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명함에 어울리는 단어

[명함: 이름·근무처·직위·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는 작은 자기소개 종이]

by 내맘에후욱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전업 엄마 OOO입니다." 하며 작은 종이를 건네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현실 가능한 일이 아니겠지만, 언젠가 당당하고 밝게 사람들과 인사하며 이러한 작은 자기소개 종이를 주고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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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명함이라 하면 가정이 아닌 사회 속 직장에서 근무하는 형태를 생각한다.


10년 넘게 반 요리사로, 반 기상청 직원으로, 반 약사로, 아이가 아픈 날이면 당직 근무를 서는 등 가정 내 총괄 매니저와 감독 등 맡은 엄마와 아내로서의 업무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정직원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나를 스스로 정의할만한 단어를 못 찾아 공식석상에서 내밀 명함이 없다.


자아를 찾아가던 사춘기가 한참 지났는데, 아이들 자라나 손이 좀 덜 가다 보니 다시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자꾸 떠올라 머리가 복잡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다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다 보니 휴직이라 할 것 없는 상태로 인생의 2막이라 불리는 결혼 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껏 걸어왔다.


나름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내었던 시간에 후회는 없다. 다만, 지금에 와서 마음이 아린 이유는 엄마라는 사회적인 명함이 딱히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고, 앞으로의 삶에 안개가 껴 있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다시 길을 잃은 것 같아서이다.


물론 가정이라는 한 사회 울타리 안에서 '엄마'라는 뚜렷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좀 더 넓은 사회에서 보면 그냥 무직자이다. 여전히. 그 부분으로 하여금 자꾸만 고개가 떨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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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 때는 빨리 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낯설고 힘에 부치던 양육 터널을 통과하면 좀 여유가 생기겠지, 그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런 순간이 눈앞에 와 있는데 지금껏 '나'는 도대체 무얼 한 건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한가득이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양육해 오던 익숙했던 육아챕터 페이지에서 벗어나, 또 다른 문을 열고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어렵다. 생각은 하고 있는데 생각이 멈춘 듯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지나온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을 테고 분명 나만의 명함에 어울리는 적절한 단어를 곧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정진하고 싶다. 10년 넘은 경력직이지만 승진을 했다고 말해야 할지, 무늬만 경력인 것 같아 작아지는 순간도 종종 있긴 하지만, 다소 오춘기스러운 현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나의 의미를 찾아가 보려 한다.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할 때 제일 즐거운지 물어보기도 하고, 이다음에 커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정작 나에게는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언제였던가?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재능을 보이며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게 그저 기쁘고 대견스럽듯, 나도, 지금부터라도 내가 좋아했던 일이 뭐였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찬찬히 살피며 또 다른 챕터로 넘어갈 준비를 하려 한다.



힘내자.


그렇게 또 살아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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