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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Aug 25. 2022

교대신(神)을 위한 브랜딩

<프로세스 이코노미> by 오바라 가즈히로

우스갯소리로 교대생들이 모시는 신이라고 하는 교대신(神)이 있다. 초등교사는 무엇이든 다 평균 이상은 해야 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천수관음보살을 패러디한 그림으로 한 손에는 배구공을, 다른 손에는 피아노, 팔레트, 교육과정 책, 단소, 축구공을 들고 있는데 요즘에는 그림책과 아이패드까지 들고 있어야 하는 실정이다. 사회적, 교육적 요구에 의해 들고 있어야 할 게 더 늘어나게 되겠지만.

교대신(神)

초등교사는 만능이어야 한다. 1교시에 국어를 가르치고, 2교시에 수학을 가르치고, 3교시에 체육을 가르치고, 4교시에 과학을 가르치고, 5교시에 미술을 가르치고, 6교시에 음악을 가르치고. 보기엔 심플하지만 안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국어'라는 과목 안에서도 교육연극, 미디어 리터러시, 토의토론, 글쓰기, 독해, 스피치 등 온갖 종류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말인 국어도 이럴진대 나머지 과목은 말해 무엇하리.

이렇듯 가르쳐야 하는 '교과목'만 10가지(국도수사과음미체실영)에 '창체'라는 과목으로 묶여 있는 온갖 종류의 '범교과 영역'들, 환경교육, 세계 시민교육, 진로교육, 양성평등 교육, 인성교육, 인권교육, 독서토론교육, 나라사랑교육, 이젠 코딩교육, 스팀교육, 메이커교육, AI 교육 등등 까지. 이슈가 생길 때마다 교육개혁을 외치고 공교육이 붕괴되어야 한다 말하니 그때마다 새로이 추가되는 내용들까지 아우르려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넓고 얕게 꿰고 있지 않으면 이런 폭격에 하루하루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하지만 또 이렇게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인식 덕분에 만만한 게 초등교육이다. 그 시기의 교육까지는 누구나 어떻게든 왈가왈부할 수 있기에, 왠지 가능할 것 같기에, 그리고 교육에는 '정답'이 없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교육의 방향에 대해, 교육 내용에 대해, 교육 방법에 대해, 그리고 교사의 역량에 대해.

마, 라떼는 말이야.

<프로세스 이코노미>를 읽으며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프로세스 이코노미'는 완성품이 아닌 '과정'을 판매하는 전략이다. 아웃풋 이코노미가 일정 규모에 도달한 까닭에 이제 차별화할 부분은 프로세스밖에 없기 때문에 흉내 낼 수 없는 '과정'을 바탕으로 가치를 발생시키는 전략이다. 소비자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 필요보다는 의미에 가치를 느끼고, 이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소속감까지 느끼게 해주는 브랜드를 원한다. 이러한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프로세스를 공개할 때 why, 즉 철학과 가치관을 가감없이 드러내야 한다. 제작 과정에 스토리를 담거나 철학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프로세스에 가치를 발생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를 교육에도 적용해 본다면, 정답이 보이지 않을수록 '왜'를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왜'라는 질문에 자신만의 답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 자칫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간 중심을 잃고 목소리도 잃고 비난받고 사람들과 멀어지는 착각 속에 교실붕괴라는 next level 사태까지 초래할 수 있다. (naevis?)


교육자로서의 '왜'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교육을 '왜' 해야 하는가,부터 정립해 볼 수 있다.

교육은 왜 하는가? '다음 세대를 길러 내기 위해서.'

그럼 학교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구성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학교 교육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성장하는 힘을 조직적으로 길러줌으로써 교육을 축적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삶 그 자체에서 학습하려는 성향,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과정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성향은 학교 교육이 가져올 수 있는 최상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학교 교육은 각자가 성장하는 힘을 축적하여 삶으로 나아가게 하고,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성향을 길러주며, 배움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조건을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를 길러주기 위해 필요하다(초등교육은 이에 더해 지식의 전달과 규율의 체득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목적에 기반하여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의해 행해지는 교육이 '왜' 이루어지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존 듀이는 교사 개인의 가치나 역량을 넘어선 '조직적'인 가치를 말하고 있지만, 교육목적이라는 결괏값에 도달하기 위한 '프로세스'의 관점에서 교사를 바라본다면, 목적에 이르는 길은 개별 교사마다 다를 것이므로 성장하는 힘을 축적해 주기 위해 '교사'라는 틀에서 어떤 교육이 제공될 수 있는지 그 형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성장'을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 학생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 중 교사 개인이 전문성을 갖고 제시할 수 있는 영역이 어떠한 부분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교대신(神)이라는 '만능'의 환상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 안에서 자신만의 '왜(why)'를 바탕으로 한 차별성 있는 교육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 책의 내용처럼 비즈니스 관점에서 '과정'을 판매할 순 없더라도, 교육의 주체들(학생, 학부모)을 이해시키고, 함께 '교육'이라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락하는 교권에 작은 날개 하나 달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교육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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