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먼츠필름 Nov 29. 2018

당신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 : 그립고 아름다운 남매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2018)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Do Cabbages Grow in Africa?, 2018)

감독 : 이나연

출연 : 신지이(지혜 역), 함상훈(지훈 역), 손정윤(지윤 역)

러닝타임 : 28분

-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2018)

-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본선경쟁(2018)


<시놉시스>

한해의 마지막, 삼 남매는 가족이 살았던 낡은 주택에 모인다. 집은 곧 철거될 예정이고 삼 남매는 엄마의 헌 옷을 입고 함께 김장을 한다.


배우 신지이가 들려주는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2018)


총 4회 차 찍었어요. 이나연 감독님께서 실제 지금도 사시고 계시는 집이에요. 이사 가는 집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서 짐을 다 빼고 촬영했어요. 세트를 제작한 것처럼 영화와 잘 부합되는 공간이었어요. 지나가는 말로 영화를 찍기 위해 이 집에 사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저는 감독님과 친분이 있었어요. 제가 연기를 하는 방향과  감독님께서 영화를 하려는 이유가 비슷한 지점들이 있어서 더 친해졌어요. 

삼 남매가 김장을 하기 위해서 엄마와 함께 살았던 곳에서 만나요. 첫째인 저(신지이)는 저 집에서 살고 있고 둘째 지훈(함상훈)과 지윤(손정윤)이 오랜만에 집에 온 설정이에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극영화예요. 감독님께서는 가족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세요. 가족 내에서 관계의 분열과 그 사이에 발생하는 가족애, 그런 부분이 이 영화에 잘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삼 남매 사이에서 관계도 참 재밌는 부분이 많아요. 셋째(지윤)이가 매실청을 가지러 간 사이 둘째(지훈)와 저는 둘이서 하나도 말을 안 해요.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는 좀 다르잖아요. 평상시에도 둘이 싸우거나 한 것이 아닌데 꽁기하면서도 여자 동생과 하는 만큼 많은 얘기를 하진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지훈 캐릭터 자체가 되게 우울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오디션을 볼 때 상훈이만 오히려 우울하게 연기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감독님께서 인상 깊게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김장을 하면서 셋째(지윤)가 ‘엄마가 한 맛이 난다’고 하면 제가  ‘그럼 옆집 아줌마가 한 맛이 날줄 알았어?’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빠졌어요. 대사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사전에 삼 남매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세계를 구축한 영향도 있지만  촬영 현장에서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쓰인 것도 많이 있었어요. 같이 만들면서, 리허설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새로 대사들이 쓰이고 더 첨부된 경우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막내(지윤)가 자기 방에 남은 짐들을 챙기는 장면에서 팟캐스트로 시가 나와요. 

감독님께서 최승자 시인의 ‘슬픈 기쁜 생일’을 좋아하셔서 넣게 되었어요. 

감독님께서 이동진 평론가님께 직접 편지를 써서,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하셨다고 해요. 

들어보면, 엄마에 대한 지윤의 그리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죠.


우리 집 안 마당에 있는 나무 있잖아, 저 나무 살아있는 나무다? 언니 몰랐지. 언니, 나무 살아있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나뭇가지를 꺾어서 반을 딱 잘랐을 때 물기가 있으면 살아있는 거래.

삼 남매의 무심결에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은연중에 생존력에 대한, 그리고 혼자 방치되어 자란 것 같지만 주변의 많은 도움을 통해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끈끈하면서도 애증 섞인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비유적으로 보여줘요. 소재와 대사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서 분위기를 만들어요.


감독님의 실제 집이니만큼, 집에 대한 애정이 영화에도 보여요. 실제로 우물인데 우물에 흙을 넣고 사과나무를 심으신 거예요. 그게 그대로 출연! 했어요. 집이 재개발 예정이라고 하고, 극 중에도 재개발에 대한 황폐한 느낌을 보여줘요. 애틋하고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형제자매들이, 정말 별것 아닌 일로 삐지고 서운하고 짜증 나는 잦은 감정들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잘 나타난 부분이 있어요. 

손가락 뜯지 마언니나 잘해그럴 거면 왜 줘, 같은 말들 있잖아요. 너무 재밌으면서도 공감이 가요. 아마 이런 부분에서 형제자매 있으신 분들은 다 느끼실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생기는 요상한 감정이거든요. 


근데 아프리카에서도 배추가 자라나? 


촬영 때 담갔던 김치들은 버리지 않고 크리스마스 때 집에 친구들을 불러서 김치요리를 온갖 종류로 해서 먹었어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겠죠.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요. 김장을 할 때 삼 남매는 엄마가 버리고 간 옷을 껴입고 해요. 버려야 하는 옷을 잔뜩 쌓아둔 엄마에 대한 불만도 드러나고 단순히 추워서 버릴 옷을 껴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옷을 ‘껴입었다는’ 느낌 자체가 그래도 엄마를 포용하려는 애증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지훈이 울면서 전화한 걸 녹음해서 듣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남자 동생은 술 취해서 굉장히 진지하게 전화했잖아요. 근데 너무 웃긴 거예요. 밥통 팔아서 동생 대학 등록금이며 낸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요. 이런 장면에서 휴머니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아프리카 춤을 가르쳐주신 ‘까르’ 선생님의 옷을 협찬받았어요. 아프리카에서 사 온 천을 가져와서 옷으로 만든 거예요. 

밤에 택배가 와요. 엄마가 아프리카에서 소포와 편지를 보냈어요. 편지가 사실은 굉장히 길었지만, 지윤은 다 읽지는 못해요.


마지막 부분이 굉장히 환상적이에요. 아름답고 슬프죠.

다 같이 아프리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첫째는 플라멩코를 춰요. 지혜는 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설정이 있잖아요. 첫째에게는 엄마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 같은 것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프리카 춤을 추지 않고 자기의 춤을 춰요.

      

엄마의 역은 실제 촬영감독님의 어머님이세요. 옷을 만드시는 분이고 자유로운 영혼이세요.  촬영에 쓰인 지훈의 바지도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애들을 두고 아프리카로 떠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너무나 적합한 캐스팅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흩어지고, 첫째는 엄마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마당을 바라봐요.


다시 보니, 연기한 사람으로서 제 연기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작품이 애틋하기도 해요. 제일 걱정 없이 찍은 작품이에요. 남매들끼리 대화도 많이 하고 연습도 많이 했어요. 남매들이 서로에게 말 못 하거나 퉁명스러운 부분들이 있지만, 결국은 서로를 생각하고 안쓰러워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연결되는 어떤 지점이 있잖아요. 가족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작가의 이전글 [인터뷰] '시'가 필요한 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