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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Oct 24. 2023

Ways of Seeing

<도둑맞은 집중력> by 요한 하리

벌거벗은 몸(naked)과 누드(nude)의 차이를 시선, 즉 보는 행위에서의 권력이라고 문제 제기했던,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나타난 존버거의 생각은 지금 펼쳐보아도 새롭고 신선하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기존 체계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본다는 것은 선택 행위이기에 우리는 선택된 프레임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해 나간다.


아카데믹한 미술사나 미술 평론에서 전제하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 방식에 대해 반기를 들며 미술을 실제적 삶의 영역과의 관계에서 검토했던,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관점을 취한 존 버거가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며 떠오른 까닭은 이 책에서 작가가 제기한 집중력 악화의 원인과 그 기저에 전제된 기술 설계 방식에 대해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와 연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지는 원인을 수면 부족, 식단, 스트레스,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기술 설계 방식, 독서의 기피 등 다각도로 접근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집중력을 적극적으로 도둑맞는 이유를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그러한 '도둑'을 잡고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시킨다.


책에서 제시된 여러 집중력 도둑 중 '실리콘 밸리가 선택한 기술 설계 방식'에 대해 기술한 지점을 꽤나 흥미롭게 읽었다. 집중력 도둑은 단순히 스마트폰과 웹페이지가 아니라 그러한 기술이 '설계된 방식'임을,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과 행동 이유를 보상과 처벌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한 스키너의 관점에 기초한 오늘날의 기술 설계 방식을 이해하여 '어떤 기술이, 어떤 목적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현재의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음을 설파하는 것이 결국 집중력을 흩뜨리는 거대한 시스템에 조종되는 것이 아닌,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으로서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를 향한 인간 고군분투의 대서사시의 느낌이랄까.


기술의 진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기술의 기저에 깔린 철학은 '선택'할 수 있다. 기술을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도록 둘 것인지, 그리고 수단이라면 그 수단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새로운 규칙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 우리의 의식은 그 기술이 제시하는 모습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 안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확장시키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관점은 분명 사회적 합의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 해결을 이렇듯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버리면 개인의 책임은 회피할 수 있을지언정 개개인이 살아내는 삶의 결괏값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달라지더라도 변하는 속도 때문에 가시적이지 않아 행해지는 동기가 저하될 수 있다. 그렇기에 집중력을 흩뜨리는, 산만함에서 벗어나는 개인적 차원의 행함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정보와 시스템 안에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권력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다른 방식으로' 거대한 사회 체계 자체를 점검해 보며, 개인적 차원에서 몰입의 경험을 늘려나갈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는 마리오네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좀 더 주도권을 쥐고 자유를 쟁취하며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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