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

벌레

by 하루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있는데 자신이 벌레가 되어있다면 어떨까?
물론 얼토당토않은 일이라며..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내가 해야 할 일상들이 당연한 게 아닌 게 되고, 나와 관계를 맺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그날 아침의 기분이 어떨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떻게 되는 거고, 내가 벌레가 되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사람들에게 내가 계속 필요하고 관계를 맺을 수가 있는 걸까 상상만 해봐도 마음이 답답하고 복잡해진다.


이 이야기는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의 내용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이름만 듣다가.. 대학교 재학 시절, 세계문학수업이라는 교양수업시간에 읽게 되었다. 교수님이 독문과 출신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문학을 소개해주신 중에 유독 이 소설을 아끼는 느낌이, 교수님의 열정이 전달됐었던 수업이었다.
전공 수업이 아니라 교양수업이니 만큼 작가의 생, 시대 배경, 줄거리, 리포트 정도의 수업이나 발표로 끝낼 수도 있는데... 수업시간을 할당하여 이 소설을 부분 부분 읽을 시간을 주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 수업은 나에게 엄청 큰 영향을 끼쳤는데, 문학..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것을 주의 깊게 눈여겨볼 것이며 어떤 비판적(안 좋은 비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인 태도가 필요한지 등등에 대해 내게 알려주었던 수업이었다.

이 주인공의 집 앞에 병원이 있다는 걸 읽으면서 깨달은 학생이 있나?


순간 머리를 띵 하고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읽은 적 없는데?’ 하고 순간 당황해서 책을 휘리릭 넘겨 찾아보려 애썼다. 급한 마음과 짧은 시간에 찾지는 못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알려주신 곳을 따라가니, 아... 한 부분에 숨어있듯이 놓여있는 한 단어 '병원'.

정말 작은, 소설의 한 단어였다. 나는 그것을 놓쳤다.

일상에서 물건을 볼 때, 건물을 볼 때 그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우연이라는 것도 있고, 별 대수롭지 않게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다. 그냥 그곳에 있는, 있을 수 있는 것들.

하지만 예술작품에서는 그냥 놓여있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쉼표 하나.. 건물.. 물건.. 어떤 단어 하나 조사마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구성을 잘하여 내놓은 작품이라면 그것은, 치밀하게 계획되고 하나하나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병원...
병원이 집 앞에 있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 잠자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구나... 자신들의 가족이며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 자신들이 의지했던 아들. 나를 지원해주는 오빠였던 그.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큰가. 그런데 쓱 읽느라고 그 중요한 단어를 놓쳤구나...
수업시간에 혼자 조용히 충격을 받았었다.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
잠자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온다. 그런데 시름시름 아프더니 벌레로 변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약간 걱정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잠자를 없는 구성원 취급을 하고 아예 외면해버린다.


이 소설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난치병에 걸려(영문학과였던 나는 나중엔 이렇게 받아들였다; 문학과, 불치병과 피라니.. 정말 낭만주의적이네.. 감상적이야.. 나야말로 참다운 문학소녀 아니야? ㅎ) 고생을 했는데, 초반에 많이 아팠었다. 20대 초에만 두 번 입원했었는데 그중 기간이 2달이나 되었던 적이 있다.

장기간 입원하다 보면 여러 가족을 마주치게 되고, 좋든 싫든 각 집안의 가족관계나 사정을 듣게 마련이다.

어느 날 내 옆자리에 나보다 10살 더 먹은 여자가 입원했다.
엿들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멍하니 누워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보면 들리는 것 밖에는 없기에 자연스럽게 옆자리 그 여자분에 대해 이런저런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랑 약간 다른 병이었다. 크론씨병. 처음에 아프다고 할 때는 남편이고 시댁이고, 랍스터가 들어간 도시락도 싸다 주고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문병 오곤 했는데 아프다 아프다 했더니 어느 순간 지겨워했단다. 병원비가 아깝다고 했단다. 자기 아들이 힘들게 돈 번개 다 너한테 쏟아붓고 있다고 시어머니가 얘기를 했고, 결국 이혼을 당했단다.. 그리고 그녀의 침대 곁에는 10살 된 아들이 엄마 옆을 지켰다. 그 여자는 밤마다 흐느껴 울었다. 병동에서는 8시만 되어도 불을 꺼버리기에 취침시간이 이르기도 했고, 나는 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2시간 이상 이어서 잠들지 못하고 거의 반 깨어있고 반 잠들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밤에 그녀가 몰래 우는 소리까지 듣게 되어버렸다.

그녀의 친구들에게서 간간히 전화가 왔다. 그런데 전화해도 까칠하게 힘들다 버겁다는 내용을 대답할 때도 화를 냈고, 전화를 끊고 나서 화만 더 냈다. 침대에 누워있던 어느 날 그녀는 여기서 장기간 입원해있느라 얼마 전에 들어간 직장에서 해고 전화를 받았다.
옆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들으면서, 큰 충격에 빠졌었다. 아니, 충격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꼈다.

아... 아프다고 하면 저렇게 버림받는구나. 버림받거나 외면받을 수가 있구나.
힘들 때마다 힘들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 짐이 될 수도 있구나...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버렸던 것 같다. 아프다고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처음에는 걱정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고, 그냥 그게 또 일상이 되어버릴 수 있겠구나 느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그 여자의 상황이나 내가, 아파서 누워있느라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그 상황이 바로 이 소설에서의 벌레로의 변신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아파서 슬프지만, 각자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이 겪는 고립감, 허탈감, 혼자 남들과 다름. 남에게 짐이 된다는 두려움, 등등...

난치병을 앓으면서, 혼자 고독하고 무섭고 버거운 상황이 때로는 오지만 그때의 생각과 충격은 정말 컸는지, 진짜 아프고 많이 힘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꺼려하는 나의 모습이 아직도 느껴진다. 자주 말하면 그냥 항상 아픈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무섭다. 슬프다.

이혼하고 나서도 이와 비슷하다. 양육비 없이 먼 직장에 출퇴근하며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너무 많이 힘들다고 말해버리면 나중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까 봐, 그냥 엄살처럼 얘기한다고 여겨질까 두려운 마음이 있다.


이 소설 때문에, 나는 나의 상황에 대입하여 위에서 얘기한 여러 생각과 감정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소설을 가지고 수업을 해주셨던 그 교수님 덕에 나는 좀 더 면밀하게 집중하여 예술작품에 놓여 잇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예술작품의 모든 구성요소를 다 파악하며 감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끔이라도 단어나 소품이나 뭔가 유의미한 것 중 내가 놓쳤을만한 것들 중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는 있다.

여러모로 나에게 영향을 많이 준 작품.

시간. 생각.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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