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뮤즈가 되어 준 그대
“너 삶이 너무 답답해 보여.”
검은 머리에 속 쌍꺼풀의 눈매를 가진 친구가 내게 말을 건넸다.
깜짝 놀란 나머지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을 올릴 정도였다. 당시에 나는 카페에서 편한 반팔과 반바지에 똥 머리를 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참이었고, 실용음악과를 준비하던 이 친구도 학교를 다니지 않기에 일과시간을 스스로 계획했다.
“어떤 점이 그런데?”
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방법이 이상해 보였나?’ 싶어 화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입술을 쭉 내밀며 애원했다. 왜냐하면 나름 호감이 있던 친구인 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으니까.
“너무 꽉 막혀 보여서... 조금 여유 있게 해도 되지 않을까?”
자신은 걱정돼서 말한 건데 표현이 서툴다 보니 민망함에 괜스레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과로로 인해 병원 가서 수액을 맞은 적도 있었다. 몇 번이나 천천히 하자며 나를 다독였지만 내 성격상 그게 안 됐다. 그가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웃냐며 앙탈스러운 핀잔에도 통하지 않았다.
“그... 너 괜찮으면 내 작업실 갈래?”
부끄러운 듯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내게 말했다.
“그래! 좋아.”
짐 정리를 마치자마자 그의 손이 내 손에 포개졌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손의 전율은 내 마음속에서 악기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애써 마음을 감추려 노력했지만 얼굴은 이미 빨갛게 익었고 어느덧 작업실에 도착해 더운 척하며 손으로 부채질했다.
“우와”
들어가 보니 소리가 새지 않도록 방음 처리를 해 둔 작업실이다. 모니터와 마이크, 헤드셋, 오디오 인터페이스, 마스터 키보드 등 다양한 기기들이 있다. 예체능은 절대 다시 안 하겠다며 담을 쌓고 지냈는데 새로운 우주가 나를 반기는 거 같았다.
“노래 한 번 해볼래?”
나름 동네에서 노래 잘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학창 시절에 가창 평가는 늘 1등을 했던 나였기 때문에 그의 제안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직접 헤드셋을 씌워주며 마이크에 입을 대고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황홀하고도 아름다워서 행복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너 같은 애가 노래를 해야지.”
활짝 웃어준 그의 미소는 내게 햇살 같았다. 잊고 지내던 꿈을 다시금 상기시켜 줘서 고마웠고 호감에서 존경하는 마음은 끝내 사랑으로 번졌다.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하고 몰래 바랬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둘이 같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 때문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나 쟤 좋아하는데 네가 이어주면 안 돼?”
학교생활이 힘들어서 자퇴하고 처음으로 사귄 여자 사람 친구인데 갑작스러운 제안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사랑이냐 우정이냐를 놓고 봤을 때 겨우 사귄 친구를 잃기 싫어 우정을 택하고 그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여러 고민 끝에 끄덕이고 말았다.
"정말 고마워!"
내 손을 붙잡으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나는 마냥 행복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은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삼킬 뿐이었다. 한동안 연락도 안 하고 먼저 와도 답장도 제대로 안 하다 우연히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왜 나 피해?”
엎드려서 팔짱을 낀 채 애교 섞인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때의 손을 잡으며 내 마음을 표현해 볼까 싶었지만 괜한 욕심 같았다.
내가 자퇴하고 들었던 말이 ‘그래서 사회생활은 어떡하려고?’와 ‘쟤 절대 학교 나가서 못 지낸다에 한 표 건다’라며 조리돌림 한 가해자들의 말이 떠올라 속이 답답해졌다. 겨우 지옥에서 스스로를 구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주라...”
내 손을 잡으며 애원하는 그를 두고 정말 많이 미안했다. 내가 여기서 너를 좋아한다고 하면 도와주겠다고 한 그 애에게 미움받을 텐데. ‘사실은...’이라 말하기도 전에 ‘뭐야?’라며 당사자를 만났다. 그것도 언니들이랑 애들을 이끌고 말이다. 워낙 주축에 있는 아이였기에 영향력이 강했고 놀란 나머지 그의 손을 뿌리쳤다.
잠깐 보자는 그 애의 말에 따라나갔다. 왜 자꾸 걔랑 붙어있냐고 나 도와주겠다고 한 거 아니냐며 비난을 쏘아댔다. 그때 ‘사실 걔 안 좋아해’라고 말하며 철저하게 거리를 두었다.
어느 날에는 잠실에 있는 이모집을 가는데 짐이 많아서 ‘무거워ㅜㅜ’라며 스토리에 올렸다가 ‘나 잠실인데 어디야?’라며 메시지가 왔다.
깜짝 놀라서 역으로 나갔는데 합정에 있어야 할 애가 2호선을 타고 여기까지 와주었다. 너무 놀라서 ‘네가 어떻게?’라고 말했고 땀을 뻘뻘 흘린 채 ‘내가 너무 늦었지?’라며 환한 미소를 보자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우연히 내 손을 보니 셀프 네일 한 걸 보고 예쁘다며 자신도 해달라고 했다. 행복하려던 찰나 귀신같이 ‘너 걔랑 같이 있지?’라며 연락이 왔고 혹시 스토킹인 건 아닌가 싶어 무서웠다.
나 때문에 괜히 피해받게 하기 싫어 손을 뿌리치고 다시 돌려보냈다.
카톡으로 나를 쏘아대니 ‘나 OO이 안 좋아하니까 너 이런 짓 그만해’라고 보냈다. 손절하려던 찰나에 카페에서 안 좋아한다고 했던 녹음과 그동안의 했던 대화들을 걔한테 보내기 전에 먼저 끊어내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OO아 나 사실 너처럼 좋은 친구 만나 기뻤어.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미안해 덕분에 너무 행복했고 고마웠어 노파심에 말하면 나 절대 죽거나 그러지는 않아 진짜... 벅찰 만큼 고마웠어’라는 연락을 끝으로 완전히 끊겼다.
그 애의 친한 언니들이 보복할까 봐 무서워서 전화번호를 바꾸고 인스타도 탈퇴한 후에 본가로 돌아갔다.
한 달 후 몰래 그 친구의 아이디를 검색했는데 여전히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를 쏘아붙인 그 애와 사귀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놀란 나머지 손을 벌벌 떨었고 가장 한심하게 느꼈던 것은 스스로였다.
한탄함에 독서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던 중 문득 바라본 ‘분홍 노을’이 내 눈동자를 물들게 해 작곡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10년 가까이 치던 피아노 덮개를 다시금 열고 ‘만약 그때 우리가 이어졌다면?’이라는 상상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10대 시절을 회상’하며 끝내 완성했다.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완성된 나의 곡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더욱 성장할 수 있었고 진한 잔상을 남겨 준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담았다.
이제는 직접 헤드셋을 쓰며 많은 이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멀리 전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달린다.
“이번 사연은, 좋아하던 친구분을 생각하며 적은 곡이라네요. 학창 시절의 풋풋함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다 같이 들어볼까요?"
“모먼트의 Oh pink Sunset입니다!”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신문을 보는 이와 힘차게 조깅하는 이, 도심 속을 달리는 운전자들에게도 분명히 존재했을 사랑이라는 마음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동력이 된다.
각자의 인생이라는 장르를 어여쁘게 색칠해 나가는 모두를 응원하며 분홍 노을이 져도 새로이 다가올 아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