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부터 상담을 받고 있다.
직장에서 상담을 몇 회 무료로 해준다는 문서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한다. 작년겨울에는, 내가 업무적으로 실수하거나 자리에서 내려올만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 부장자리에서 내려버린 기관장에 대한 배신감과 슬픔, 분노 때문에 상담을 신청했다. 내가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고분고분하게 하지 않아서가 이유인듯하다.
그렇게 시작된 상담이 올해 또 이어서 신청해서 열 회 정도 무료로 받다가 요즘은 애착과 관련해 사비로 연장해서 받고 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더 잘 살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도 애착과 관련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모든 관계의 뿌리이니까.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새로 깨닫는 것들도 있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해도 풀리지 않는 깊은 뿌리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나를 느끼고 있다.
직장에서는 기관장이 세운 새 부장 덕에 요즘 모두 난리다. 일 못하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참아줄 수 있지만, 같은 일을 모두가 세 번째 하다 보니 너무 화가 가는데 정작 본인은 사과도 안 하고 협조도 없고…. 오히려 적반하장이고 젊은 꼰대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그게 더 큰일인 것이다.
그래서 친한 동료 몇 끼리, 이번에 더 이상 못 참겠으니 매번 순순히 협조하지 말고 써서 제출하라고 한 거 딱 세줄만 쓰자고 했다.
진짜 세줄이상 쓰기만 해! 정말 세줄이야!!!!
여러 번 힘을 주며 강조하길래 당연히 세줄만 썼다.
발표날 모두가 낸 자료를 딱 열어보는데 나처럼 진짜 세줄만 쓴 사람은 없..없다. 아주 긴 세 문장이어서 5줄은 되고 사진첨부까지?! 너무 당황했는데 연륜과 말빨로 수습해버렸다. 쓴 건 제일 없는 주제에 호응이 좋은 발표여서 부기관장이 뭐라고 했다. 에헴..
요즘 나에 대해 연구&탐구 중인데 왜 나는 진심과 진실 믿음 등의 가치들을 많이 추구하는가.. 왜 거짓말, 빈말, 위선, 아부 등에 이토록 민감한가. 상담을 통해 부각된 것들이다.
상담가는 ’ 내가 뱉은 말’과 ‘남이 한 말’에 내가 얽매여 다 해내려 한다며 남의(의미 있는 사람 제외) 말은 50프로만 듣고 흘리라고 했다.
내가 뱉은 말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하지 않거나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맞는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남의 말을 다 믿으려는 경향은 내가 남들에게 그렇기 때문.. 그리고 가족의 영향(학자들이라 그런가 그렇게 말하면 말 그대로 그냥 그거임). 내 기질 등 때문인데 찾아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사건 이후 며칠 뒤 또 어떤 엄청난 갑질 아닌 갑질 사건이 있어(정말 이해가 안 가는데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모여 커피 마시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부기관장이 찾으러 와서 해산을 시켰다..) 다들 모여서 이제부턴 아침에 교무실로 안 가고 바로 교실로 가겠다고 이야기 나눴다. 출근하면서 어제 이야기한 대로 곧장 교실로 들어가려다가 내 위쪽 계단에서 교무실로 향하는 어제의 몇 명을 보고 ‘아… 내가 또. ‘ 이마를 치며 교무실로 들어가면서 혼자 바보 같다 생각했다. 왜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 자꾸만. 그런데..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하면 하겠다는 게 정말 아니라고? 아니 내가 문제인 건가? 뭐지? 하는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에피소드에 대해 상담가에게 얘기하는데
상담가가 “괜찮아요? 정말 당황했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고 내예상과 의지와 달리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꾹 참고 있던 게 누군가 알아주니 녹는 기분으로, 민망해서 아무렇지 않으려 티 안 내려 버티던 힘이 흔들리는 것처럼 동요했다. 내가 왜 이러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에도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 괜찮아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어떤 모임에서 주장을 세게 하신 분이 있었는데 살짝 민망했지만 그냥 티 안 내고 좋게 넘겨버리면서 혼자 처리하던 감정이었는데 그렇게 괜찮냐 속상했을 것 같다 물어봐주시니 깜짝 놀랐다. 고맙고 부끄럽기도 하고 혼자 아무렇지 않은 듯 감춘 감정을 알아주니 기쁘고 놀랍고 그런 기분이 들었었다. 나보다 나이로는 동생이신데 언니같이 든든했다.
이렇게 알아주는 사람에게 진심을 쏟고 에너지를 사용하라고 했다. 모두에게 지칠 때까지 신경 쓰지 말고 말이다.
나는 부정적 감정을 많이 숨기는 편이고 티를 잘 안 낸다. 남들 불편하게 만들기가 싫어서. 물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악의적으로 공격받으면 똑같이 후려 칠 수 있지만 ㅋ
빈말의 무게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것 같다.
난 여러 번 강조해서 얘기하면 정말로 그렇게 할 거라는 뜻인데 아닌 사람도 있는가 보지. 내가 무슨 자기중심적 사고하는 영유아기도 아니고 살짝 당황스럽다.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기준도 해석도 상대에 대한 해석도 나에 빗대어.
그런데 그럼 나여서는 안된다면 완전 기준이 없어지잖아. 그게 가능한가?? 물론 남을 해석 평가 하면 안 된다는 원론적 얘기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책에서 읽은 것& 상담에서 들은 얘기, 내가 생각한 것들로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여러 생각이 피어오르는 중이다.