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감사함
노래 한 곡 들으려고 했을 뿐인데,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슬픈 영화를 본 것도, 속상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고 있던 것은, 어떤 가수의 1,2년 전 길거리 버스킹 공연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을 켜고 노래를 들으려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유...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그 동영상을 보다가 감정이 요동쳤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삼삼오오 모여 가수 주변으로 동그랗게 서있는 모습, 마스크 쓰지 않고 음료를 손에 쥐고 있거나 꼭 붙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것 같았다. 그제야 아 내가 코로나 때문에 조금 울적하구나 사람들이 그립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좋았네.. 코로나는 언제 끝날까? 다시 이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코로나가 없던 그때에는, 그게 행복한 것이라는 걸 몰랐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마스크가 없어도 됐었던 그때를 살아갈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일상에 감사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가 감사하고 행복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다는 생각에 미치자,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우리 읍내’라는 문학작품이 떠올랐다. 죽고 나서 자기가 살았던 일생 중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주인공인 에밀리는 자신의 생일날로 되돌아갔다가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돌아온다. 그 하루를 끝내고 돌아올 때 말하는 그녀의 대사가 특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워 그 참 가치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깨달을까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1분 1초를 말이에요.”
여러 영화, 문학, 예술 들이 공통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방향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진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버리는 안 되는 것들. 여러 예술들이 가리키고 있는 여러 방향, 그중 하나는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메시지이다. 여러 번 여러 사람을 통해, 여러 장르로 반복해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평소 일상을 살아가면서 놓치고 있거나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된다.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고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나도 모르게 놓치게 된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누리고 있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고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처럼 여겨져 버린다. 그래서 더 가지지 못함을 속상해하고, 다른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참 감사한 것들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말이다.
20대 초반에 갑자기 아파서 입원하게 되었었다. 감기 한번 잘 안 걸린 나였기에, 건강은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한 순간에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자가면역질환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입원하고 한동안은 너무 아파서 아무 생각도 못했다. 한 번은 2주를 입원했었고, 그다음엔 2달을 병원에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이 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고 너무 원망스러웠을 뿐이다. 그 원망의 대상이 딱히 없어서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원망을 세상에 돌렸다.
‘나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이렇게 됐어. 나한테 와서 온갖 하소연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주느라 나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어. 나는 이렇게 아픈데 세상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너무 아픈 단계가 좀 넘어가고 몸이 조금 회복되어 연필로 쓸 기력이 있으면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받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그때마다의 마음을 적어가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나의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또한 병원 내 서점에서 고른, 여러 사람들의 수기를 묶어놓은 월간지를 읽거나 지인들이 병문안 오면서 사다 준 수필집을 읽기도 하였다. 몸이 아플 때는 읽고 싶지도 않고 공감이 가지 않다가, 몸이 회복될 즈음에는 꽤 많이 이것저것 읽고 내 생각을 일기장에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읽은 글 중에는 이해인 수녀가 쓴 책도 있었는데, 그중 한 페이지에 담긴 한 일본 시인의 시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시인은 몸이 너무 아파서 누워 지내다가 요절한 젊은 남자라고 하였다. 그 내용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이 그냥 일상적인 것이라,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고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다.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평범한 것에 대한 서술을 죽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왜 아무도 그걸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잃어버릴 뻔한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시를 읽고 나서 나는 큰 공감을 했다.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상황까지 갔었다. 밥을 안 먹으니, 아무리 영양소를 맞춘 수액을 맞고 있다 하더라도,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너무 아파, 미동도 안 하고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근육의 힘도 약해졌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휠체어도 타고 다녔었다. 그때, 나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옆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바깥의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속상했었다. 휠체어를 타고, 검사받으러 로비 쪽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활기차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초겨울이라, 사람들이 코트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빠르게 걸어가느라 바깥의 차가운 기운과 겨울 냄새가 느껴졌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나도 예쁜 목도리 있거든? 내가 좋아하는 코트 입으면 나 꽤 예쁘거든?‘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겨울에 코트랑 목도리를 두르고 바깥을 활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고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기간 입원하다 보니, 인기 많은 창문가로 옮겨갈 기회가 몇 번이 왔었다. 하지만 난 거절했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야경이 보기 싫었었다. 그리고 그 세상에 있는 다른 모두가 참 부러웠다. 그래서 외면하고 싶었다.
그때는 한참 아플 때라서 나에게 없는 것에 더 집중했었다. 하지만 퇴원을 하고 내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어 갈 때쯤, 나는 그것들에 대해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다시 걸어 다닐 수 있고, 바깥을 다닐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물을 마시고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잃어버릴 뻔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일상이고 평범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사실은 마땅히 내게서 사라질 수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을 살고 일하다가 집에 가면 아이를 키우고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또 어느샌가 슬며시 나에게 없는 것만 보이게 되고 어느새 일상에 감사한 마음을 잊게 된다. 하지만 2~3개월마다 병원을 방문하여 정기검진을 받아야 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입원했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려 노력한다. 내가 그때 어떤 것이 부러웠었는지 그리고 지금 나의 일상이 그러함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것마저도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아직 내 옆에 있음에, 내가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얼마 전부터는 감사일기를 써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책과 온라인 매체에서, 감사일기를 쓰면 삶의 질이 달라지고 자신이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했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데에는 좋을 것 같아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유하고 있다.
“감사할 일이 뭐가 있어요?”하고 누군가가 물어보길래 내가 아는 것을 공유하였다. “음.. 사실 그냥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쓰면 돼요. 예를 들어.. 숨 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런 거요.” 그리고나서 우리는 웃었지만, 사실 정말로 그렇게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일상의 감사함. 오늘의 감사일기는 이것을 적어야겠다.
일상적인 하루여서 감사하다. 내가 마시고 싶을 때 커피 한잔 사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냄에 감사하다.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