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예영
안녕하세요. 박예영입니다.
한 게 없는데 단편영화부터 10년이 다 된 박예영입니다.
<월동준비>(2013, 이윤형)의 이윤형 감독님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두 분은 저번에 배우전 때도 뵀지만, 각별한 사이처럼 보여요.
박예영 이윤형 감독님 하고는 평소 교감을 많이 하는 사이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코드가 맞고, 감독님과 있을 때는 평소와 조금 다른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윤형 감독 저랑 박예영 배우랑 둘이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재미있거든요.
저는 배우님의 두 차례에 걸친 배우전과 함께해서 그런지 친숙한데요. 그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인터뷰가 정말 기대되는데요.
연기를 하게 처음 하게 된 계기는 어떤 걸까요?
박예영 한 공연을 봤어요. 너무 어릴 때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무대 위에 있던 배우가 무대 뒤에서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한 것을 본 게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배우라는 직업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고 막연한 호기심만 있었죠. 또 한 번은 중학생 때, 우연히 친한 선생님을 따라서 CA반에 들어갔는데 그게 연극반이었거든요. 중간에 전학을 가서 CA활동을 한 건 한 학기뿐이었지만 아주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어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때 선생님께서 이별 편지를 주셨는데 지금도 간직하고 있거든요. 여하튼 시간이 지나서 불현듯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서 영화과를 가게 됐어요. 그때 처음 영화 연기를 하게 됐죠.
사실은 그냥 이 마지막 말이 연기를 하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시작이나, 계기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처음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드라마적인 순간 같은걸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들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해요.
박예영 연기를 어떻게 할지 디테일하게 정해놓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딱히 연습을 하지도 않아요. 촬영 들어가기 전 프리 과정에서 충분히 이해를 했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감독, 배우, 스텝들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믿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울타리가 쳐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는 편하게 놀아보자는 의미 같이요.
연기를 할 때 울타리가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박예영 내 맘대로 했을 때 처음부터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한 작품에 대해 각자 생각하는 울타리의 형태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 배우들과 함께 울타리의 모양을 줄이거나 늘리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 같아요.
아 그럼 정말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연기를 펼치는 느낌일 것 같아요. 배우님 나온 영화를 여러 가지로 봐왔던 것 같은데, 실제 성격과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좀 다르게 보여요.
박예영 최근에는 밝은 역을 좀 받은 편이에요. 언제는 어둡고 무거운 작품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 시기들이 배우들에게 한 번씩은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됐건 실제 저의 모습과 항상 같을 수 없잖아요. 시나리오 속 인물이 인간 박예영의 리듬과 완벽히 같을 수는 없지만 그 리듬과 상관없이 잘 이해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미지는 참하고 조용한 소녀의 이미지인 것 같은데 사실은 굉장히 밝은 것 같아요.
박예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어디에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갭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이윤형 감독님이랑 함께면 정말 헐벗은 서로가 나오기도 하고요.(웃음) 누군가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해주고 누군가는 사회성이 그렇게 떨어져서 어떡하냐고 걱정해요. 후자가 저 스스로에겐 더 편한 시간이었을 때가 많고요. 다른 분들이 저의 어떤 모습을 보냐에 따라서 제 성격이 정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러나저러나 전부 저니까요. 다만 매 순간 부끄러움 없는 선택을 하며 살고 싶어요.
최근에는 조금 밝은 역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근래에 한 작품 이야기해주세요.
박예영 <뺑반>(뺑소니전담반)이라는 상업영화를 하고 있어요. 작은 동네의 뺑반식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구급대원으로 나와요.
밝은 부분과 조용한 부분이 교차되는 것 같네요. 영화를 하지 않을 때는 어떤 걸 하면서 보내시나요?
박예영 때때로 여행도 가고, 약속이 있지 않으면 보통은 집에서 쉬어요. 영화를 찍을 때(특히 독립영화)는 많은 분들의 체력이 바닥의 바닥을 치고 끝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집의 소중함이 갈수록 커져요 하핫. 노래 틀어놓고 만화를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집 주변의 대형서점을 가는 거랑 호수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엄청 활동적이어서 하루 운동량도 어마어마했고, 달리기도 맨날 일등 했었는데 성인이 되니 온 힘을 다해 달릴 기회가 별로 없더라고요. 하지만 역시 집에서 노는 게 최고!
영화인들이 쉴 때 영화를 볼 거라고 저는 좀 생각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좋아하는 배우나, 영화가 있을까요?
박예영 매번 바뀌는 거 같은데.. 정말 정답이 없다는 생각도 들어서 어떤 기준을 세우는 게 점점 어렵더라고요. 그냥 세상에는 멋있는 배우(사람), 좋은 영화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가 매번 바뀐다기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배우가 다른 거 같아요. 지금은 영화 <어톤먼트>에서의 제임스 맥어보이(James McAvoy). 그 영화 속에서의 연기 톤이랄까 눈빛, 숨을 쉬는 호흡까지도 좋아해요. 저는 부족한 점이 너무 너무나 많은데 이런 배우들을 보면 이런 사람이 연기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랑 <타이타닉>이 지금 떠오른 좋아하는 영화! 헤헤.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그래도 조금 이 장면에서는 연기가 괜찮았지?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으세요?
박예영 앗, 저는 정말 너무 창피해서요. 이윤형 감독님, <월동준비>에서 그런 장면 있으세요?
이윤형 감독 월동준비에서 상진이(배유람 배우)가 첫 장면에 여러 질문을 하는데 예영 씨가 ‘아니요’라고 하는 그 표정, 그 눈이 좋아요.
박예영 부끄럽네요. 어떤 영화에서의 내 연기가 맘에 든다!라고 하는 건 어렵고요. 다만 한 번씩 좋아해 주시는 장면은 있는 것 같아요. 영화 <그리고 가을이 왔다>에서 배유람 배우와 회를 먹는 씬이라던가 <갈래>에서 술을 사 들고 친구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울기 직전의 그 상태 같은 거요. <갈래>의 이유리 감독님이 배우전 때 이 장면 이야기를 못 해서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장면이래요. 고마워요 감독님.
저는 <그리고 가을이 왔다>에서 배유람 배우와 싸우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박예영 사실 그 장면에서 쇳소리 비슷한 게 몇 번 났었거든요. 그런 느낌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 갈라지는 목소리가 뭐랄까 화를 내고 있는데 우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촬영하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세요.
박예영 뭐가 있을까요.. <마이 케미컬 러브>(2017, 문인수)에서 술 취한 연기를 했어요. 만취한 모습을 점프컷들로 찍었는데 연기를 전부 즉흥적으로 했거든요. 마음대로 하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근데 감독님이 오셔서는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어떻게 준비했냐며 칭찬을 하시는데 왠지 따로 준비한 건 아니라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서 그냥 ‘네.. 하핫!’ 하고 대답했어요.(웃음) 상영할 때 그 장면에서 관객분들이 많이 웃어주셔서 진짜 감사해요.
아 장면 저도 생각나는데 엄청 재밌었어요. 즉흥적으로 했다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도 많이 하고 사실 웃기기도 했거든요.
박예영 제가 뭘 어떻게 한 건지 기억은 안 나요. 몰입했다가 쉽게 빠져나오는 이유가, 아마도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까 울타리라는 말을 했는데 울타리 뚝딱뚝딱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너무 편하게 놀아재끼는지 그때 집중을 해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대사도 금세 잊어버리거든요. 그런 제가 어떨 때는 도움이 되면서도 이렇게 인터뷰라던가 GV 같은 때에 누가 디테일하게 물으면 당황할 때가 생겨버려요.
어쩌면 배우로 살아가기 위한 생존본능일 수도 있겠네요. 제가 배우님의 얼굴을 처음 기억하게 된 영화가 <그리고 가을이 왔다>(2015, 최정호)에요.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박예영 초반까지의 지선(박예영)은 조금 인위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선이 청첩장을 들고 군 복무 중인 절친 진웅(배유람) 면회를 가는 이야기인데 지선이 진웅을 좋아했던 역사가 있고, 그 후에 진웅이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잖아요. 무엇보다 그 사람의 아이를 임신 중인데 그 사실이 영화 끝날 때 즈음 나오죠. 결국 관객도 진웅도 모르고 오로지 지선 혼자만 아는 비밀이라서 의식을 조금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중반까지는 지선이 뭔가 숨기고 있는 사람 마냥 약간 오버한다던가 행동이 어색할 때가 있거든요. 촬영할 때는 그런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초반의 지선을 보고 사람들이 어색하게 느끼진 않을까 걱정하게 됐어요.
아, 저도 회 먹는 장면 좋아해요. 굳이 필요 없는 옛날이야기를 하잖아요. 지선이 지금은 진웅을 잊었기에(그렇게 믿고 싶은 걸 수도) 할 수 있는 말들이라 굉장히 덤덤하게 던지는데 그 얘기를 듣는 배유람 배우의 표정이 좋아요.
벌써 10년이나 그래도 영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굉장한데요.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하시겠지만 독립영화만의 매력이 뭐가 있을까요?
박예영 아직 상업에서의 저는 그 영화의 울타리를 바꿀 수 없거든요.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면 그 속에서 주어진 제 공간을 보다 더, 잘 꾸며내는 정도가 저의 몫인 것 같아요. 독립영화는 아무래도 같이 만들어나가는 느낌이 조금 더 있어요. 무엇보다 만들고자 하는 그 고집이 피부로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정리되지 않은 야수성이랄까. 옳고 그른 문제는 전혀 아닌 거 같고요ㅎㅎ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보니 독립영화라고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죠. ‘독립영화는 무조건 좋다!’는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과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함께 애쓰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번 모먼츠필름기획에서 영화 코멘터리를 <월동준비>(2013, 이윤형)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예영 제가 금방 한 말과 조금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이 영화에 얼마나 교감이 됐고, 그걸 공감했을 때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의 기억 같은 게 인상 깊은 것 같아요. 월동준비는 저에게 그런 걸 처음 느끼게 해 준 작품이거든요. 같이 만들어가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닫게 해 준 영화예요. 촬영 장소를 전부 감독님 집 근처로 구해서 너무 추우면 집에서 쉬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는 또 나와서 찍고 했거든요. 그 영화는 이윤형 감독의 친구들이 없었다면 절대 완성할 수 없었을 거예요.
월동준비 말고도 배우님에게 좋았던 기억이 있는 영화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박예영 <북한산>(2011, 임영우)이라는 단편영화가 있어요. 제가 굉장히 특이한 인물을 연기했거든요. 감독이 상대 배우고 스탭은 촬영감독과 조감독이 끝이었어요. 가끔 후배들 몇 명 더 와주고. 북한산을 끊임없이 올라가면서 찍었어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다른 봉우리로 올라가서 또 찍고. 너무 힘들었지만 무척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서요. 이렇게나 막무가내로 마음 가는 대로 찍은 영화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자체는 이해 못 하지만 재밌어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그래요.(웃음)
저한테 배우라는 직업은 제 삶의 한 부분이에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름의 선택을 하며 살았더니 지금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거든요. 지금의 제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캐스팅이 되는 처음보다, 진심으로 고마웠다며 얘기 나누는 그 마지막이 더 소중하고 행복해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다 보면, 적어도 기본에 충실한 배우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바라고, 오늘의 선택이 더 나은 박예영으로 이끌어줬으면 좋겠어요.
장소 협조 03스튜디오
이윤형 감독님과 함께 했습니다.
배우 박예영 필모그래피
<월동준비> 2013
<단편선> 2013
<소셜포비아> 2015
<그리고 가을이 왔다> 2015
<여고생> 2016
<갈래> 2016
<마이 케미 컬러브> 2016
<인사3팀의 캡슐커피>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