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얽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희 Sep 15. 2022

어느 초등교사의 흐린 눈

<노이즈: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독서 습관이 잘 형성되어 있고, 지적 탐구심이 강하며, 주어진 문제를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창의적 사고가 돋보임. 수업 중 집중력이 높고, 논리적 사고력과 응용력이 뛰어나 전 교과에서 높은 학업성취를 보임. 매사 성실한 태도로 맡은 일의 끝맺음을 잘하고, 학급 내에서 사소한 규칙도 잘 지키며 타인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건전한 정신을 지니고 있음. 평소 과학에 대한 흥미가 높고 합리성, 개방성, 비판 정신과 같은 과학적 태도가 내재되어 있으며 과학 탐구에 대한 열정이 있음. 사교성인 성품으로 인간적인 친화력이 뛰어나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학생임. 웃어른을 존경할 줄 알고 인사성이 바르며 성품이 너그러움. 민첩성과 순발력이 좋아 체육과 활동에 자신감이 넘치고, 협응력이 좋아 다양한 구기 종목에 능함. 도덕적 판단력이 뛰어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며, 타인에 대한 남다른 배려심과 정의감을 지님.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기지를 발휘하여 이를 해결하는 재치가 돋보이고, 이루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목표를 달성할 때 느끼는 성취감을 즐기므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됨."


학년 말 통지표에 들어가는 행동발달 특기사항, 일명 쫑아리라고 불리는 기록이다. [한 번쯤 자신의 생기부를 떼서 보는 것도 재미집니다(?)]

이 기록만 보면 이 아이는 세상에 없던 완벽한 아이처럼 보인다. 도덕성이면 도덕성, 수업태도면 수업 태도, 사교성이면 사교성, 열정이면 열정, 자존감이면 자존감 등. 삶에 필요한 모든 요소는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아이가 존재할까? 게다가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됨" 이라니, 이미 완벽한데 여기서 발전할 여지까지 있다.

긍정 회로를 가득 돌린, 필터가 과히 낀 것 같은 이 기록은 실제 작년 한 학생에게 적어주었던 행동발달 특기사항이다. 1년 동안 아이를 관찰하여 '판단'한 결과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노이즈:생각의 잡음>이라는 이 책에서 저자는 '판단'을 인간의 마음을 도구로 사용하는 '측정'이라 정의한다. 과학에서 무언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주어진 사물이나 사례를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이는 '정량적(수치) 측정'과 '정성적(상황 묘사) 측정'으로 나뉘는데, 도구를 사용하여 수치화하는 정량적 측정이라 하더라도 오류가 존재하기에 오차범위를 추정한다. 하물며 인간의 '마음'을 도구로 하여 측정하는 판단이야 오류가 개입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렇듯 '측정'이라는 개념에는 정확성이 내포되어있기에 목표는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판단에서의 오류는 편향과 잡음으로 나뉜다. '잡음'이란 '판단을 할 때 나타나는, 원하지 않은 변산성'이다. 편향은 가시적이기에 원인을 규명하기도, 그룹화하여 패턴을 찾아내기도 수월해 보이지만 잡음은 인과적 사고의 결과로써, 본질적으로 '통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가시화하기가 쉽지 않다. 유사한 판단들에 대해 통적으로 사고할 때야 비로소 눈에 띄게 된다. 저자는 왜 잡음이 많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이를 규명하고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논한다. 그리고 '잡음'을 제도적으로 바로 잡아야 할 분야와 장려해야 하는 분야로 나누어 바로 잡아야 하는, '제도 잡음'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납득하며 생각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어 굉장히 신선했는데, 업(業)의 관점에서 취한 시각이 있다면 되려 판단의 변산성이 허용되어야 하는 분야 중 하나가 초등교육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다른 취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일관성이 없는 제도로 평가되어 신뢰를 잃게 되지만,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산성을 높이는 것은 한 아이에게 다양한 색깔을 입혀주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모범생이든,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든,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깨고 나가기 위해서는 그 아이를 판단하는 평가자가 일관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이 있어야 그 속에서 둥글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좀 더 세계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혹은 과할 정도의 신뢰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 주어야 무엇이든 도전하게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초등교사인 나는 흐린 눈을 통해 되려 한 아이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무 근거 없이 흐린 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흐린 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의도적 흐린 눈이란 나의 판단이 그간의 경험들로 인한 통계적 추정치로 이 아이를 어떻게 카테고리화하여 판단하는지를 인지하고,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며, 그간 그 아이가 받아왔던 평가 방식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ways of seeing)의 관점을 취해보는 눈을 의미한다. 그렇게 흐린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때 저자가 질색할 만큼의 잡음이 많이 끼어들겠지만 또 그만큼 아이들은 유연해지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