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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Jul 25. 2022

교육이라는 기획, 교사라는 영향력

<권력의 원리> by 줄리 바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하그리브스가 규정한 교사의 자기 개념 유형은 세 가지, '맹수조련사형, 연예인형, 낭만가형'으로 나뉜다. 스스로를 맹수조련사형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맹수 상태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윤리적 행동을 훈련시켜 모범학생을 만드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연예인형이라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하여 교수학습자료를 풍부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낭만가형이라고 일컫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이 분류를 토대로 한 방사형 차트에서 나를 어디쯤 위치시켰었는데 <권력의 원리>를 읽고 분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딛고 선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활동을 기획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힘은 다른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책에서는 이 능력을 결정짓는 요소로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꼽았다.


사실 교사라는 직업은 어쩌면 별다른 노력 없이 권력을,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이다. 좁혀 들어가서 교실이라는 공간으로 한정한다면, 학생들이 욕망하는 모든 자원을 손에 넣어 통제할 수 있는 통치자이고, 넓혀서 교육이라는 시스템으로 확장시켜본다면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주어진 직업이다. 그렇기에 힘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주어진 힘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어디에 힘을 실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학생들을 교육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존중'과 '자유'라는 가치다. 학생들이 관계 속에서 자신을, 타인을 존중하는 생각의 기틀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자유롭게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 자율성의 부족 때문에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 드는 것을 경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늘 학생들과 첫 만남에서는 주어진 것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 않도록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연습시킨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게 하는 것은 교사로서 조금 피곤한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주어진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무지렁이들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고,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키를 제대로 쥐고 자신만의 판을 짜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에 힘을 싣다 보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생존의 피라미드를 타고 올라가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취사선택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 대가로 허무함과 패배감을 얻는 대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러한 어른들이 많아지다 보면 서로를 판단하고 평가하기보다, 편견과 혐오를 내비치기보다 조금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어 본다.


다만 '교육'에서 정답을 말하는 태도는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을 행사하는 입장에서의, 교사로서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식하고 중간중간 멈춰 서서 성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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