은색으로 물든 모로코 마라케시 도시에 도착해 버킷리스트 소원성취를 이루는 기회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첫 발을 내디뎠던 곳은 영화 '스타워즈'의 외계행성 같은 사막지대도 아닌,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나올 법한 붉은 진흙의 성채도 아닌 정반대의 강렬한 블루색 정원, 마조렐정원(Jardin Majorelle)이었다.
사막지대나 카스바 성채가 숙소에서 거리가 먼 지역임을 감안한다 해도 취향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했던 걸까. 누가 블루 덕후 아니랄까 봐, 숙소 근처 다른 관광지도 많은데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것 보면 말이다. 여행 첫날이라 비행 여독을 풀 만도 한데 미로 같은 메디나(구시가) 골목길을 헤치고 나섰다. 마라케시 중심가에서 걸어가기엔 애매한 거리라 입장마감시간 전에 도착하기 위해 부리나케 택시를 잡아탔다. 모로코는 흥정이 필수라던데, 운 좋게도 택시 기사는 바가지 없이 정직하게 택시요금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숙소 직원이 일러준 가격 그대로.
여행 시작부터 어수룩한 호갱님이 될까 걱정했는데 순조롭게 첫 여정이 시작되나 싶었다. 차창 밖 새롭고 이국적인 풍경들에 넋을 놓고 있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정원 입장 티켓박스 앞은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여행객들로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순조로운 출발은 그저 잠시, 차광막 하나 없는 길바닥에서 따가운 아프리카 햇살을 직접 받으며 결국 여행 첫날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열사병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 간신히 정원 입장에 성공, 땡볕에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힘들게 줄 서서 기다린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운 강렬한 블루빛 건물과 다양한 식물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조렐정원을 대표하는 블루색은 마조렐블루라는 이름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특별했다.
정원 초입부터 붉은 도시와 어우러진 푸른 감성을 더한 인생 사진을 건지려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나와 동행은 약 13시간의 비행 후 숙소에 짐을 던져놓자마자 나온 상태였다. 꼬질꼬질한 거지꼴을 감추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인물 없이 풍경만 연신 찍어댔다. 마조렐 블루의 건물과 분수대, 온갖 다양한 식물의 초록색, 그 두 가지 색들을 더 돋보여주는 레몬색과 빨간색의 화분이 어우러진 컬러의 천국이었다. 메마른 북아프리카 도시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마라케시의 오아시스라 불릴 만큼 생기가 가득했다. 그런 기억이 각인이 되어선지 지구 반대편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유난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 의기소침해지는 날, 마조렐블루 사진을 꺼내들고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곤 한다. 여행을 다녀온지 꽤 되었는데도 친구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여전히 마조렐 정원 사진이기도 하다.
마조렐정원은 모로코가 프랑스 지배하에 있을 때 프랑스의 예술가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이 하나의 작품을 다루듯 평생을 걸쳐 일군 정원이다. 정원과 건물 곳곳에 시선을 사로잡는 마조렐블루는 모로코 특유의 타일에서 보이는 짙은 블루에서 나온 강렬한 색으로 정원을 설계한 자크 마조렐를 기념하며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 색이다. 그가 죽은 후엔 세기의 천재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과 동성연인인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가 공동 소유하며 거주하기도 했다.
-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 “자르댕 마조렐”, Naver 지식백과
영화 ‘이브 생 로랑’을 보면, 마조렐블루색 건물에 빌라오아시스(Villa Oasis)라는 이름을 붙이고 두 연인이 머무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브 생 로랑은 자신만의 부티크를 성공적으로 오픈한 후 오트쿠튀르의 상아탑에 안주하지 않고 돌연 패션계를 오랫동안 떠난다. 다시 패션계에 돌아온 후에도 패션을 향한 열정이 여전한지 보고 싶다며 모로코 마라케시로 훌쩍 떠났던 것이다. 마라케시를 방문하는 순간 형형색색의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고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는 그 당시 황폐해진 마조렐 정원을 사들여 복원해 살게 된다. 알제리 태생인 그는 어린 시절 고향과 비슷한 마라케시의 머문 시간 덕분인지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을 다시 찾고 승승장구한다.
그래서일까. 20세기 디자이너 중 탁월한 색채감각을 지닌 이브 생 로랑은 그의 부티크에서 마조렐블루색을 사용한 상품을 판매할 정도로 마조렐블루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다. 심지어 그의 유골이 이 정원에 뿌려질 정도니 말해 무엇 하랴. 이브 생 로랑이 왜 그렇게 마조렐정원을 사랑했는지, 마조렐블루의 아름다움을 아끼는지, 눈으로 직접 정원을 마주하는 순간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출처는 명확지 않지만 자크 마조렐의 이혼 재산 문제인지 교통사고인지 모를 여러 문제로 아름다운 이 정원의 명맥이 끊어질 뻔했다 한다. 다행히 그 아름다움을 사랑한 이브 생 로랑 덕분에 현재 지구별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마조렐정원과 자크 마조렐 예술가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영원히 잊혀 지지 않고 있다.
사유지로서 단순 거주 목적으로 정원을 혼자 즐길 수 있었음에도 그 화가의 뜻을 이어 아름다움을 전 세계 사람들과 계속 공유해나가는 것,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한국에도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공유하기 위해 특별한 인연을 맺은 한국의 예술가들 이 있다. 아름다운 작품들을 한 부부의 소유물에서 그치지 않고 기꺼이 사회에 공유하는 모습은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연인과 꽤 닮아있다.
대기업 재벌은커녕 그 흔한 자동차 한 대 없는 부부가 두 명의 작가(박생광, 전혁림)를 발굴하고 약 20년간 조건 없이 후원했다. 심지어 자비로 미술관까지 지어 단순한 후원자와 작가의 관계를 넘어 그들의 작품 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꿈을 지키는데 인생을 걸었다.
- 허유림, 「박생광·전혁림 작품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변한 돼지 축사」, 중앙일보, 2019.06.20, 1쪽, https://news.joins.com/article/23486121
위 이야기는 이영미술관의 김이환과 신영숙 부부 관장의 이야기다. 부부가 후원한 박생광, 전혁림 두 화백은 한국 전통의 색과 이미지를 화폭에 담는 현대미술 작가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보여주듯 우리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재해석하는데 앞장선 작가들이다. 마라케시 외곽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이영미술관 역시 용인시와 수원시 경계쯤 위치한 한적한 곳에 있어 호젓하고 여유로운 쉼표를 찍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꽤 비슷하다.
특히 바다의 화가인 전혁림 화백의 새파란 통영 바다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조렐블루의 정원이 오버랩 된다. 김 관장 역시 이브 생 로랑처럼 블루색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통영항’과 ‘한려수도의 추상적 풍경’ 작품의 매력적인 파란 바다 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전시관 의자에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좋아했고, 결국 직접 제작을 의뢰해 청와대 내부 벽면에 걸기도 한 에피소드까지 더해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그런데 전시회 관람의 감동이 잊혀 지기도 전에 씁쓸한 마음의 얼룩이 져버렸다. 수익이 여의치 않은 이영미술관이 매각을 고민 중이라는 것. 지차제에 기증을 제안하며 시립미술관으로의 전환도 추진했으나 끝내 불발되었다고 한다. 사립미술관의 시초인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으로 30억 대 보물 경매를 내놓았던 뉴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이영미술관 소식은 더 가슴이 아프다.
모로코 왕비가 마조렐정원 앞 도로를 이브 생 로랑의 길(Rue Yves St Laurent)로 명명까지 해줄 정도로 세밀한 지원을 받는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재정 문제를 떠나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세밀한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자본주의 논리의 우선순위에 밀려 문화예술 발전에 유난히 인색한 우리의 현실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특별한 인연의 마법이 이대로 사라져야 하는 건지…
사립미술관의 공공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겠지만, 숨겨져 있던 보석을 찾아 함께 향유하는 가치 있는 일들이 멈춰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미건조한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숨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은 다름 아닌 문화예술 영역의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