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얽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희 Sep 25. 2022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 김준

앞으로의 미래는 내가 경험한 것을, 그리고 내가 상상한 것을 훨씬 더 뛰어넘을 것이기에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미래의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나로서는 그 지점이 늘 불안하다. 무엇의 ‘쓸모’를 감히 지금 시점에 내가 판단하는 게 가능키나 할까. 세계를 알면 알수록 내가 하는 말에 확신이 생기지 않기에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대한 많은 분야에 나를 노출시키는 수밖에, 그리고 그 노출로 무지를 극복하는 수밖에, 무지의 극복으로 자라나는 한 씨앗의 꿈을 짓밟아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문과 출신임에도(문송합니다^^; 그래도 수학은 최애예요?) '승진'하기에는 '과학과'가 좋다는 선배의 추천에 따라 '과학과'를 선택하는 바람에  평소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던 과학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다. 교대에도 나름 '과'라는 개념이 존재해서 과 별로 나뉘어 선택 수업을 듣게 되는데, 그렇게 학부시절 '과학과'를 선택하며 만나게 된 지도 교수님은 많고 많은 덕질 중에 '생물'을 덕질하시는 생물 덕후셨다. 다윈 탄생 주기에 맞춰 논문을 내시는 분이었고, 학회 겸 세미나 MT를 계곡이라도 가게 되면 몇 시간이고 바위를 들춰내서 작은 생물들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으셨다(후..). 지나가다 개나리라도 발견하게 되면 개나리 RGB에 대해 설명하시는 분이었고, 태풍 기사라도 나온다 치면 태풍에 직격탄을 맞은 나뭇잎의 앞뒤를 비교해서 그 차이가 무엇에서 기인했는지 열변을 토하는 분이셨다. 이해할 수 없던, 그리고 그러한 시선에 관심조차 없던 나였지만 귀에 피가 나도록 듣다 보니 어느새 생물이라는 학문이 낯설지 않아 졌고, 현장에서 생명 영역이라도 가르치려 하면 귓동냥으로 주워들은 한 두 마디를 덧붙이기에 이르렀다. 그런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는 아이들을 신기해하면서.

책의 저자 역시 생물 덕후로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얼핏 듣기에 하등 쓸모가 없어 보이는(무지에 의한 오류) '예쁜꼬마선충'연구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바탕이 되어준 연구이다. 사람의 유전자와 70~80퍼센트 비슷한 예쁜꼬마선충으로 유전체 지도를 만드는 연습 문제를 푸는 셈이랄까.

 

"연구란,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의 테두리를 송곳으로 조금씩 찔러 넓히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뾰족한 끝'이라는 뜻을 지닌 첨단이라는 한자어처럼, 인류의 지식 그 끝을 조금씩 넓혀가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라는 저자의 의견처럼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연구는, 현시점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쓸모가 없어 보일지언정, 언젠가 기술이 발전된다면 풀 수 있게 될 연구의 연습 문제들이다. 그런 연구에 의해 지식의 한계를 부술 수 있게 되는 것이겠고, 오랜 시간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찾아내어 인류의 삶이 진일보하는 것이겠고.

다만 연구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성과 중심'의 연구를 주장하고, 연구비를 투자했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아직 해보지 않은 연구에 대한 연구비를 요청할 때 연구의 필요성을 '설득'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 것.


기초과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연구자를 훈련시키면서 실현 가능한 연구들을 수행해보는 경험들이 많아진다면,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고, 돈을 쓸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납득이 된다면, '상업성'이 떨어진다한들 좀 더 결정적인 연구들을 많은 연구자들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연구기반이 튼튼해진다면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의 길에 먼저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그 질문에서 얻은 답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질문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가보지 않은 저 너머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과학을 가르치는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과학 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그리고 세상을 꼬마 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즐기는 아이들의 세계를 지지해 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순수하게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돈'이 되는 곳으로만 내모는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연구에 집중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랄까. 물론 어떤 게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초과학연구에 가치를 두는 생각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인재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나올 수 있기를, 아니 어쩌면 이미 많을 인재들이 현실의 벽 앞에 연구를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가르치는 자'로서의 나는 적어도 나의 '무심함'으로, '쓸모에 대한 판단'으로 그렇게 펼쳐질 아이들의 세계를 뭉개버리는 교사는 되면 안되겠기에 '쓸모없음'에 대해 늘 경계할 수 있기를,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늘 자각할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