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수연
험한 길을 돌아 돌아왔어요. 올 곧은 길이길 바랬던 건 아니었어요.
삶은 길고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가 없죠.
우리는 그동안 슬퍼하지만은 않았어요.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 배우 박수연을 만납니다.
쁘악! 계속 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은 박수연입니다.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어서, 너무 반갑고 좋은 것 같아요!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올해 개인적인 굴곡이 많았어요. 최근에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집에 하자가 너무 많아서 보수하느라 힘든 시기를 보냈고, 교정에 문제가 생겨 이래저래 고생하는 시절을 보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를 느끼는 요즘이에요.
많은 일이 있었군요. 극복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 괜찮아졌어요. 저는 관계에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성향 덕택에 영화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도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기력을 이리저리 소진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도 주고받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자신이 불안전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혼자서 극복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를 기르는 중이네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자전거를 타거나 한강을 달리는 걸 좋아해요.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독립적으로 잘 지내기였어요. 금방도 말씀드렸듯이, 혼자서 잘 못 지내는 편이었는데 요즘 혼자 걷거나 뛰면서, 혼자 보내는 그 시간들에 의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운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거군요. 운동은 원래 잘하셨나요?
특기라 긴 뭐하지만 체력이 좀 좋아서, 독립 장편 <앵커>(2018, 최정민 감독)에서 달리기 하는 이야기로 나왔고, 영화 <소은이의 무릎>(2017, 최헌규 감독)에서도 농구부역도 했었어요. 지금도 수영이나 필라테스를 하고 있어요. 활동적인 걸 좋아해요.
와, 정말 많은 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활동은 연기를 하는데도 큰 강점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내적인 부분으로는 어떤 강점이 있을까요?
제가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다고 말하기는 객관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공감능력대가 큰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말을 주변 사람에게 좀 들어요. 그래서 '아, 이게 내 장점이 구나'라고 생각하며 가지고 있어요.
철학과와 연극영화과 복수전공을 했다고 들었어요. 두 과 모두 쉽지 않은 과였을 텐데, 철학과를 갔다고 하면, 연기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항상 받는 질문이긴 한데, 아버지가 전주에서 연극을 하셨어요. 그래서 연기의 힘든 부분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연기는 절대 안하리라 다짐했었어요.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고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철학과는 수능 때 윤리를 다 맞기도 하고 재밌어 보여서 대학 지원할 때 선택했어요.
대학에 오기 전까지는 안정적이고 앞에서 말을 하는 직업이라서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했었어요. 대학을 오고 나서 아나운서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보니, 막상 제게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문득문득 '연기가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었어요.
그 가을에 교양수업을 듣는데 강의에서 '좋아하는 일 하세요.'라는 말을 하는데 바로 연기가 생각나는 거예요. 그 이후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렸어요.
복수전공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 4년간 한 번도 공강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보냈어요. 지금 보면 그 많은 수업과 활동을 어떻게 소화했을까 생각이 들면서 정말 속이 시원해요.
대학 때 가장 힘든 건 이걸 하는 게 맞나 하고 의심을 하는 일이었어요.
좋아하는 데 이유를 모르겠는 거예요. 이유를 계속 찾아보는데 잘 모르겠고 계속 생각했는데 이유가 딱히 없어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이 마음이 없어지면 저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죠? '연기가 아니면 안 돼!'는 아니고 제 인생도 잘 챙기면서 계속 이 마음을 가지고 가고 싶어요. 그리고 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쉽게 없어질 것 같지도 않아요.
다른 일한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요?
생각해 본다면 해외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거나, 운동을 좋아하니까 스쿠버다이빙 강사도 좋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다른 일을 한다면 애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선생님, 운동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요즘 사무직 알바를 하고 있는데, 사무직이나 정적인 일은 정말 못할 것 같아요.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겠어요.
혼자서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 교정을 했는데 제일 처음 보철을 깔았을 때 올해 말에 끝날 것 같았는데, 아직 조금 더 해야 해요. 그 영향으로 연기에 대해 길게 천천히 생각하게 됐어요. 그 후에 더 열심히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은 저를 스스로 더 잘 보살피려고요.
그러게요. 교정이란 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에요.
이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기존까지 저는 굉장히 귀엽고 동글동글한 이미지로 생각해왔었는데, 오늘 보니 또 이미지가 다른 것 같아요.
이십 대 초반에는 돌이켜보면 피해자 역할을 많이 했었어요. 차분해 보이고 사연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20대 중반을 지나면서 귀엽고 즐거운 이미지의 역을 하게 됐어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은 제가 갖고 있는 미덕으로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들이려고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전학생>(2015, 박지인 감독)의 경우에 지금이랑 또 다른 이미지이었어요. <전학생>은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셨나요?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시나리오가 깔끔하고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영상을 찾아보면서 북한 사투리를 나름대로 준비해서, 오디션 장에 갔어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해서 감정을 잘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었어요. 저에게 있어서는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감사한 작품이에요.
<전학생>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저를 많이 알아봐 주시고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전학생>을 넘어서, 연기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된 것 같아 보이네요. 수연씨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요?
연기는 이야기를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도록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잊고 있던 감정을 상기시켜주거나, 다른 이들을 더 이해하게 되는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일이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일이라 뜻깊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어떤 힘이 사람들을 이토록 끌어들이는 걸까요?
이야기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줘요. 평화로운 생활에서도 가슴에 치는 무언가가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삶을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요. 평화롭지 않은 상태에서도 위로받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어떠한 결핍들을 건드는 힘이죠.
앞전에 공감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는데, 본인이 하는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도 궁금해요?
공감능력이란 것은 공감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 같아요. 미운 면이 있는 캐릭터라고 해도 왜 그렇게 미울 수 있는지 많이 생각을 해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커넥션이 많이 중요해요. 제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지금까지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소통이 잘 되는 감독님들과 많이 작업을 해왔어요. 그만큼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었어요.
26,7살 때 굉장히 다작을 했던 것 같은데 프로필을 정리하면서 보니, 단/장편 합쳐서 70편 정도 찍었더라고요. 그러면, '70명의 선택을 제가 받은 거구나'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고 다시금 생각했어요.
자신의 출연작 중 저희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몇 가지 추천해주세요.
김보라 감독님의 장편영화 <벌새>(2018)인데, 저에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몇 년 전에 <리코더 시험>(2011, 김보라)을 보고 너무 좋았거든요. 그 이후 이번 장편 공고를 보고 지원해 참여하게 되었어요. 촬영 중에 새롭게 배우고 감각이 생기는 일은 언제나 행복한 경험이에요. 이번 <벌새> 촬영 중에 큰 사건을 겪고 난 하루에 대해 동생에게 얘기해주는 1페이지 분량의 긴 독백이 있었어요. 감정을 숨길수록 슬프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제가 표현하려 하니 그 순간에는 내 슬픔을 보여줘야 될 것 같더라고요. 여러 테이크를 찍었고, 결국 오케이가 난 독백은 힘이 빠져 무덤덤하게 설명했던 테이크였어요. 편집본에서 시간 관계상 보여주진 못했지만, 저에게는 그 캐릭터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의미가 큰 작업이었어요. 저 외에도 이 영화에는 가족과 친구, 관계에 대한 다양한 따뜻한 시선들이 녹아 있어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작품이에요.
배우의 삶과 배우가 되기 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간접적으로라도 연기라는 것을 체험해왔어서, 제게 연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두 부분으로 인생을 나눈다면 20살까지의 전주의 삶과, 20살부터의 서울의 삶이지 않나 싶어요.
연기로 인해 달라진 부분은 감정을 솔직하게 일상생활에서도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는 배려하고 참는 편이었어요. 화를 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게 싫었어요. 그런 부분이 연기하면서 해소된 부분이 많아요. 이제는 현실에서도 제 감정을 말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저에 대해 확실히 알아가고, 소통도 더 명확해져 가는 것이라 좋은 변화라 생각해요.
연기를 하는데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을까요?
어릴 때부터 연극을 보는 게 당연했어요. 전주의 창작극회, 극단황토가 아버지가 계신 곳이에요. 방학 때 두 번 정도 아버지가 계셨던 창작극단의 워크숍을 들었었고, 처음 한 공연은 21살 때 극단황토가 연계되어있는 전주대학교 졸업공연 무대였어요. 그 외에도 10년 정도는 아마추어니 잘하고 싶은 생각을 버리라는 조언 등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배우님이 연기와 영화 자체의 세계를 형성할 때 참고하는 배우나 좋아하는 배우는요?
좋아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최근에 <레이디 버드>(2018, 그레타 거윅)를 재미있게 봤었고, 엘렌 페이지나 <내 사랑>(2016, 에이슬링 월쉬) 샐리 호킨스 그리고 한국 배우는 배두나 배우님과 김서형 배우님 좋아해요.
작품 선택에서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하시고 거기에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연기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매력을 느껴요. 그냥 꽂히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 좋은 배우님이라는 게 느껴져요. 그 사람이 가진 분위기를 좋아하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역을 해왔겠지만,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을까요?
요즘 미드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그레이 아나토미>에 크리스티나(산드라 오) 배역 너무 하고 싶어요. 크리티나가 외과의사로 나오는데, 같은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역을 소화해요. 저도 냉철하고 사리분별 똑똑한 자기가 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산드라 오 배우님이 나오셔서 본 <킬링 이브>에서 이브 역할도 하고 싶어요. 이브는 하는 행동에 거침이 없고 강한 캐릭터예요.
좋아하는 영화와 배우의 스타일처럼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은요?
조성희 감독님을 좋아해요. <남매의 집>(2009, 조성희)에서 조용한 곳에서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이 대단해요. 그리고 다들 좋아하시겠지만 이경미 감독님의 시나리오도 너무 매력적이죠. 감독님만이 가지고 계시는 발칙한 상상력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작게 크게 상업, 독립 영화에서 활동해오셨는데요. 독립영화를 계속하게 할 수 있는 힘은 뭘까요?
들꽃 같아요. 쉽게 지나칠 수도 있지만 작은 것에 집중해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인 것 같아요. 너무 각양각색의 매력이 있어요. 다양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려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자기를 뽐내고 있고, 우리는 주의만 기울인다면 언제든 볼 수 있어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계속하게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사실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연기 말고는 없어요. 그래서 연기가 아니면 다른 어떤 걸해도 상관없어서 아무 일을 해도 상관이 없어요.
촬영장에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일도 이야기해주세요.
<그녀를 지우는 시간>(2019, 홍성윤)인데요. 영화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지만 홍성윤 감독님이 사실 센트럴파크 대표님이세요. <전학생>이 센트럴파크 쪽에서 배급하고 있어서 인연이 닿은 것 같아요. <그녀를 지우는 시간>에 귀신 배역이 있어요. 양다혜라는 무용과 친구인데, 조금 나와도 2시간씩 분장하며 매 촬영 때마다 와야 했어요. 그런데 분장하는 게 힘들잖아요. 저도 해봤었는데 빨리 씻어내고 싶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친구는 매번 힘든 기색 없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하더라고요. 감독님과 스태프분들도 정말 좋으셨고 그런 현장의 다정하고 고마운 모습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최진영 감독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저의 첫 단편영화(노스페이스 / 2012 / 최진영) 감독님이세요. 22살 전주극단에서 워크숍을 듣던 여름방학이었는데, 필름메이커스에서 전주에서 배우를 구하는 걸 보게 됐어요. 지원하던 당시 두근거리던 마음을 기억해요. 인연은 이어져 6년 뒤인 올해 초, <연희동>(2018, 최진영)도 함께 촬영했어요.
요즘 재밌게 본 영화 있을까요?
올해의 영화라고 제가 말하는데요. <레이디 버드> 요. 그 성장담을 보면서 제 유년시절을 떠올려서 지나온 사랑과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좋았어요. 그리고 많이들 보셨을 <소공녀>(2017, 전고운)은 한국에서 연기를 계속했을 때 출연하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전학생> 이후 박지인 감독님과 소중한 인연이 되었는데, 다시 한번 작업을 하게 됐어요. 치아 교정을 하는 배우의 이야기인데, 보는 사람들도 자기를 대입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예요.
박지인 감독님은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스승님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친구 같은 멘토가 생겼어요. 지인언니한테 인간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함께해줬어요. 제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 맞는 부분도 있어요. 소중한 사람이에요.
삶은 힘든 일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밝음으로 향하려는 상태가 기본적인 제 삶의 방식이에요. 얼마 전에 샤갈 전시를 다녀왔는데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삶이 유한하다면 사랑과 색채로 채워야 한다."
- 사걀 -
배우 박수연 필모그래피
독립장편
<앵커> 2018
<벌새> 2018
<선희와 슬기> 2018
독립단편
<그녀를 지우는 시간> 2018
<연희동> 2018
<곳에 따라 비> 2018
<불놀이> 2018
<겨울은 겨울> 2018
<그 여름에 봄> 2018
<치킨은 날지 못한다> 2016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016
<전학생> 2015
MV
<늘그대> 2018 양희은
<Planetarium> 2017 Kei.G
<Colors> 2017 스텔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