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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Oct 05. 2022

'시험 점수'라는 숫자 대신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

위험한 숫자들 by 사너 블라우

국어와 수학 과목에 한하여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 평가를 실시한다. 이 평가는 통지표에 기록되는 평가라기보다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도달해야 하는 학습 목표와의 차이를 인지하기 위한 용도로 실시된다. 학급 경영의 일부로 단원 평가를 실시하는 데에는 말 그대로 학생이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함에 있다. 또한 교수·학습의 실제를 개선하고 새로 계획하기 위함도 있다. 수학의 경우, 기계적 학습을 통해 형식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 필요한지,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도 되는지 바로미터가 되어 주는 것이랄까.

학기 초에 학부모님들께 '단원 평가 점수는 공개되지 않는다.'를 공지하지만 학부모님들의 관심사는 내 아이가 '몇 점'을 맞았는지, 그 '숫자'에 있는 경우가 많기에 늘 되묻는 질문을 받는.

"선생님, 시험 점수 정말 안 알려 주시나요?"

곤란하게도 공개는 안된다고 답변을 드리지만 더러 포기하지 않으시는 끈기 넘치는 분들은 우리 아이 점수만 알려 달라며 따로 연락을 하시기도 한다.


그 '숫자'가 학부모님들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단원 평가 점수를 공개하곤 했다. 그 당시에는 학생들이 오답을 알고 수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답 노트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틀린 문제 고쳐오기 숙제를 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다른 학생과의 비교 문화를 만들고, 학생들이 그 비교를 통해 자신감을 상실하는 등 기대했던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고 난 뒤부터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학생이 풀어놓은 시험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단계에서 오류가 생기는지 파악할 수 있기에 오류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피드백을 통해 평가 결과를 환류한다. 물론 따로 불러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측정한 결과는 역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측정하고 나면 그것은 중요해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측정하기 그 이전에 섬세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무엇을 측정해야 할 것인지, 그 측정한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측정으로 얻을 가치 판단은 무엇일지 고려하면서.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평가는 왜 실시되는 것이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중요하지만 측정되어지지 않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일까.


평가를 실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학습자의 학습과 교수 학습의 실제를 개선하기 위해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에 있다. 이는 평가 결과로 드러난 학생의 실제 수준과 학생이 도달해야 하는 학습 목표 간의 차이를 알려주어 향후 학생의 학습과 성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평가는 학습자의 질적인 성장에 관심을 두고, 학습자 개개인의 학습 태도, 성향, 수준 등에 초점을 맞추어 영속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평가의 목적에 따라 '학습 결과의 평가(Assessment of learning)',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 '학습으로서의 평가(Assessment as learning)'로 나뉜다. '학습 결과의 평가'는 다른 학생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 배치나 진급, 자격 부여 등의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시행되고, '학습을 위한 평가'는 성취 기준을 바탕으로 교사의 교수적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된다. '학습으로서의 평가'는 학생 개별 목표와 성취 기준을 근거로 학생의 자기 점검, 자기 평가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된다.


이전에는 학습 결과의 평가가 중요하게 인식되었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을 위한 평가, 학습으로서의 평가인 '과정 중심 평가'가 강조되는 실정으로 교육 평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는 숫자라는 결과보다 그 숫자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전도와 수행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고, 숫자라는 단면보다 교수·학습 과정에서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수집하는 데 더 의미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러한 인식을 '시험 점수가 얼마냐고 묻는' 학부모님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단원 평가의 점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성취감,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알고자 하는 흥미가 학생의 질적인 성장에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점수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원시안적 시각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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