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먼츠필름 Nov 22. 2018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 직접 그리고 싶었어요

영화 <월동준비> (2013)

월동준비(Jane, we know, 2013)

감독 : 이윤형

출연 : 박예영(재인 역)

러닝타임 : 23분

- 제1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 제14회 대구단편영화제


<시놉시스>

캐리어를 손에 쥔 재인은 벽화가 가득한 낡은 동네를 방문한다. 겨울, 마주치는 사람들, 들어갈 수 없는 집 하나. 재인은 갈 데가 없다.


배우 박예영이 들려주는 영화 <월동준비> (2013)


이윤형 감독  집 앞을 산책하면서 겪은 일들이랑 들었던 생각들이에요. 실제로 시나리오를 쓸 때도 고양이를 만났었고 소재가 전부 영화에 들어갔다기보다는 느낌이 제 그때의 산책과 비슷해요. 신촌에 있는 노고산동 쪽에서 찍었어요. 이제는 이 동네는 공사해서 계단도 다 바뀌고 집도 허물고 다시 지은 집도 많데요.


박예영 처음 시나리오 발전 단계에서는 재인이 빼고는 등장인물이 없었어요. 아무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었는데 감독님의 이런저런 고민 끝에 다른 인물들이 중간중간 등장하게 됐어요. 그러므로 해서, 재인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 만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이 재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죠.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동적이고 외롭게 느껴져요.

이윤형 감독 처음 영화를 생각하고 있을 때는 여기 주인공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고 영화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시나리오는 먼저 가지고 있었고 누구를 캐스팅해야지 에 대한 생각은 없었을 때, 제 지인이 박예영 배우랑 친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너무 같이 하고 싶어 졌어요. 박예영 배우를 역할에 대입한 후에 많은 것들이 만들어졌어요. 아마 뭔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배우들이 들어왔다'라기보다는 이 배우가 아니었으면 옷이나 머리도 이게 아니었을 것 같은 느낌이요.

재인이가 왜 동네에 왔을까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같은 질문을 박예영 배우를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어요. 나중에 찍으면서도 생각이 바뀌거나 해서 계속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면서 작업했어요.


박예영 오랜만에 보니, 굉장히 춥네요. 보시면 제 손이 굉장히 빨갛잖아요. 감독님이 손이 더 빨갛게 나왔으면 좋겠다며 눈에 넣었다가 빼라고 하셨어요. 추웠어요.


이윤형 감독 날씨가 춥기도 하고 그때그때 바뀌는 장면에 대해서 '너무 추우니까 내일 생각해야겠다!' 해버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배우에게 묻기도 하고요. 여기서는 재인이가 뭐라고 말했을까?


박예영 계단에도 벽화가 있었어요. 이 동네에는 여기저기에 그림들이 많아요. 촬영 때문에는 한 개의 벽화만 그렸어요. 저희가 모두 미술이나 그림 작업을 다했기 때문에 벽화 역시 감독님과 스텝들과 직접 그렸어요.


이윤형 감독 직접 그리고 싶었어요. 영화에서는 중요한 장면인데 그림도 서툴고 표현해내기에 어려웠어요. 그런데 저희는 잘 모르니까 다 그렸을 때 가운데가 너무 비어있다, 대칭이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그 안에 재인이가 들어오면 됐으니까요.

박예영 학교 선배(배유람)와 오랜만에 마주친 장면에서 선배의 휴대폰 속 아날로그시계가 스쳐요,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 역할을 조금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감독님께서 차나 핸드폰 같은 기계류가 나오는 걸 피하시더라고요.


이윤형 감독  기계류를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예쁘지 않아서 인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시대성이 정확히 보이잖아요. 휴대폰이나 차등의 기계류를 통해 이 영화의 시대성이나 언제 때 인지 알게 되는 걸 이때는 그게 별로 안 좋았어요.

 

박예영 덧붙이자면 스스로 움직여지는 것이 감독님의 영화를 해치는 듯 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감독님이 기계류를 피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 촬영 때야 알았거든요. 시나리오 과정에서 무리하게 애쓰지 않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었어요. 시공이 정확하지 않음에서 오는 작은 판타지가 감독님의 영화인 것 같아요.


이윤형 감독 배우와 소통을 많이 해서, 각 인물마다 역사들이 다 있어요. 그런데 그건 저희끼리 각자 알고 있는 이야기예요. 재인은 정해지지 않은 나라에 떠났다가 돌아왔던 설정이었는데 그것도 저희끼리 그러면 어떨까 하면서 세계관을 만들었던 거죠.  재인의 이야기는 정확히 배우와 저 말고는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인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서로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것 일지도 모르고, 눈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는 잘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어요. 고양이도 조차도요.


박예영 고양이 나오는 장면은 우연히 찍혔어요. 시나리오에 고양이가 있으니,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되는 장면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었는데 연기하는 중에 고양이가 진짜 지나갔어요.

재인은 같은 집 주변에 계속 방황해요. 집 문을 열고 선뜻 들어갈 용기가 없어요.  결국 도망치듯 짐을 버리고 열쇠만 빼왔어요. 그 집이 재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재인이 공중전화에서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지워가며 전화를 하지만, 번호가 바뀌어있어요. 재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조차 정말 존재하는 지조차 알 수가 없어요. 재인의 두고 온 캐리어를 구태여 남자가 다시 가지고 오며 재인을 다시 한번 그 집 주변을 떠돌도록 만들고요. 그 캐리어는 재인에게 좋은 기억이면서 버리지 못하는 짐 그대로였죠.


이윤형 감독 영화 전체적으로 재인이가 용기 내는 순간이 많지 않아요. 전화를 건다는 행위는 재인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처럼 보이죠.


박예영 재인이 가장 큰 용기를 내는 장면이라고 생각되는데, 극 중 가장 모르는 사람인 종교를 전도하려던 사람(공민정)에게 감정을 드러내요. 울고 있는 모습을 들켰지만 피하려 하지 않고 조금은 기대 보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별로 위로받지 못하죠.

벽화가 마지막 장면의 밤하늘을 따온 그림이었어요.

표현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캐리어가 각자 다른 캐리어였어요. 아까 도망 나올 때 캐리어를 두고 나왔잖아요.      

이윤형 감독 재인을 찍는데 왜인지 계속 고양이가 장면에 찍혔어요. 떠돌고 있는 고양이와 재인이에요.


박예영 재인은 계속 그 주변을 맴돌면서 현실세계와 약간 동 떨어진 느낌이 있는데 자막 없이 본 외국인 관객이 재인이가 귀신인 거냐고, 재인이 죽어서 떠돌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은 그 느낌 자체가 우리가 구현해내고 싶었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얘기해줬어요.


이윤형 감독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을 때가 있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어요. 또 언제는 ‘그래, 그랬었지.’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했다니 하고 창피할 때도 있는데, 어떤 때는 저 생각의 근원을 찾기도 하는 거 같아요.


박예영 흐릿한 곳에서 오는 깨끗한 위로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의 감정 선이나 날씨 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월동준비는 누군가에는 이해 안 되는 영화 누군가에게는 너무 슬픈 영화 일 수도 있겠죠.

이윤형 감독  제목이 <월동준비>, 겨울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상징되는 겨울이 춥고 혹독하고 쓸쓸한 외로운 이미지잖아요. 이 영화는 저 스스로도 그런 시간을 준비할 수 있는 영화예요. 보시는 분들도 위로는 아닐지라도 추운 시간이 왔을 때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은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만날 수 도 있는 자신의 겨울에 조금 따듯할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예영 영화를 1학년 때 처음 접해서, 단편으로 시작했잖아요. <월동준비>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좋아했어요. 지금도 감독님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요. 처음엔 영화의 분위기를 시나리오로 받으면 그 속에 있는 글들로만 표현할 수 있는데 그때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 그런 것 들 있잖아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감독님의 글을 제가 더 이해했다고 생각했어요. 위로받았거든요. ‘언젠가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만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되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인터뷰] 그리고 차분하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