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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Aug 22. 2021

제주, 안녕 허우꽈?좋수꽈?

제주올레길에서의 단상,제주 제2공항건설 문제

올레길 2코스를 나선 지 어느덧 이동거리가 10km를 넘어간다.

이쯤 되니 슬슬 허리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소리에도 발걸음은 반응하지 않는다.

“쉬멍 걸으멍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고 외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거늘, 최근 운동을 소홀한 탓일까. 역시 몸은 정직하게도 떨어진 체력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불과 작년만 하더라도 걸은 지  15km 정도 돼서야 느껴지던 통증이었는데.

걷기가 주는 즐거움에 무뎌지고 제주 내륙의 속살인 중산간 도로 풍경에 별다른 감흥이 없어지려는 찰나, 성산읍 온평리 마을로 들어서니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 파란색 지붕이 연이어 나타나 지루해졌던 풍경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붕 뿐만 아니라 창고문, 시멘트 벽 마저 푸른 색색 골목골목을 다채롭게 채워준다. 보물찾기 마냥 계속 파란색 찾기 놀이를 눈으로 좇다 보니 다시금 걸음걸이에 재미가 더해지고 보폭에 리듬감이 살아났다. 마치 푸른 바다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예고편처럼 알려주려는 마을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푸른 온평리 마을을 지나와 2코스 종점인 온평포구에 다다랐고 총 15.2km 코스를 완주했다. 무더운 더위 속에 이룬 성취에 보상하려는 듯, 에어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다 바람과 함께 커다란 푸른 벽화가 눈앞에 나타났다.

Land of peace Jeju, 평화의 섬 제주

온화하고 태평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인 온평리 마을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벽화 문구가 아닌가. 오밀조밀 파란 지붕의 가옥 풍경에 이어 푸른 바다와 하늘로 가득 채운 화려한 벽화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 의미까지 더해지니, 온평리 마을 은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올레길에서 마주한 온평리의 제주스러움을 천천히 되새겨보며 꿀맛 같은 휴식을 만끽하다 문득 문구와는 달리, 평화와는 다소 거리가 먼 혼란과 갈등의 중심에 서있는 온평리 지역 이슈가 떠올랐다. 온평리 마을 들어서기 전 잠시 들렀던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책방무사" 라는 독립서점에서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이야기를 다룬 발간지를 접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무소속이 강세 거나 전통적으로 궨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섬 특유의 결집력이 강한 제주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제주 제2공항 건설 찬반 여론조사 결과가 두 동강 나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국책사업은 2021년 착공을 시작하여 2026년 완공 및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공항 주요 시설 예정지로 성산읍 온평리의 약 70%가 해당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 반대 등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였다. 2015년 정부 발표 이후로 6년간 표류하고 있다가 최근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통해 환경부의 반려 결정으로 사업절차가 중단되는가 싶었으나, 올해 8월 국토부의 공항개발 종합계획안에 제주 제2공항 건립계획이 여전히 명시되어 있어 논란은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찬성 측은 제주공항 여객수요 충족 및 안전문제를 개선하고 그동안 소외되었던 제주 동부지역에 국제공항을 건설하여 지역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공항 건설로 인해 제주도 고유의 공동체 및 문화 훼손, 환경 파괴, 소음문제 등의 반대 의견이 있어 양측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제주도민이 아닌 외지인이지만, 제주를 좋아하고 아끼는 입장에서 제2공항 건설 계획을 처음 접했을 때 공항 부지 개발로 인해 제주스러움의 상징인 오름이나 올레길이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자칫 오랜 시간 쌓여온 모든 유무형의 제주스러움이 변형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게 아닌지 우려가 더 컸다.

매번 제주공항 이용하면서 불편함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제주스러움의 가치에 무게를 더 두고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여행객 및 제주도민의 편리성 문제에 있어서는 인식 수준에서 논의해볼 수 있으나, 제주공항 포화상태로 인한 항공 안전성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시간당 항공기 이착륙 횟수인 슬롯이 현재 포화 상태로 지속되면서 활주로 수용력이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어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의 경우 혼잡시간대에는 항공기가 분 단위 수준에서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상황이다. 코로나 유행으로 현재는 코로나19 이전보다는 다소 운항 상황이 줄어든 수준이지만, 다시 여행심리가 회복될 것을 미루어 볼 때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사안이다.


공항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는 문제이기도 한 만큼, 국민 찬반투표 결과로 신공항 건설이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50년간 지속된 극심한 갈등 문제로 끝내 신공항 프로젝트를 포기했던 프랑스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민갈등 해소라는 대의를 택한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최종 결정과 이후 대안 모색 과정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홍명환 국회의원에 따르면 제주공항 활용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제시한 공항 운영요소 개선사항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인 검토와 투명한 재검증 과정을 갖는데 노력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욘 없다. 단순히 환경보호 및 제주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경제논리나, 반대로 경제효과를 무시한 채 단편적 환경보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모두 일시적인 방편일 가능성이 높다. 사업시행의 제동이 걸린 시점이기에 경제 우선주의적인 입장과 환경보호 입장 중 어느 하나 획일적 선택이 아닌 서로 보완하고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데 전문가, 정부, 시민단체, 제주도민 모두 너 나 할 것 없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설문대할망이나 삼성신이 두 동강이 나버려 있는 제주인들을 보시면 노하실 일이다. 파란색이 유독 기억에 남는 성산읍 온평리 마을만의 고유한 제주스러움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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